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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 니콜라스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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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니콜라스 쿡 | 장호연 번역 | 곰출판 | 20160930| 204P

 

 

길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에게 무작위로 음악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갖가지 대답이 나온다. 어떤 사람에게는 B.T.S가 음악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임방울의 판소리가 음악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트로트가 음악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록만이 유일한 음악이다. 그런데 음악 수업중인 중등학교 음악실에 있는 학생들에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흐와 베토벤을 음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학교 밖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으나, 학교 안에서는 소위 클래식이라고 말하는 서양 고전 음악만이 음악의 대명사 자리를 차지한다. 영국의 음악학자 니콜라스 쿡은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곰출판,2016)에서 클래식이 학교의 교과 과정을 독차지하고, ‘대명사 음악이 된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치 블루스 음악이 자연스럽게 보이듯이, 시장 경제나 요리 과정이 자연스럽게 보이듯이, 이런 과정들도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떤 것도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모두가 인간이 만든 문화의 산물이며, 따라서 시대마다 장소마다 다르다. 음악이 자연의 산물처럼 보이는 것은 음악의 특별한 성질 가운데 하나다. 흔히 쓰는 말로 하면 보편적 언어처럼 보이지만 실은 착각이다.” 이 책은 방금 언급한 이런 가정들과 거기서 비롯한 음악의 가치들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고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산물임을 보여주려 한다.”

클래식 음악이 생겨난 때는 19세기 초, 공간은 유럽, 보다 정확히 말하면 북부 유럽과 중부 유럽의 음악 중심지(특히 런던, 파리, 베를린, ). 이 시기에 생산유통소비라는 자본주의 모델이 사회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고, 유럽 전역에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가 증가했다 도시에서는 중산층(혹은 부르주아)이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역할을 꾸준히 늘려갔다. 문학회화음악이 예술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시기인데, 예술이 왕가나 귀족의 후원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은 부르주아의 주체성 형성과 맞물려 있다. 이 말은 예술이 감정과 정서의 내적 세계를 탐구하고 찬양했다는 뜻이다. 특히 음악은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개인의 표현에 몰두했다.”

 

클래식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jpg

클래식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

 

로시니(1792~1868), 베토벤(1770~1827)이냐. 19세기 초에 활약했던 두 사람은 클래식 음악의 향방을 결정지은 중요한 방향타다. 당시의 부르주아 에토스는 로시니를 대중의 요구에 부합한 예술가로 깎아내리고 베토벤을 자신들의 음악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교회에 고용된 오르가니스트였고, 하이든 또한 헝가리에 속하는 지역 영주를 위해 음악 악장으로 일했다. 바흐나 하이든은 특정한 날이나 행사에 맞추어 음악을 만들어 내야 했다. 모차르트는 그들처럼 교회나 영주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주문 생산에 바쁘게 응했다. 이와 달리 베토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니콜라스 쿡은 이 지점에서 베토벤의 청각 상실을 거론하는데, 지은이에게 베토벤의 청각 상실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초월하는 음악의 힘을 상징한다.

베토벤의 죽음 이후 170년 간 다져온 신화에서 그의 귀먹음은 단순한 호기심의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은 베토벤이 자신이 살았던 사회로부터 독립했거나 소외되었음을 상징하는 기능을 한다. 상대방이 공책에 대화를 적은 것으로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밖에 없었던 이 작곡가는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는 따위의 세속적 관심사는 끊고 오로지 자신의 뮤즈에만 전념했다.” 실상 이 괴팍한 작곡가의 사회적 열망은 결코 세속적 관심사와 떨어진 적이 없건 만은, 당대의 부르주아들은 베토벤의 귀먹음을 클래식 음악의 진정성을 압축하는 표상으로 떠받들었다.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린 창조자라는 베토벤 신화는 곧바로 클래식 음악의 신화가 되었고 대문자 음악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서구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를 신성시 하고, 대중성을 극도로 혐오한다. 이 두 기준은 비서구 전통 음악과 대중음악을 폄하하는 근거가 된다. 비서구 전통 음악은 많은 경우 작곡가가 없으며(악보에 쓰이지 않았고), 대중음악은 대중의 인기만을 목적으로 삼는다(자기라는 내면이 없다).

클래식이 신성화 되면서 고급 음악저급 음악이 분화되었다. 현대는 대중이 주인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고급 음악이니 저급 음악이니 같은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은이는 이데올로기는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며, 제도는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불평등한 권력 분배가 마치 세상의 원래 모습인 듯 보이게 한다고 말한다. 사정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중등학교 음악교과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양 음악 세계로 들어가는 지식 습득과 청음 훈련을 통해 클래식이라는 지식 산업의 구조 내로 포섭된다.” 서양 전통의 음화성형식 유형이 청취의 기준이 되고나면, 음색이나 짜임새 중심의 비서구권 음악은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클래식의 위기가 클래식 음반 시장의 분해를 뜻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19세기 초에 확립된 클래식 음악의 정신성은 오히려 클래식 바깥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원래 대중음악에서 창조자(작곡가)나 진정성내면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현재는 대중음악에서도 창조자진성성내면은 더 없이 중요한 것이 되었다. 예컨대, 현대의 대중음악에서 녹음 기술과 프로듀서, 사운드 엔지니어의 몫이 가수만큼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인데도, 앨범 제작과정에서 본래의 목소리를 다듬거나 변조해 노래한 경우 어쩔 수 없이 라이브에서 립싱크를 하게 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해당 가수는 진정성이 없거나 사기꾼으로 치부될 수 있다. 클래식의 정신성이 승리한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젠더 연구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클래식 음악이 발생한 19세기 초부터 이 분야는 여성을 배척했다. 여성은 체질적으로 작곡을 할 수 없다는 단정적인 주장들로 인해, 멘델스존(1809~1847)의 누나 파니 헨젤(1805~1847)은 동생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남성 비평가들은 여성 작곡가의 작품을 여성적이다또는 여성적이지 않다라고 자유자재로 비판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이 비판을 피할 수 있는 여성은 없었다. 오페라 같은 장르를 뺀 클래식은 말이 없다는 뜻에서 순수음악으로도 불리지만, 순수음악은 항상 권력을 가진 말(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된다. 몇몇 평자들은 슈베르트(1797~1828)의 음악을 베토벤과 비교하면서 그의 음악에는 클래식 정전을 지배하는 남성 이성애자의 주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슈베르트가 동성애자라는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을 남성 이성애자의 형식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매우 임의적이다. 왜냐하면 이성애자인 베토벤의 음악에서도 동성애자와 연관시켰던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악을 즐기는 만큼, 음악의 이데올로기적인 효과와 그것이 생산하는 이데올로기에도 유의해야 한다.

 

클래식의 위대함, 예술성의 신성화를 위한 전시대상으로서 오랫동안 아이콘이 되어온 베토벤..jpg

클래식의 위대함, 예술성의 신성화를 위한 전시대상으로서 오랫동안 아이콘이 되어온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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