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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추모 칼럼 - 보사노바의 언어가 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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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1940.3 ~ 2023.6

보사노바의 언어가 된 목소리

 

/보사노바 뮤지션 나희경 사진/Getty Image, Universal Music

 

보사노바를 처음 노래하던 때가 생각난다.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의 보컬에 영감을 받아 온 나는 기교 없이 노래하는 법을 훈련했다. 조금 더 힘을 지우고, 마음을 내려놓고, 더 작게 소곤거리며, 친근하고 내밀한 보사노바의 감각을 따라가 보려 했다. 그건 보사노바의 무드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2011, 보사노바 1세대 아티스트 호베르투 메네스까우(Roberto Menescal)'웅 아모르'(Um Amor)라는 곡을 녹음하던 스튜디오 현장에서의 일이다. 내가 콘덴서 마이크에 입을 바싹 가까이 대고 조용히 첫 마디를 내뱉는 순간, 그가 반가운 듯 말했다. ‘정말 보사노바답다. ‘내가 훈련해 온 방법들이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한 첫 순간이었다. 그 이후, 이 보컬 스타일은 내가 보사노바 가수로서 활동하며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주안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더 오랫동안 노래를 하게 되면서, 나는 표현을 위해 갈고 닦여진 무언가는 의도되지 않은 순수와 정결함을 따라갈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오직 그 순간에 탄생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면서 말이다. 바로 아스트루드의 노래가 그랬다. 그 목소리는 결코 계산적이었던 적이 없다. 그녀가 남긴 녹음들은 그 자체로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낭만적인 순간, 순수와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 순간 '보사노바 보컬'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가장 꾸밈없고 진솔하게 나다운 모습을 노래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저 스스로 충실히 말이다. 이러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된 건 아스트루드의 공이 크다.  

 

 

3 스탄 게츠와 함께 협연하는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 1964년 뉴욕 버드랜드 클럽에서.jpg

스탄 게츠와 함께 협연하는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 1964년 뉴욕 버드랜드 클럽에서

 

보사노바 보컬의 낭만을 나에게 선사한 그녀가 지난 65일 세상을 떠났다. 기교 없이 청명한 목소리로,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모습은 이제 보사노바를 사랑하는 팬들의 가슴 속에만 영원히 머물게 되었다.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적어본다.

보사노바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드는 국경과 문화를 초월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매개체가 되어왔다. 엇갈리며 이어지는 리듬과 우아한 멜로디, 신선한 화성 변화는 당시엔 매우 이색적이고 새로운 것이었지만, 이 예술적 시도를 많은 이들에게 공감 가능한 언어로 전달한 것은 다름 아닌 아스트루드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노래는 마치 나 자신 또는 가까운 친구가 노래하는 듯한 친근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무대 위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고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꾸밈없는 아스트루드의 목소리는 이 매력적인 장르의 상징이자 언어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보사노바의 목소리를 아스트루드의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The Girl from Ipanema’로 기억한다. 바로 보사노바 역사의 기념비적인 앨범 ‘<Getz/Gilberto>’ 때문이다. 19643월에 발매된 이 앨범은 96주 동안 빌보드 차트에 머물렀고 5위를 기록하는 등 즉각적인 히트를 만들어 냈다. 그래미상을 4개나 수상하기도 했다. 가장 인기 있던 곡은 단연 ‘The Girl from Ipanema’, 이 곡은 비틀즈의 ‘Yesterday’ 에 이어 대중음악에서 두 번째로 많이 녹음된 곡이 되었다.

‘The Girl from Ipanema’가 주부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아스트루드를 우연히 보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스트루드와 관련해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수줍은 듯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과 어우러져 많은 이의 흥미를 자아냈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대로 주부였던 그녀가 스탄 게츠(Stan Getz)나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에 의해 전적으로 발굴되었다고 해석하는 건 음악가로서 그녀의 삶을 오인하는 것이다. 아스트루드와 그의 아들들, 심지어 함께 녹음을 진행했던 전남편 조앙 지우베르투는 스탄 게츠 본인 또는 언론이 그러한 표현을 할 때마다 이를 지속적으로 부인해 왔다. 아스트루드는 이미 오랫동안 음악을 사랑했고 무대에 서 왔던 음악인이었기 때문이다.

 

3-1 보사노바의 명성을 전세계적으로 확장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빅 히트 앨범. 전세계적으로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두 곡의 보컬 피처링을 한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는 정작 하루 세션 비용외에 아무것도 정산 받지 못했다고 한다..jpg

보사노바의 명성을 전세계적으로 확장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빅 히트 앨범. 전세계적으로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두 곡의 보컬 피처링을 한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는 정작 하루 세션 비용외에 아무것도 정산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스트루드는 노래를 부르고 만돌린을 연주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이 풍부했던 브라질인 어머니와 언어와 문학 교사였던 독일인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다. 바이아(Bahia)지방에서 태어났으나 곧 히우(Rio)로 이주한 아스트루드는 10대 시절부터 나라 레앙(Nara Leão)과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나라는 그녀의 보컬을 알아보고, 수줍음을 이겨내고 노래를 시작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격려하며, 조앙 지우베르투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결국,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는 1960년 히우 연방 대학 원형극장에서 열린 조앙의 두 번째 앨범 오 아모르, 오 소히주, 아 플로의 발매를 축하하기 위한 공연에서 처음 데뷔하게 된다. 이 공연은 호나우두 보스콜리(Ronaldo Bôscoli)가 제작하고 진행을 맡았으며 보사노바 1, 2세대의 주역들이 대거 참여한 기념비적인 공연이었다. 결국 아스트루드가 국제적 스타가 된 데 <Getz/Gilberto>앨범이 가장 큰 계기가 된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녀의 음악을 향한 열정과 보컬로서의 여정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1964년 조앙과 이별한 이후, 아스트루드는 1965년 셀프 타이틀 데뷔작 <Astrud Gilberto>라는 첫 솔로 앨범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음악가들과 협업하며 활동해 왔다. 2002년에는 국제 라틴 음악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08년에는 라틴 그래미 어워드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록 솔로 데뷔 이후의 작품들이 ‘The Girl from Ipanema’의 성공을 넘어서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녀는 오래도록 세상에 브라질 음악을 전파하며 음악가로서의 자아를 만들어갔다.

 

 

5 1982년 너스시 재즈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jpg

1982년 너스시 재즈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

 

그러나 이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내에서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려 왔다. 오랫동안 '소녀'의 이미지로 소비되며, 보컬로서의 업적이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받기도 했다. 여기에는 브라질의 역사적인 배경이 더해진다. 그녀가 미국에서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할 때, 브라질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대다수의 보사노바 음악가는 침묵했고, MPB로 불리는 새로운 음악을 이끈 아티스트들이 군부독재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아스트루드의 활약은 이 시기와 겹친다. 때문에 그녀가 음악인으로서 이뤄낸 것들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에서는 그녀의 성공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아스트루드는 미국 음반 산업계에서도 상처를 입었다. <Getz/Gilberto> 앨범이 엄청난 성공을 기록했지만, 단 하룻밤의 녹음 세션비 120달러 외에는 어떤 수익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담은 수많은 베스트 앨범이 제작되는 동안에도 노래를 부른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 권리를 지키려는 시도 또한 번번이 실패했다. ‘The Girl from Ipanema’는 그녀를 세상에 알린 일등 공신이자 많은 이들의 마음을 보사노바로 이끌었지만, 그녀 본인에게는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게 된 것이다.

그녀는 결국 사람들에게 실망했으며 음반 산업계에도 등을 돌리게 되었다. 2002년 마지막 정규앨범 <Jungle> 발매 이후 가진 공연 중 무대에서 무기한 휴식을 선언한 이후, 그녀는 남은 삶을 사회적 약자와 동물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다. 그리고 미디어에서 그녀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것들을 거부하며, 언론을 멀리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수없이 쏟아지는 추모 기사의 행렬에도 그녀는 아마 진절머리를 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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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루드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특유의 레이드 백이나 음색, 기교가 없어 더 두드러지는 보컬 스타일 등 수많은 말로 그녀의 목소리를 찬미할 수 있지만, 그 목소리가 더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는 그녀가 스스로 진실한 삶을 살아갔기 때문이 아닐까. 그 때문에, 나는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그녀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편이 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삶이 때로 거칠고 외로웠을지라도, 그녀는 자신의 자존을 지키며 살아갔다. 마치 그 반듯한 목소리처럼. 세상에 실망했을 순간들마저 말이다. 그녀는 타인이 정한 기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와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음악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과 그 성취, 부당한 대우에 직면했을 때 공연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 인류애와 생명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도록 애써 온 그녀의 헌신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Descanse em paz. 2) 포르투갈어로 Rest in Peace를 뜻한다

 

 

1) 브라질 음악가들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데에는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나는 브라질 현지에서 해당 아티스트의 이름을 부를 때 사용되는 발음으로 표기하기를 보다 선호한다. 아마도 내 이름이 브라질에서 '이쿙기나'로 불리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포르투갈어에서는 H가 묵음이다). 따라서 영어식 발음 대신, 국내에 많이 통용되고 있으나 조금의 변형이 더해진 방식을 선택해 이름을 기재했다. 예를 들어, 질베르토로도 쓰이는 아스트루드의 성은 지우베르투로 표기했는데, 이와 같이 발음할 때 그녀의 이름이 보다 선명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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