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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에 연재되었던 엠엠재즈 재즈이야기 컨텐츠들을 이전하였습니다.
글: 이옥주, 이진수, 최규용

엠엠재즈

재즈 100년 악기 100년 | 색소폰 2

알토 색소폰에서 테너 색소폰의 시대로... 

시대는 늘 변화를 거듭한다. 초창기 빅 밴드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던 클라리넷과 알토 색소폰의 위상에 눌려 늘 그늘 속에서만 존재하던 테너 색소폰은 벤 웹스터가 등장하면서 빛을 보게 된다. 벤 웹스터는 듀크 엘링턴이라는 위대한 재즈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는데, 벤 웹스터 역시 콜맨 호킨스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아 연주를 시작했으나 사실 그의 연주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 인물은 레스터 영이었다. 레스터 영의 블로윙을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연주법을 개발한 테너 연주인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20대에 들어서면서 처음 색소폰을 배웠다고 하니 천재가 아니고서야 어찌 단 1년 간의 레슨으로 이렇게 연주 할 수 있겠는가. -벤은 영에게서 1년 간 레슨을 받고 무대에 섰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라는 말 외에는 도저히 다른 표현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의 색소폰 연주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발라드 연주를 펼치는 명인으로 알려져 있는 벤 웹스터의 테너 색소폰은 음을 길게 늘어뜨리는 비브라토 연주에서 그 독특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벤 웹스터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해 현재의 거의 모든 색소포니스트들이 사용하고 있다. 

알토 색소폰에서의 맑은 비브라토 대신 테너 색소폰이 주는 묵직한 톤의 비브라토는 당시 대중들에게 색다른 맛을 전해 주었는데, 적당한 미디엄 템포의 연주에서는 풍부한 스윙감과 조금 거친 맛의 후두음을 사용하기도 하고 솔로 연주 시에는 테너 색소폰 한대로 모든 사운드를 대신 할 만큼 꽉 들어찬 사운드를 구사했다. 

듀크는 벤 웹스터의 역량을 높이 인정해 좀 더 화려한 솔로를 구사하도록 했고, 벤은 좀 더 악보에서 탈피해 우회하는 법을 연구하여 직접적인 선율적 접근법을 시도하는 다양함을 선보였다. 이러한 연주는 결국 앙상블의 중요성과 솔로의 중요성 두 가지를 하나의 연주력으로 응집시키는 데에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벤의 레가토 사운드는 발라드 스타일에서 화려하게 등장한다. 

40년대 듀크의 오케스트라를 최고의 밴드로 만든 인물 벤 웹스터, 이는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벤 웹스터는 듀크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다가 50년대에 들어와 소규모 캄보를 조직해 활동했고 프랑스와 덴마크로 건너가 활동하기도 했다. ‘Over The Rainbow’ ‘Blues For Lucky Lovers’같은 곡을 통해 그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벤 웹스터의 활동 시기에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와 함께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오케스트라는 역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이다. 거기에는 ‘테너 색소폰의 대통령’이라는 애칭을 가진 레스터 영이 존재했다. 일명 ‘프레지던트’라 불리던 레스터 영은 늘 시대를 앞서가는 연주력을 과시했는데 당시 그의 빠른 프레이즈는 그 누구도 앞지를 수 없었고 특히 즉흥 연주에서는 듣는 이들을 전기에 감전시키듯 차갑고 무서울 정도로 간결한 화성을 구사했다. 그러나 레스터 영의 백미는 바로 흐느적거리는 듯한 연주법이다. 레스터 영 역시 벤 웹스터가 보여주는 발라드에서의 비브라토를 자신만의 독특한 무기로 개발해 좀 더 가볍고 나른한 비브라토와 상냥한 아가씨의 미소처럼 아름다운 연주, 그리고 명쾌하고 매끄럽게 진행되는 솔로를 선보였다. 

1934년, 캔사스에서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한다. 캔사스 시티에 투어를 온 플래처 핸더슨 악단에서 활동하던 콜맨 호킨스는 캔사스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서브웨이 클럽에서 캔사스 일대의 유명한 연주인들과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 중 한 인물이 바로 레스터 영이다. 몇 일 밤을 지새우며 펼쳐진 이 두 사람의 배틀은 지금도 유명한 이야기 거리로 남아 있다. 뉴욕의 신사 콜맨 호킨스와 캔사스 시티의 최고 색소포니스트 레스터 영, 이 두 인물은 쉬지 않고 서로의 자존심 대결을 위해 여섯 명의 피아니스트가 나가떨어질 정도로 격전을 펼쳤다고 전해진다. 이 배틀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앞서 언급했던 영화 <캔사스 시티>를 보면 더욱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다. 레스터 영의 역할을 맡은 조슈아 레드맨과 호킨스 역을 담당한 크레이그 핸디의 불꽃 튀는 접전은 영화에서 더욱 자세히 보여진다. 박력 있는 톤과 하모니 중심의 비브라토를 선보이는 콜맨 호킨스와 높은 음역에서 부드러움을 살려주는 레스터 영은 현재의 모든 색소포니스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나 군대 문제는 있는 것이다. 

레스터 영은 징집 통지서를 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연주 생활을 계속 하다가 급기야는 클럽 무대에서 헌병대에게 이끌려 군대에 가게 되었고, 제대 후 레스터 영의 연주는 신인 보다 더 못한 이상한 연주와 괴팍한 사운드로 감상자들의 귀를 괴롭혔다. 이렇게 위대한 연주인은 대중들로부터 멀어져 가고 말았다. 

레스터 영이 모든 것을 넘겨 준 다음 세대의 대표적인 색소포니스트는 재즈 역사를 거론할 때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찰리 파커이다. 재즈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역사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알토 색소폰의 진정한 명인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MM의 모든 지면을 다 할애해도 모자란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도 알고 계실 것이다. 이 글에서는 간략히 그의 연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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