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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에 연재되었던 엠엠재즈 재즈이야기 컨텐츠들을 이전하였습니다.
글: 최범 | 재즈를 사랑하는 산부인과 의사(서울의료원)

엠엠재즈

I''m a Fool To Want You 1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버렸지만 아직도 내 마음엔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다. 언제쯤이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파혼이란 말은 요즘은 흔치 않게 듣는 말이라 그리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막상 자신에게 일어난다면 절망적인 슬픔을 겪게 된다. 학생 때 후배의 소개로 만나 두 해 동안 사귀어온 그녀와 마침내 결혼을 약속했다. 인턴이 끝날 때쯤으로 날을 받아놓고 양쪽 집안의 개혼이니 약혼을 하자고 하여 시월의 마지막 날 약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힘든 병원 생활을 하면서 그 어려움을 다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그녀와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바로 그 약혼식의 이틀 전 저녁이었다. 주치의 선생님께 부탁해 당직을 빼고 집에 와 어머니가 찾아놓은 턱시도를 입고 거울에 비춰보고 있었다.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내가 거울에 보였다. 나비넥타이를 맬 줄 몰라 이리저리 만지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 나야.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어. 지금 만나자. 집 근처 카페로 와 줘.’ 

수화기너머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라앉은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예복을 입어본 기분에 들떠있어 눈치 채지 못하였다. 시내를 관통해 그녀의 집까지 가는 길은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지독하게 정체되었다. 밀리고 밀리는 차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처음 만난 몇 개월간은 너무나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다 곧 의사국가고시를 준비하게 되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하다가 그녀를 만나면 모든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비록 만나는 시간이 적어졌지만 그리워하는 시간이 많아져 오히려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그 후 시험을 보고 나는 의사가 되어 인턴으로 병원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하게 되자 만나는 횟수는 더욱더 줄어들어 한 달에 한번 간신히 만나는 정도였다. 전화가 유일하게 그녀와 연결시켜주는 수단이었고 또한 나에게 있어서 그녀와의 전화가 유일한 외부세계와의 접촉이었다. 생활이 힘들수록 그녀에게 의지가 되어 그녀에 대한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져 갔다. 아무리 피곤해도 전화를 하려고 저녁엔 틈만 나면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곤 했고 당직실에서는 전화를 하다가 수화기를 든 채 잠이 든 적도 있었다. 

아, 드디어 약혼을 하게 되는구나.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가. 이젠 병원에 찾아와도 남들에게 떳떳하게 약혼녀라고 밝히고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군. 비번인 주말에는 부모님께 말만 잘 하면 둘이서 여행을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내년 레지던트 초반 백일 당직만 끝나면 비번일 때는 집에 가서 그녀와 달콤한 신혼을 즐길 수 도 있어. 아기를 자주 보려면 일년 차 때는 갖지 말아야겠지. 그래, 이젠 전화하다가 잠들 일도 없겠군. 이젠 행복해지는 일만 남은 거야. 

 

*****

간신히 주차를 하고선 카페에 들어섰다. 그녀의 집에서 제일 가까워서 늦게까지 있어도 되고 빨리 나올 수 있다는 걸 빼고서는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곳이다. 우선 문부터가 맘에 안 든다. 조그만 창이 여러 개 나있는 문인데 잘 닦질 않아 유리에 늘 먼지가 잔뜩 끼어있어 안이 뿌옇게 보인다. 골목 쪽으로 나 있는 뒷문은 그나마 그런 장식도 없는 옥색 철문이었다. 
벽에는 이집트 분위기를 내려고 했는지 투탄카맨 조각이 엉성하게 되어있고 의자는 등나무에 그물 같은 걸 엮어 만들어 오래 앉아있기 힘들다. 음악도 테이프를 트는지 듣다 보면 같은 노래가 반복해서 나오고 심지어 늘어지는 소리가 치지직 거리는 낡은 스피커에서 나왔다. 커피를 시켜도 원두가 오래되어 향은 나지 않고 때로는 인스턴트커피를 살짝 섞은 맛이 나기도 했다. 구석진 자리에 앉은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오늘 턱시도가 와서 입어봤는데 너무 멋있더라. 근데 나비넥타이를 맬 줄 몰라서 어디 아는 친구에게 물어봐야겠어. 그냥 고무줄로 된 게 편하다는데...’

‘너 드레스는 가봉할 때 입어봤다고 했지? 어땠어? 나의 신부님! 신데렐라 같았어?’

‘커피를 하나도 안 마셨구나. 그래 여기 커핀 정말 맛없어. 빈속이지만 그래도 제일 싸니깐 나도 커피로 시켜야지. 오늘은 빌리 홀리데이 노래가 나오네. 이 노래 광고에 쓰여서 요즘 인기야. 이런 카페에 ‘I’m A Fool To Want You’ 라니 참 안 어울린다. 근데 오늘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무슨 일 있었어? 또 우리 엄마가 뭐라고 했어?’ 

‘오빠...’ 

‘응, 뭐든지 말해봐. 우린 이제 부부나 다름없어. 문제가 있으면 같이 풀어야지.’ 

‘나... 지금이라도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뭘...?’ 

‘나, 모레 약혼식 못 하겠어. 계속 생각했던 건데 오빠 얼굴 보면 도저히 말을 못 해서 이렇게 미루어 진 것 같아. 하지만 아냐, 이건 아냐.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지금이라도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직 식도 올리지 않았을 때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아.’ 

‘그... 그게 무슨 말이니?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어딨어?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내가 뭘 잘못 한거니...?’

‘아냐, 오빤 잘못한 거 없어. 오빠가 날 얼마나 사랑해주는지 잘 알아. 하지만 결혼은 그런 사랑만으로만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 정말 미안해.’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다. 너무나 기가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왜 내게 일어났는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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