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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밥 딜런] - 손광수

 

음유시인 밥 딜런

 

사랑과 저항의 노래 가사 읽기

손광수 지음 | 한걸음더 | 2015년 06월 30일 출간 | 380P

 

 

스웨덴 한림원이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밥 딜런(1941~)에게 수여했을 때, 그의 노래 가사를 시문학 작품으로 연구한 국내 필자의 저서가 이미 나와 있었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딜런에 관한 책이야 워낙 많지만, 그가 쓴 가사를 시 문학으로 간주한 연구서를 미국 밖에서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손광수의『음유시인 밥 딜런 - 사랑과 저항의 노래 가사』(한걸음더,2015)는 딜런의 ‘음악’과 ‘시적 표현들’을 통해 ‘밥 딜런의 세계’ 를 분석한 국내 초유의 저서이다. 지은이는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쓴 2010년 논문「“태어나느라 바쁘지 않는 자는 죽느라 바쁜 것임을”: 1960년대 밥 딜런의 노래, 불확정성과 탈규정성의 시학」을 기초로 이 책을 썼다.

 

딜런을 좋아하거나 그의 궤적을 조금이라고 쫓아본 사람이라면 딜런이 자신의 정체성을 늘 갱신하면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60년대에 그는 포크 음악에서 로큰롤 가수이자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변신했다. 포크 가수였을 때 그는 우디 거스리가 되고자 했고, 아방가르드에 접근했을 때 그는 초현실주의적인 가사를 실험하면서 아르튀르 랭보를 자신의 자아로 삼았다. 이후 1970년대 말에는 기독교에 귀의해 가스펠 음악에 몰두하면서 이전의 대표곡들을 공연 목록에서 아예 빼버리기도 했다. 이 모든 변화는 자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딜런의 가장 큰 변신은 외부에서 왔다. 2016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가수에서 시인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딜런처럼 유명한 대중 가수가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공인된 시인이 되었을 때, 그를 좋아했던 음악팬이나 문학 독자는 즐거운 혼란에 빠진다. 즉 노래로 불려 질 때 그의 시는 가사가 되고, 가사집에 인쇄된 것으로 읽을 때는 자동적으로 시가 되는 것일까? 이런 논란은 딜런의 텍스트가 놓여있는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쉽게 정의를 내리기 힘들다. 독자들은 이 글 끝에서 지은이의 정의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지 궁금증을 풀고 가자.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서 전기 기타를 연주한 일로 그는 ‘포크계의 유다’가 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딜런의 출발점은 포크가 아니라 로큰롤이다. 1950년대 중반 히빙 고등학교 시절, 그는 급우들과 밴드를 조직해 로큰롤을 연주했다.” 당연하게도 이 시절 그가 좋아했던 가수에는 버디 홀리와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로큰롤 가수가 포함된다. 하므로 “그가 포크에서 록으로 전향한 것은 변절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에 하고 싶었던 음악 형식으로의 복귀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에 심취했던 로큰롤을 계속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음악을 하려던 당시, 모든 연예 관계자들이 “로큰롤의 유행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레슬리는 군에 징집되어 독일로 갔고, 칼 퍼킨스는 자동차 사고로 심하게 다쳤고, 척 베리와 제리 리 루이스는 미성년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비난받았고, 버디 홀리ㆍ에디 코크란ㆍ진 빈센트는 사망했다. 결국은 틀린 예측이 되고 말았지만, “이런 상황 변화 속에서 딜런은 록에서 포크로 변절해(?)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 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가 1959 미네소타 대학에 입학했던 사실과 관련 깊다. 그는 그때서야 기타를 들고 대학 주변의 클럽을 전전하며 포크 문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통은 그것이 생겨난 장소에서 항상 이탈한다. 말하자면 전통이란 항상 최첨단 도시와 지식계층 곧 대학 캠퍼스에서 만들어지는 무엇이다. 예컨대 1980년대 한국의 대학 운동권 문화가 민족(전통) 문화 일색인 것이 그렇다. 시골에 살 때는 농악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가, 도시의 대학에 입학해서야 여태껏 무관심했거나 멸시했던 전통 문화를 새로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포크 음악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상업적인 대중음악에 맞서는 대안적 형식으로 미국의 중산층 백인 대학생들에 의해 각광을 받았다. 미네소타 대학을 중퇴한 딜런이 포크 가수가 되기로 작정하고 하고 1961년 1월말 뉴욕에 도착했을 때, 운 좋게도 뉴욕은 이제 막 포크 운동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민중 문화는 절대 민중이 자리한 장소에서 탄생하지도, 민중이라는 당사자로부터 시작하지도 않는다. 이 문제가 훗날 딜런으로 하여금 포크를 버리고 아방가르드로 향하게 만든다. 그는 정직했다.

 

 

시와 노래 가사는 그것의 귀속처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라는 편견이 장벽으로 놓여 있기도 하지만, 노래가사가 시보다 저급하게 취급되는 데에는 노래가사가 가진 형식상의 한계를 뛰어넘기 어려운 탓도 있다. 즉 문화산업의 통제를 받기 쉬운 노래가 그렇지 않은 시에 비해 제한적이고 획일적인 주제만 맴돈다는 내용 문제를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래 가사는 시와 달리 코르셋과도 같은 형식적 제한 속에서 시가 누리는 언어 형식의 자유를 만끽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작사가나 싱어 송라이터(Singer Song-writer)는 시인보다 힘든 형식적 제약 속에서 가사를 쓰게 되고, 시보다 단조롭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시인으로서의 지향과 가수로서의 지향 사이에서 몹시 갈등”을 했던 딜런은 노래 활동에 회의를 품고 가수를 포기하려고 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그는 1965년 <구르는 돌맹이처럼(Like a Rolling Stone)>을 만들고 나서 활자와 책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시인이 되는 꿈을 포기하고, 노래에서 또 다른 종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딜런은 이 노래를 기점으로 더 이상 노래와 시를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지면을 위한 시들(unsung poems)을 따로 썼으나, 그는 이때부터 “내 모든 글은 이제 노래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노래=시(song=poems)’라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딜런을 시인으로 규정”하는 한편, “노래라는 매체를 그의 시의 핵심 요소”로 본다. 지은이는 딜런의 시학은 언어에만 있지 않으며 “언어와 목소리와 음악 간의 통합성”에 있다면서 딜런의 공연성과 시는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딜런의 가사는 노래되면서 인쇄된 것에서 느낄 수 없는 아이러니와 딜런 자신에 의한 해석을 엿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강조하는 딜런의 시학을 다 수용하더라도,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간 것만은 수긍하기 어렵다. ‘누보로망’이나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코러스’ 등에 매진해 온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됨으로써 문학이 확장되었던 것과 달리, ‘음유시인’에게 주어진 노벨문학상은 문학에 그 어떤 확장이나 기여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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