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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첫 등단한 이후 40년 이상 시와 소설을 두루 써오고 있는 장정일 작가가 음악 이야기가 담긴 종류의 여러장르 책들을 직접 읽고서 쓴 서평, 리뷰 혹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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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그 비밀 : 마오에서 바흐까지] - 주 샤오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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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와 나의 피아노 : 모택동에서 바흐로

주 샤오메이 저 / 배성옥 역 | 종이와나무 | 2017년 05월 29일 | 4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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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그 비밀 : 마오에서 바흐까지 [ 개정판 ]

Zhu Xiao Mei 저/배성옥 역 | 마르코폴로 | 2024년 10월 05일 

 

 

 『마오와 나의 피아노』(종이와나무,2017)는 중화인민공화국 출신 바흐 스페셜리스트인 피아니스트 주 샤오메이의 음악적 자서전이다. ‘아리아’라고 명기된 지은이의 서문을 보자.

 

“이 책은 모두 30장으로 엮어져 있다. 바흐의 걸작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30개 변주곡으로 펼쳐지듯, 30장 앞뒤로 아리아가 이 책을 시작하고 마감한다. 돌고 도는 삶의 수레바퀴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시간의 고리처럼 시작과 끝이 동일한 아리아로 이어진다. 중국 사람이, 그처럼 동떨어진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여성이 어떻게 바흐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독자라면 알게 되리라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아니 그보다도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바흐의 음악을 듣고 또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나아가 중국이 낳은 위대한 사상가 老子(노자)를 읽고 또 읽고 싶은 마음도 함께 생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샤오메이는 1949년, 상하이에서 한의원을 하던 아버지 신교육을 배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상주의자이면서 성격이 강직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평생 동안 곧고 바른 삶을 실천했다. 그가 시장을 봐온 장바구니에는 제일 덜 싱싱한 생선, 제일 덜 익은 과일 뿐이었다. “그 이유란 품질이 좋은 물건을 딴 분들이 사도록 남겨두어야지 자기가 사버리면 남들에게서 좋은 물건을 빼앗는 격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한편 부유한 개화(開化)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의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예술학교에 입학해서는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가난한데다가 다섯 살이나 어린 남자와 결혼했을 때, 샤오메이의 외할아버지는 결혼 선물로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부터 주 사오메이의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딱히 반혁명 분자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출신성분이 나쁜 부르주아였다.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우리 가족은 생활이 이렇게나 곤궁해져 버렸던 것인가? 모택동이라는 사람이 그 대답이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중국 인민들은 “그분 덕택으로 우리 중국은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고들 했다. 그가 자본주의 세력과 제국주의 세력을 쳐부순 후부터 중국 사람들의 생활은 탈바꿈했다고. 중국공산당의 승리 덕분에 우리 중국인은 압박과 비참에서 헤어나게 되었다고. 이제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는, 고급관리도 하급노동자도 없는 찬란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린다고. 곳곳에 보이는 그림에서처럼 오직 노동자, 농민만이 잘 먹고 잘 사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린다고. 우리 어린이들은 마오 수령을 존경하고 숭배해야 한다고. 왜냐면 우리가 먹고살 수 있게 된 이 모두가 그분 덕분이라고. 그분을 우리는 친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고. 이렇게 얘기해준 사람은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였다. 부모님은 이를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상하이에서 더 이상 의원을 유지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1950년 여름, 아내와 세 딸을 데리고 누나가 있는 베이징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믿었던 고모 집안이 몇 달 뒤에 재산을 몰수당했다. 실직 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떠맡은 것은 피아노 덕분에 초등학교 음악선생이 된 어머니였다. “초등학교 음악선생님이 되신 어머니는 자기 피아노를 학교로 운반시켰다. 훗날 어머니가 내게 조용히 털어놓으신 얘기에 의하면 우리 가족이 그 피아노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긴 했지만,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는 우리 부모님의 부르주아 집안 배경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것 역시 바로 그 피아노 때문이었다.”

 

  공산주의는 봉건주의 시대의 신분제를 타파하고 모든 인간들 평등하게 대우한다지만, 사실은 다르다. 패망한 소련은 물론 중국공산당 독재로 운영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김씨 세습 왕조에 지나지 않는 허울 좋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공산주의 혁명으로 건국된 나라에서는 그 어느 시대와 체제보다 더 엄격하게 출신성분을 따진다. 권력을 오래 독점하기 위해서다. 

  

어머니가 근무하는 초등학교가 자체적으로 피아노를 구입하면서 어머니의 피아노는 집으로 돌아왔다. 피아노를 처음 본 샤오메이는 겁이 나서 의자 뒤에 숨었다. “나는 피아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겨우 세 살 나이에 피아노 비슷한 것이라고는 한 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이웃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 어머니는 매일 같이 피아노 위에 앉은 먼지만 닦고 피아노는 치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유치원에 다니는 셋째 딸에게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해 주었다. “전혀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 즉시 이 음악이야말로 나의 것, 나의 세계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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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샤오메이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운 샤오메이는 여섯 살 때 국립예술학교 진학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주로 입학하는 어린이음악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꼬마학생들은 모두가 똑같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처럼 헤지고 꿰맨 옷을 입은 아이들도 있었고, 새 옷을 단정히 입은 아이들도 있었다. 붉은 스카프를 보란 듯 당당히 목에 두른 ‘중국소년선봉대(中國小年先鋒隊)’에 속한 아이들도 있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붉은 스카프족(族)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새 옷을 차려입고 바캉스 떠나는 아이들의 부모는 새로이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나 군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차츰차츰 알게 되었다.” 나쁜 출신이라는 원죄는 1960년 봄, 북경중앙음악학원에 진학한 샤오메이를 더욱 집요하게 괴롭혔다. “아버지 어머니가 죄인이라면 나 역시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9년 내몽고의 장가구로 하방되어 1974년까지 재교육 수용소 생활을 했다. 

  『마오와 나의 피아노』를 음악적 자서전이라고 했지만, ‘자서전’을 꾸며주는 동시에 한정하는 ‘음악적’이라는 수식구는 괜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은이가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 이들을 위하여 쓰고 싶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문화대혁명’에 관해 얘기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특히 서양에서는 ‘문화대혁명’이란 시간이 무엇이었던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서른다섯 살 때 처음으로 프랑스어를 익히기 시작한 샤오메이는 쉰여덟 살 때 프랑스어로 이 책을 쓰고 출판했다. 한때 절판되었던 한국어 번역본은 출판사를 옮겨 재출간되면서『강과 그 비밀』(마르코폴로, 2024)이라는 원제를 되찾았다. 이 책 12장을 읽는 데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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