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재로(Al Jarreau) 추모 칼럼 - 팝과 재즈 완벽히 아우른 경이로운 '천재 보컬리스트'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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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알 재로 Al Jarreau (1943.3 ~2017.2)
그는 내가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일까?!
글/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1980년.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나는 재즈가 싫었다. 나이든 아저씨들이 듣는 것 같은 늙수그레한 나팔 소리가 싫었으며, 반면에 강력한 기타소리와 둔중한 베이스와 드럼이 쾅쾅 울리는 록이 좋았다. 내 또래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면 모두 그랬듯이 나 역시 로큰롤 키드였다.
그러다가 그 해 겨울 방학 때 우연히 듣게 된 음악이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래리 코리엘과 같은 재즈-록이었다. 킹 크림슨, 예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에 막 빠져들고 있던 때라 마하비쉬누나 래리 코리엘의 음악이 아무런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 그 느낌을 당시 대학생이자 골수 음악팬이었던 나의 사촌형에게 이야기하자 그 형의 대답은 이거였다. “마하비슈누와 래리 코리엘이 바로 네가 싫어하는 재즈야.”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 형이 그러면서 내게 건넨 ‘빽판’(물론 위에 언급한 모든 음반들은 전부 ‘빽판’이라 불리던 해적판이었다)이 조지 벤슨의 <배드 벤슨 Bad Benson> (CTI)이었다.
조지 벤슨은 내게 그저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디스토션이 전혀 걸려있지 않은, 전혀 록스럽지 않은 그의 기타 사운드가 내게 밋밋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앨범에서 A면 첫 곡으로 실려 있던 ‘테이크 파이브 Take Five’란 곡은 기묘하게 나를 잡아 끄는 힘이 있었다. 길게 전개되는 즉흥연주도 그랬지만, 명료한 기타의 울림이 일반적인 록 음악에서 들을 수 없는 맛을 주었던 것이다. 나중에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에릭 클랩턴의 블루스를 듣게 되었을 때 이들 기타와 그다지 상관없는 조지 벤슨을 떠올린 것은 뒤죽박죽 무작위의 경로를 통과한 내 음악 감상의 결과였다.
어쨌거나 나는 재즈란 음악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조금씩 벗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음반 가게 아저씨의 추천으로 아무 것도 모른 채(당시 내게 재즈 음반들은 거의 그랬지만) 손에 쥐게 된 것이 알 재로의 두 장짜리 LP <무지개를 바라보며 Look to The Rainbow>(워너)였다. 고백하자면, 여전히 열혈 로큰롤 팬이었던 나로서는 R&B 색채가 강했던 알 재로의 노래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 음반은 이후 조금씩 재즈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이 되었다. 조지 벤슨에 이어서 두 번째 접한 ‘테이크 파이브’가 여기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음역의 팔세토 창법, 종잡을 수 없는 즉흥적인 멜로디. 조지 벤슨이 기타로 들려주던 그 즉흥성이 목소리를 통해 구현 될 때 어린 나는 경이롭기도 하면서 솔직히 생경하기도 한, 묘한 느낌에 사로 잡혔다. 아울러 같은 곡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연주하는 ‘재즈 스탠더드 넘버’의 전통이 재즈에는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런 호기심에 나로서는 그의 두 번째 음반 <새로운 세상 Breakin’ Away>(워너)을 구했다. 아울러 1980년대 초, 알 재로의 노래는 라디오 그리고 당시 TV에서 볼 수 있었던 AFKN 채널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노래와 인기는 마치 팝 가수와도 같았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록 잇 Rock it’을 통해 MTV를 누비던 허비 행콕의 모습과도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앨범 <새로운 세상>에는 ‘테이크 파이브’를 들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던 곡이 있었는데 음반 중간에 실린 ‘터키 풍의 블루 론도 Blue Rondo a La Turk’였다. 당시 나는 이 노래들이 홀수 박자의 노래이고 데이브 브루벡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재즈 가수란 이런 기이한 노래를 부르는구나 하는 느낌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악절과 악절 사이에 알 재로의 목소리는 마치 드럼의 파열음처럼 쉬지 않고 흘러 나왔다.
그로부터 5년 뒤 이미 대학생이 된 나는, 어느덧 재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재즈음반은 손에 꼽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고 재즈 라디오 프로그램은 전무했으며 인터넷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86년 당시 재즈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을 채우러 큰 마음을 먹고 갔던 곳이 이태원의 ‘올댓재즈’였다. 외국인 연주자들과 외국인 관객 사이에 구석자리 홀로 박혀있던 그날, 그곳에서 내 귀를 놀라게 한 것은 알 재로의 노래 혹은 조지 벤슨의 기타로 줄곧 들어오던 ‘터키풍의 블루 론도’와 ‘테이크 파이브’가 어떤 밴드의 연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연주가 오리지널 버전이라고 느꼈고, 디제이 박스로 달려가 그 앨범을 확인했다. 바로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타임아웃 Time Out>(컬럼비아)이었다. 이 음반이 국내에 발매되어 내 방에서도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또 5년이 지난 1991년이 되어서였다. 알 재로의 목소리로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레퍼토리를 들은 지 정확히 10년 뒤의 일이었다. 결국 돌이켜보면 그는 나의 멀고 먼 재즈감상의 항로를 밝혀줬던 등대였던 것이다.
데이브 브루벡의 <타임아웃>이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될 무렵, 나는 그때 비로소 알 재로의 음악적 특성을 ‘순차적으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컬럼비아 레코드의 한국 배급사였던 소니뮤직 코리아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명반 <카인드 오브 블루 Kind of Blues>를 발매했는데 나는 이 음반을 LP 표면이 닳도록 듣고 또 들었다. 그런데 얼마 후 알 재로가 새롭게 발표한 <하늘과 땅 Heaven & Earth>에 <카인드 오브 블루>에 실린 ‘Blue in Green’이 보컬 버전으로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주저 없이 그 음반을 음반매장에서 집어 들었다.
이미 그때 재즈에 대한 나의 취향은 1950~’60년대의 모던재즈로 쏠리고 있을 때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알 재로만큼은 예외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음악 전반과 나의 취향은 많이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가 부른 몇몇의 곡들은 나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나의 오랜 벗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즐겨 들었던 칙 코리아와 리턴 투 포에버의 ‘스페인 Spain’을 훗날 알 재로의 목소리로 다시 만났을 때도 그 사실을 확인했으며 ‘80년대 말 혹은 ’90년대 초 국내 TV에서 방영된 <블루문 특급>(원제 <문라이팅 Moonlighting>)의 주제가에서도 그의 노래는 나를 매혹시켰다. 나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밤의 창공을 날아 10여 년 전 골방에서 혼자 음악을 듣던 소년시절로 되돌아갔다.
그러한 경험은 알 재로가 ’90년대 침체기를 벗어나 의욕적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 2000년대, 이미 내가 재즈를 듣고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된 그 당시에도 계속되었다. 그것은 기묘한 인연이었다. 2004년에 그가 발표한 <긍정적인 것을 강조해요 Accentuate the Positive>(버브)는 에디 해리스의 작품 ‘콜드 덕 Cold Duck’으로 시작되는데 이 곡은 고등학교 입학하던 시절 내가 사촌 형으로부터 아무 것도 모른 채 물려받은 에디 해리슨과 레스 매캔의 음반 <스위스 무브먼트 Swiss Movement>(애틀랜틱)에 실려 있던 곡이었다. 내가 최초로 갖게 된 재즈 앨범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국내 발매된 알 재로의 샘플 CD를 음반사로부터 받아 오디오에 넣고 무심코 틀었을 때 흘러나온 ‘콜드 덕’의 단순 명료한 펑크(funk) 인트로는 그래서 내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나의 소년 시절 내가 앞으로 어떤 재즈를 듣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그는 동시에 내가 어린 시절에 무엇을 들었는지 마치 환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2000년대의 앨범을 만들었다.
조지 벤슨과 투어를 갖던 알 재로의 모습 2007년도
‘테이크 파이브’를 내게 처음 알려 준 조지 벤슨과 알 재로가 함께 한 2006년 앨범 <사랑을 위해 포기해요 Givin’ it Up>(콩코드)는 내게 실질적인 알의 마지막 앨범이었다. 고등학교 때 들었던 조지 벤슨의 ‘산들바람 Breezin’이 알의 목소리로, 알의 ‘아침 Morning’이 조지의 기타로 새롭게 연주되었고 무엇보다도 대학 시절에 들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투투 Tu Tu’와 역시 마일스의 명곡 ‘포 Four’가 알 재로의 목소리로 불린 것은 놀랍고도 신선한 변신이었다.
알 재로의 공연이 그의 건강 문제로 취소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의 심장병이 그를 우리 곁에서 데려갔을 때 ’80년대 한국에서 성장한 한 재즈팬은 오랜 불빛을 잃은 것이었다. 그는 전혀 몰랐겠지만 그는 멀리 있는 한 소년에게 친절한 재즈의 길잡이였다. 몇 달 전 떠난 투츠 틸레망이 그랬고 최근에 떠난 래리 코리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흐른 것이다. 아름다운 그들의 음악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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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보컬리스트 표진호’가 바라본
알 재로의 노래와 음악
USA for Africa 보컬 녹음당시 뮤지션들의 모습 (맨좌측 가운데가 알 재로)
재즈 보컬리스트의 입장에서 알 재로는 누구에게나 추억과 의미가 어느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는 필자에게도 마찬가지. 해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던 알 재로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온 생각들, 그리고 현재 알 재로의 의미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우선 내가 알 재로를 처음 듣고 보고 흥미를 가진 것은 바로 마이클 잭슨 때문이었다. 1985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빌보드 차트에서 ‘USA for AFRICA’ 라는 프로젝트로 미국의 유명 팝스타들이 라이오넬 리치의 작곡, 마이클 잭슨의 주도하에 아프리카 난민들을 위해 음반을 녹음 했었는데 그중 ‘We Are the World’ 라는 곡이 온 세상을 울리고 있었다. 그 곡에서 알 재로는 아주 독특한 음색, 정제되고 절제된 창법으로 나의 귀를 사로잡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알 재로의 음반과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그의 작품을 거의 모두 구입해서 들었으며 공연은 파리에서 한번, 한국에서는 예술의전당에서 관람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음향의 문제로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파리에서의 공연은 조지 벤슨과의 합동공연으로 그의 음악적 원숙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무대였는데, 체력은 많이 노쇠해졌지만 보컬 테크닉만큼은 여전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된 점은 그야말로 음악적으로 아주 넓은 폭을 가진 뮤지션 이였다는 점이다. 그는 스탠더드 재즈부터 R&B, 소울, 컨템포러리 팝등 그야 말로 못하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보컬 퍼커션 분야에서도 아주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번 기고를 하면서 알 재로의 음반을 다시 한 번 들어보았다.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최근의 그는 좀 더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진 발성을 들려주고 있었으며, 끊임없이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음악 스타일을 보여주어 더욱 더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해서 내가 생각하는 몇몇 중요한 싱글과 앨범들과 함께 짧게나마 음악적인 견해를 곁들여 얘기 할까 한다.
알 재로는 70년대 후반에 재즈 스탠더드들이 돋보이는 앨범으로 평단과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앨범 <Look To The Rainbow> 의 ‘Take Five’ 는 그를 아주 독특한 보컬리스트로 각인 시켰다. 그는 이 곡에서 아주 신선하고 개성넘치는 보컬 퍼커션을 보여준다. 특히 이때 그의 목소리는 킹 플레져(King Pleasure) 과 존 헨드릭스(Jon Hendricks) 의 장점과 정제된 목소리를 보여준다고 볼수 있을 정도다.
1984년에는 <High Crime> 이란 앨범에서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가 작곡한 ‘After All ’이라는 곡과 인기 TV 프로그램이던 ‘Moonlighting’(1987) 에서 주제가를 불러 많은 미국인들에게 대중적으로 널리 각인이 되었다. 사실 알 재로는 유럽에서의 지지 기반이 더 강한 편이다. 그가 부르는 컨템포러리 R&B 음악에서의 정제된 창법은 아주 가볍지만 또한 풍부한 배음도 함께 가지고 있어서 굉장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 특히 1994년 <Tenderness> 라는 앨범은 알 재로의 라이브 앨범으로 실로 놀라운 생동감을 선사한다. 하나의 트랙도 놓치기 아쉬운 수작이니, 모든 곡을 들어보길 권한다. 2000년에는 Italy Latina 레이블에서 <Samba de Uma Nota So> 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나왔다. 이 음반은 굉장히 희귀 음반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재즈 스탠더드 넘버로 구성 되어있다. 개인적으로 이 음반을 가장 아낀다. 왜냐하면 알 재로의 스탠더드 해석능력을 이 앨범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으므로... 이 음반은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음악적으로 굉장한 가치가 있다.
알 재로는 평생에 걸쳐 아주 최근까지 음악활동을 지속했다. *폐질환으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데뷔 때부터 최근까지 거의 변하지 않은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 운영 방법은 후배 보컬리스트들이 필히 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절대 무리 하지 않는 성구전환 방법, 그리고 비강발성등을 많이 활용해 빠른 멜로디, 그리고 탁월한 리듬 분할 능력을 갖추었다. 아마도 나의 짧은 소견을 더하자면 그는 바바라 핸드릭스, 캐더린 배틀 등의 여성 성악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악발성의 학습을 자연스럽게 체득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알 재로에 대해 흔히 평가하는 (갖가지 테크닉들, 화려한 스캣과 빠른 혀 놀림, 그리고 퓨전적인 음악성향등) 이러한 것들은 따뜻한 그만의 목소리 톤과 음악적 해석능력이 담겨있지 않았으면 결코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지 못했을 것이다.
* 알 재로우의 공식적인 사인은 호흡 부전인데, 그 전에 심장 부정맥과 폐렴 증세로 건강이 악화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 다시 회복해 공연을 가지긴 했지만 완전치 않았으며 결국 호흡기능의 약화로 생을 마감한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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