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음기, 영화, 타자기 ] - 프리드리히 키틀러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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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음기, 영화, 타자기 우리 시대의 고전 24 |
프리드리히 키틀러 지음 | 유현주, 김남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3월 30일 출간 | 564P
유현주ㆍ김남시가 공역한 프리드리히 키틀러의『축음기, 영화, 타자기』(문학과지성사,2019)는 1986년에 초간된 지은이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머리말을 제외한 3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부는 차례대로 제목에 나온 축음기ㆍ영화ㆍ타자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 앞서 나온 그의 또 다른 주저『기록시스템 1800.1900』(문학동네,2015,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11)에서 인류의 기록체제를 ‘기록체제 1800’과 ‘기록체제 1900’으로 나누었는데, 축음기ㆍ영화ㆍ타자기는 문자 중심의 ‘기록체제 1800’을 종언시킨 최초의 기술 매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기록체제 1900’의 탄생과 의의를 다루고 있다. 이 독후감의 목적은 이 책의 공역자들이 키틀러를 간략히 해설한『프리드리히 키틀러』(커뮤니케이션북스,2019)를 요약하면서, 본서의 제1장(축음기)을 소개하는 것이다.
키틀러(1943~2011)는 독일의 매체철학을 대표하는 매체이론가다. 독문학자로 출발한 그는 자신의 문학 텍스트 분석 작업에 미셸 푸코의 담론 분석을 원용했다. 푸코의 이론에서 담론(discours)은 ‘말의 규칙’을 뜻한다. 우리는 자신(‘나’)이 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말을 하지만, 푸코의 이론에 따르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말의 규칙이다. 즉 우리는 자의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ㆍ어디서ㆍ누구와 어떤 말을 나누어야 할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말을 한다. 예를 들어 상가 집에서 상주에게 유명 재즈 아티스트의 안부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푸코의 담론 이론을 확대하면 인간도 인간성도 모두 허구가 되고 규칙(권력)만 남게 된다.

20세기초 만들어졌던 타자기
푸코의 반인간주의적 입장은 키틀러의 매체 이론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푸코의 담론 분석이 각 시대의 담론이 그 시대의 말하기 규칙을 규정하고 그를 통해 주체를 만들어 낸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면, 키틀러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러한 각 시대의 담론을 규정하는 것은 매체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붓으로 글을 쓰던 시대에는 인간의 팔과 붓이 연결되어 있으면서, 글을 쓰는 이에게 현전(現前ㆍpresence)이라는 강력한 의식을 가져다준다. 이때 그의 문장은 그의 정신과 분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타자기의 발명은 글을 쓰려는 사람과 타자를 치는 사람을 분리한다. 이제 그의 문장은 조작적이고 유희적이 되며, 심하게는 필자가 문장으로부터 소외되기도 한다. 이런 기술적인 변화는 담론의 규칙마저 바꾸어 놓는다.
키틀러 이전에 가장 유명한 매체 이론가였던 마셜 매클루언은 매체를 ‘인간 감각의 연장’으로 정의하였으니, 그는 매체를 사용하는 인간을 매체보다 우위에 놓은 것이다. 하지만 키틀러는 그와 정반대 입장에서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사유는 인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지배적 기술이 만들어낸 종합적 효과일 뿐이다. 문자의 독점이 끝나지 않았던 1800년대에는 인간이 사고를 했으나, 타자기와 전기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술 매체는 인간의 사고와 지각을 바꾸었다.
예컨대 인터넷 시대를 기점으로 우리의 인성이 크게 달라졌다면, 키틀러의 주장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이 악명 높은 매체유물론자는 ‘인간’을 이야기 할 때, 항상 ‘소위 인간’이라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까닭은 인문학에서 말하는 인본주의적인 인간 개념이 그의 이론 속에 들어설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인문학 영역에서 아예 정신적인 것을 추방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으로 ‘반휴머니즘’이라거나 기술결정론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인공지능 발전 방향은 키틀러의 분석에 손을 들어 주게 한다.”
마지막으로 키틀러가 자신의 매체 이론에서 유별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기술 매체의 발명과 발달이 철저히 전쟁과 군사적 목적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은 그렇게 낯설지 않지만,『축음기, 영화, 타자기』제1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락 산업은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결국 군사 장비의 남용이다.” 여기서 그는 슈토크하우젠의 전자음악을 비롯해 외양으로는 반체제처럼 보이는 지미 헨드릭스ㆍ롤링 스톤즈ㆍ레드 제플린ㆍ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군사 장비로 개발된 다양한 발명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인 차이로 흔히 ‘언어’의 사용유무를 꼽고 있지만, 키틀러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이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를 ‘저장/전파’하는 능력이다. “말씀이란 동물도 구사할 수 있는 구술적 담화가 아니라, 저장과 전파의 능력으로 인해 결국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문자였다.” 바로 이 때문에 문자ㆍ청각 데이터ㆍ이미지를 저장하고 전파할 수 있게 해주는 타자기ㆍ축음기ㆍ영화가 인간의 기록체제를 근본에서부터 혁신한 첫 번째 매체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세 번째는 컴퓨터).

그라모폰이라 불렸던 축음기
녹음과 재생 기술의 발명은 문자(악보)가 미처 기록하지 못하는 잡음은 물론 무의식마저 기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시도는 바그너의 악극에서 이미 시도되었으나, 축음기가 발명되면서 바그너 악극이 도달하지 못한 완성을 이루었다. 지은이는 그것을 “실재계가 상징계를 밀어내고 출현한다.” 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녹음과 재생 기술은 전자 매체 이전의 어떤 기록체제(문자)도 선사하지 못했던 “환각적 소원 성취”를 실현시켜 준다.
녹음 기술과 음반은 종래의 서정시가 추구했으나 실패했던 환각적 소원을 성취시켜 주었으나, 실제로는 그것을 얻기 위해 음악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먼저 공연장과 아티스트와 함께 음악을 듣는 공동체를 잃어버렸다. 청중은 음악의 현장과 만나지 못하고, 아티스트는 자신의 기예를 보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졌고, 음악을 공유하는 공동체는 ‘월드 뮤직’이라는 음반 산업이 되고 말았다.
음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공기의 진동을 통해 영글어지는 시간의 예술이 아니라, 골전도(骨傳導)에 직입된 “조작 가능한 시간의 계측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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