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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시학]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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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지음 |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15년 09월 21일 출간 | 173P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 휴양도시 오라니엔바움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그러나 그의 묘지는 러시아도 미국도 아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미켈레 섬에 있다. 그가 안장된 묘지에는 러시아 발레단의 천재 안무가 세르게이 댜길레프(1872~1929)도 안장되어 있다. 두 사람이 최후 안식처를 고국이 아닌 타국에 마련하게 된 것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주의(1926~1953)로 치달은 소비에트의 예술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스트라빈스키의 아버지는 법대를 다녔으나 가수로 전업하여 마린스키 극장의 유명한 베이스 가수가 되었다. 가수가 된 뒤에도 법조계에 미련이 남아 있었던지 아버지는 스트라빈스키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법대에 입학 시켰고,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데 같은 법대 동기 가운데 ‘러시아 5인조’인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아들이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활약한 러시아 5인조(림스키코르사코프, 밀리 발라키레프,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알렉산드르 보로딘, 체자르 큐이)의 원래 명칭은 ‘모구차야 쿠치카(Moguchaya Kuchka:힘센 무리)’였으나, 러시아 5인조라는 새 명칭이 더 유명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서 가장 체계적인 음악공부를 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교육에도 열성을 기울여 훌륭한 제자를 많이 길렀는데, ‘러시아의 브람스’라는 별칭을 얻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와 아나톨리 랴도프가 그의 제자들이다. 스트라빈스키는 그에게 작곡 개인 지도를 받았다.

 

1908년,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1번이라고 붙인 <교향곡 Eb장조>를 초연하고 관현악곡 <불꽃놀이>를 완성한다. <불꽃놀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댜길레프는 1910년 발레곡 <불새>를 의뢰하게 되고, 이 작품은 발레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크게 성공한다. <페트루슈카>(1911)로 파리지앵을 거듭 열광시킨 그는 초연된 <봄의 제전>(1913)으로 공연사에 길이 기록될 커다란 논쟁을 일으킨다. 작품이 연주되는 동안 낯설고 불쾌한 소리를 견디지 못한 관객과 이 작품의 새로움을 옹호하는 관객들 사이에 번진 말싸움으로 공연은 위태하게 이루어졌다. 이 에피소드는 줄곧 스트라빈스키를 따라다니면서 그에게 과격하고 혁신적인 음악가라는 후광을 안겼다. 하지만 1939년, 막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을 활동 거점으로 삼기로 한 그가 하버드대학교에서 행했던 여섯 번의 강의를 모은『음악의 시학』(민음사,2015)은 그런 선입견이 보기 좋은 오해라고 알려준다.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작곡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혁명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졸지에 본의 아니게 혁명가가 되었지요”라는 항변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그는 그런 호들갑을 물리치기 위해 번번이 해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책의 핵심 역시 바로 그 해명에 바쳐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의 제전>같은 작품에서 오만한 자세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이 작품이 구사하는 언어가 새로운 탓에 무례하게 보일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가장 전복적이라는 의미에서 혁명적이라는 지적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어떤 습속을 깨드리는 것만으로 혁명가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다면 뭔가 할 말이 있는 음악가, 그 말을 하기 위해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음악가는 전부 혁명가 소리를 들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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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날에는 으레 예술가들에게 혁명적이라는 평가가 찬사의 뜻으로 따라붙곤”한다면서, 자신은 그런 찬사가 당혹스럽다고 말한다.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미에서 혁명은 과격하고 소란스러운 상태를 가리킬 뿐인데, 독창성을 지칭하고 싶다면 훨씬 더 다른 단어들도 많이 있잖습니까? […] 예술은 본질상 구성적입니다. 혁명은 균형의 파괴를 뜻합니다. 혁명을 말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혼돈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술은 혼돈의 정반대입니다. 혼돈에 자신을 내맡길 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살아 있는 작품들, 그 자신의 삶 자체에도 즉각적인 위협이 닥치게 마련입니다.”

 

예술과 혁명에 대한 이처럼 깔끔한 대비를 우리는 의심해봐야 한다. 특히 그가 음악의 특성을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이라고 간주한 바에야, 인간의 또 다른 의식적 활동인 혁명과 음악이 정반대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혁명과 예술은 파괴와 혼돈을 반복하면서 “질서와 규율”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스트라빈스키 그 자신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문법을 깨트린 <봄의 제전>으로 원시주의의 정점에 올랐다가, 1916년에 발표한 <병사 이야기>를 시작으로 신고전주의를 만들어 갔듯이.

 

『음악의 시학』을 읽는 독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여섯 번의 강의가 미국에 거주하기 위한 스트라빈스키 나름의 신고식(?)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가 하버드대학교 강의실에서 혁명은 파괴와 혼돈이고 예술은 잘 건사되고 지속된 “전통”이라고 강조했을 때, 미국 청중과 언론은 그것을 단순히 <봄의 제전>에 대한 해명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겉으로 자신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문자 그대로의 러시아 혁명을 비판했다. 아마도 강연장에 모였던 미국 청중들은 그가 역설하는 ‘예술상의 혁명’을 곧바로 ‘러시아 혁명’으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재산을 모두 잃었던 스트라빈스키는 한때 생계를 위해 직업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하기도 했으며, 1945년 미국으로 귀화한 그는 1962년까지 미소문화교류 형식으로 조국 땅을 다시 밟기까지 러시아 입국이 금지되었다.

 

이런 정치적 독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나는 (음악계의 )혁명가가 아니다’라는 스트라빈스키의 주장에 재차 귀 기울여 보자. 대개의 서양음악사는 전기 낭만주의 이후를 ‘브람스 vs 바그너’라는 대립구도로 설명한다. 전자와 후자는 ‘고전-낭만주의/낭만주의 후기’라는 대별적인 양식 대립 아래 ‘온음계/반음계’, ‘절대음악/표제음악’같은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데 스트라빈스키는 ‘브람스 vs 바그너’ 대신 ‘베르디 vs 바그너’라는 그만의 대립구도를 제시한다. 그가 바그너의 악극이나 베를리오즈와 같은 교향시 주창자를 가리켜 “예술적 반역자”, “불모의 절충주의”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들이 “음악 외적인 요소에 기꺼이 좌우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매우 놀랍게도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은 ‘멜로디’다.

 

주지주의(主知主義)의 영향으로 멜로디를 얕잡아보는 음악상의 이상한 진보가 생겨났다고 말하는 스트라빈스키는 “노래의 쇠퇴만큼이나 바그너와 그가 풀어 놓은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위력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 바그너가 죽은 지 50년이 됐지만 아직도 우리는 악극의 소음과 잡동사니에 갈려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종합예술론(Gesammt Kunstwerk)의 위엄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브람스의 자리에 베르디가 들어 간 것은, 그가 대표하는 이탈리아 음악이야말로 멜로디를 가장 잘 살린 음악이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의 해석에 따르면 러시아 민속음악에 이탈리아 음악을 결합시켜 탄생한 것이 러시아 5인조 음악이고,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차이코프스키는 유독 독일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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