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윌리암스(Jessica Williams) 추모 칼럼 - 우리는 제시카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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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제시카 윌리암스(Jessica Williams) 1948.3 ~2022.3
우리는 제시카를 기억할 것이다!
글/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모든 사람은 언제, 어디에선가 태어났다가 또 언제, 어디에서 이곳을 떠난다.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1948년 3월 17일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던 제시카 윌리엄스는 자신의 일흔네 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지난 2022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지금 그녀를 위해 해야 할 말은 단순하다. - 편히 쉬소서. 지금은 이 말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라면 자꾸만 말을 보태고 싶어진다. 이 말들이 영혼의 안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우선 그녀의 타계 소식은 상대적으로 그다지 많이 전해지지 않았다. 재즈 음악가의 부음 기사를 충실하게 전했던 <뉴욕 타임스 New York Times>를 비롯한 주류 언론에도 그랬고, 심지어 <다운비트 Downbeat>, <재즈 타임스 Jazz Times>와 같은 재즈 전문지에서도 그녀의 타계는 전해지지 않았다. 양뿐만이 아니라 소식도 늦었다. 뉴저지의 예술 전문 공영 라디오 WBGO가 3월 17일 소식을 전했고 근 한 달이 지난 4월 15일부터 NPR(국립공영라디오)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제시카의 타계 소식이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부음 기사는 그녀의 타계 장소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는데, 다만 인터넷 매체 <뉴스 랜덤 News Random>(en.membersrandom.com)만은 워싱턴 주의 소도시 야키마에 있는 자택에서 그녀가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날짜도 3월 10일이 아닌 3월 12일로 기록했다.
뒤늦게 전해진 임종
제시카 윌리엄스는 지난 2012년 척추 협착증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아 이후 모든 연주 활동과 녹음을 멈춰야만 했다. 아무런 거동도 하지 못한 채 남편의 간호로 살던 그녀가 만년에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작곡이었다. 그녀가 아끼던 야마하 피아노를 생애 마지막에 팔수밖에 없었다는 부음 기사의 내용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마지막 10년의 공백이 그녀의 쓸쓸한 장례식의 풍경을 전부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녀의 음반들을 들어왔던 재즈 팬이라면 아마도 그녀의 타계가 언론에서, 소셜 미디어에서 그다지 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할 것이다. 왜 그랬던 것일까? 세상은 이 탁월한 연주자의 타계에 왜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것일까?
그런데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음반을 통해 그녀에게 빠져든 소수의 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최고 명성의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1995년, ‘99년 ‘100개의 황금 손가락’ 멤버로 국내 무대에서도 연주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는 국내의 재즈 팬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당시 함께 내한했던 거장 존 루이스, 행크 존스, 그녀와 비슷한 연배의 케니 배런 등의 이름에 가려져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녀가 이 열 명의 피아니스트 이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고 그것은 공연 프로듀서 이시츠카 타카오가 지녔던 혜안의 결과였다. 제시카는 수더분한 명성의 연주자였다. 그녀는 그래미 수상자가 아니었으며(오로지 두 차례 후보로만 이름을 올렸다), 메이저 음반사와 녹음한 적도 없었고, 국립 예술기금(NEA) 재즈 마스터로 선정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제시카 윌리엄스보다 상위 등급의 피아니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현재의 그 어떤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대더라도 제시카 윌리엄스를 넘어설 수는 없다. 심지어 재즈 역사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물론 그녀는 아트 테이텀, 텔로니어스 멍크, 버드 파월, 빌 에번스처럼 하나의 사조를 만든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재즈 피아노의 여러 거장이 만들어 놓은 유산을 가지고 제시카처럼 완성도 높은 연주의 결실을 맺은 인물은 극히 드물다. 이 점에서 그녀를 넘어선 인물을 단 한 명만이라도 꼽는 것이 나는 망설여진다.
이 말은 그녀의 연주를 불행히도 아직 들어보진 못한 재즈 팬에게는 믿기지 않을 것이다. 으레 추모 기사에 쓰는 과도한 찬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생각의 독자를 위해서 이 글은 재즈계의 정상에서 60년간 머물렀던 증인 데이브 브루벡의 언급을 빌려야겠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제시카 윌리엄스는 단연 최고의 연주자 중 한 명이다.”
재즈 역사 전체에서 손에 꼽힐 명연주자
그녀는 무엇보다도 그녀가 들었던 모든 음악들을 자기 것으로 흡수하는 능력에서 탁월했다. 여섯 살 때부터 피보디 음악원 영재 학교에서 수업했던 제시카는 동시에 그 무렵부터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에릭 돌피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열두 살 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익히던 중 그녀의 운지법이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을 보고 현명했던 스승은 그녀에게 데이브 브루벡의 앨범 [타임아웃 Time Out]을 추천했고 이때부터 재즈 연주자로서의 그녀의 인생은 시작됐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음악가들을 여러 번 밝혔는데 그 이름들을 보면 누가 진심인지 헷갈릴 만큼 다양하다. 마일스, 콜트레인(’92년 라디오 인터뷰), 조니 그리핀, 소니 롤린스, 아마드 자말, 덱스터 고든, 빌 에번스(’93년 앨범 라이너 노트), 아트 테이텀, 레드 갈런드, 소니 스팃, 얼 하인스, 에럴 가너, 오스카 피터슨, 매리 루 윌리엄스, 듀크 엘링턴, 멍크, 슬림 게일러드, 벤 웹스터, 냇 ‘킹’ 콜(’96년 앨범 라이너 노트), 빌리 테일러(2006년 앨범), 여기에 러시아 작곡가 빅 파이브(차이콥스키,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쇼스타코비치)까지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명단은 현란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름들을 그냥 열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곡명을 말하면서 그 곡이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 세세하게 밝혔다. 심지어 그녀는 직업 연주자가 된 지 20년이 지난 ‘90년대에 와서 제임스 P. 존스와 패츠 월러, 앨버트 애먼스 등 1920~30년대의 스트라이드, 부기우기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분석했다고 밝혔는데(‘97년 라디오 인터뷰) 이 점은 그냥 말만이 아니라 당시 그녀의 레퍼토리에 선명하게 반영되었다.
십대 때 이미 리치 콜의 사이드 맨으로 활동을 시작한 제시카는 1976년 필라델피아로 진출해서 ‘필리’ 조 존스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샌프란시스코로 자리를 옮겨 그곳의 유명 클럽 키스톤 코너의 하우스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그녀는 과감하게 자신의 리더 앨범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에 올라와 있는 그녀의 최근 사진. 2014년도 즈음으로 추정된다
자기 색깔로 완성한 재즈의 유산들
중요한 점은 제시카가 일급 재즈 연주자에게는 필수의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사이드 맨으로서의 화려한 경력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접했던 모든 음악의 유산을 그녀의 빛깔로 완전히 소화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스탠더드 넘버는 피아니스트 레퍼토리에 한정되지 않으며 그 시기도 초기 재즈에서부터 모던재즈까지 폭넓었다. 모든 작품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대단히 신선했으며 그것을 다루는 테크닉은 완벽하고 섬세하기 그지없었다. 깨지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면서 두 개의 손이 동시에 현란하고 빠른 타건을 구사함에도 그 소리에는 날카롭거나 공격적인 모습이 없었고 오로지 그 수정처럼 맑은 기운만이 감돌았다. 수많은 보기가 있겠지만 ‘93년도에 녹음되어 이듬 해 발매된 앨범 [주머니 속에서 In The Pocket]에 담긴 <캘리코의 소녀 A Gal in Calico>를 들어보라. 아마드 자말의 장기였던 이 곡을 통해 제시카는 한 단계 높은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뛰어난 연주력과 발군의 해석이 돋보이는 1994년 발매작 [In the Pocket].
이 작품 외에도 뛰어난 내용을 갖춘 작품이 그녀의 디스코그래피엔 차고도 넘친다.
작곡가로서 ‘4년 구겐하임 펠로십을 받을 만큼 그녀의 오리지널 작품들은 탁월했다. <우울한 화요일 Blue Tuesday>, 에번스에게 바친 <빌을 기억해요 I Remember Bill>, <퀼트 The Quilt>, <솔다지 Soldaji>, 아키요시 토시코에게 바친 <토시코 Toshiko>, <부드럽게 말해요 Spoken Softly>, <엘보 룸 Elbow Room> 등은 모두가 아름다운 시성과 기품이 넘치는 작품들이다.
만약 그녀가 영향력 있는 밴드 리더였다면 과연 이처럼 아름다운 곡들이 지금처럼 스탠더드 넘버에서 거리가 먼 그녀만의 레퍼토리로 남아 있을까? 한발 더 나아가 그녀가 만약 남성이었다면, 그래서 그녀가 최고 재즈 밴드의 멤버로 밤의 무대를 자유로이 누비고 다니며 먼 원정 연주회를 자유롭게 오고 갔다면, 그래서 사이드 맨으로서 이미 확고한 명성을 얻고서 자신의 활동을 시작했다면 과연 그녀의 타계는 지금처럼 이토록 조용했을까? 그녀의 연주를 들을 때 느끼는 아름다움이 크면 클수록 재즈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며 은밀하게 작동하는 젠더의 논리를 확인하는 것은 마음 한구석을 괴롭힌다.
원래 세상일이란 대부분 불공평하다. 다만 우리가 심미안과 미적 양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불완전함에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이름을 두고두고 기록해야 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잠시 모든 회한을 잊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말이다. 오로지 그녀가 남긴 이 경이로운 녹음에 심취하는 것만이 잠시나마 그녀의 영혼을 쉬게 할 것이다.
- 편히 쉬세요. 위대한 피아니스트 제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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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에 올라와 있는 그녀의 최근 사진. 대략 8여년 전의 모습으로 보인다..jpg (File Size: 170.6KB/Download: 39)
- 2-1 뛰어난 연주력과 발군의 해석이 돋보이는 1994년 발매작 [In the Pocket]. 이 작품 외에도 뛰어난 내용을 갖춘 작품이 그녀의 디스코그래피엔 차고도 넘친다..jpg (File Size: 140.6KB/Download: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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