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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기타] - 김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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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기타

기타를 씨줄로 삶을 날줄로 촘촘하게 엮어낸 에세이

김종구 지음 | 필라북스 | 20190311일 출간 | 308P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악기를 하나 이상 다룰 줄 알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어느 연구에 의하면 악기를 시작한 사람의 50%는 석 달 만에 포기하고, 반 년 가량이 지나면 30%가 그만두고, 1년이 지날 즈음에는 10%가 또 그만둔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어느 악기라도 하나를 연주할 줄 안다면 그는 끝까지 살아남은 10%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많은 음악 천재들은 유아를 겨우 벗어난 나이부터 악기를 연주했다. 그런데 그들처럼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없는 일반인이 직장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어 악기를 배우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오후의 기타(필라북스,2019)를 쓴 김종구는 쉰 두 살이 된 20093월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할머니는 손자의 중학교 졸업 선물로 기타를 사주었다. 그때는 바야흐로 한국 포크 음악의 전성기였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친형의 친구들 중에는 기타를 잘 치는 형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자상하게 기타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기타리스트 중에는 어린 시절에 형이 치다 싫증을 내고 내팽개친 기타를 갖고 놀다가 대가가 되었다는 식의 신화를 가진 이들도 있건만, 지은이에게는 혼자서 기타를 연마할 재능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은이는 연합뉴스에서 근무하다가 1988<한겨레> 창간 작업에 합류했다. 그 후 줄곧 이 신문사에서 일하며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마지막엔 편집인으로 퇴사를 했다.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던 그는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있던 2008년 초가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부근에 있는 풍금이라는 카페에 우연히 들르게 되면서 십대 때 코드 몇 개만 익히고 까맣게 잊었던 기타를 다시 배워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조그만 건물 3층에 있는, 사람이 10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조그만 카페에는 풍금 대신 기타가 두 어 대 놓여 있었고, 40대 이상의 중년층이 대부분이었던 손님들이 번갈아 가며 보통이 아닌 기타와 노래 솜씨를 들려주었다. 지은이는 편집국장 임기가 끝난 이듬 해, 기타를 배우고자 종합 음악학원에 수강 등록을 했다. “인생을 하루로 치면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한 해거름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셈이다. 늦은 오후의 고즈넉한 햇살 아래서 기타의 선율에 빠지는 삶은 행복하고 즐거웠다.오후의 기타라는 책의 제목은 거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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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스스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가 쓴 클래식 기타 에세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책은, 지은이가 10년째 기타를 배우며 새삼 깨달은 음악의 즐거움과 악기 연마의 비방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음악이 주는 즐거움이 문장에 배어있고, 지은이가 시간과 몸을 바쳐 터득한 깨달음이 곳곳에 나타나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어려서부터 악기 하나를 터득해 보겠다는 로망()을 가졌으나 생활에 쫓겨 실천하지 못했다가, 장년이 되어 가로 늦게 악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현존하는 세계 정상급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의 대부분은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들의 프로필은 대략 3살 때 기타에 입문, 11살에 첫 연주회, 14살에 국제 기타 콩쿠르 우승, 15살에 첫 음반 발표등으로 나열된다. 클래식 기타 분야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 전 분야에서는 얼마나 일찍 시작하느냐가 관건이다. 중학교 때 클래식 기타를 시작해 정상급에 오른 국내의 한 프로 기타리스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콩쿠르에 나가 보면 아주 어릴 적에 배운 친구들에 비해 기술적으로는 내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기술의 완벽함보다는 자신만의 곡 해석으로 그 벽을 극복해야 하는데, 자신만의 곡 해석 또한 테크닉을 완성하는 것만큼 어렵다.

 

 

나이가 들면 이미 배운 지식과 기술에 더욱 정통하게 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은 퇴화한다. 지능도 지능이지만 기타 교습의 가장 큰 난관은 나이가 들면서 손가락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기타를 잘 치려면 우선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가 최대한 벌려져야 한다. 그래야 지판을 제대로 짚을 수 있다. 이것이 영토 확장이라면 다른 하나는 독립이다. 각각의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손가락이 날쌔고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기타를 제대로 칠 수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기타를 배우면 아무래도 근육이 굳어져서 애를 먹게 된다. 아무리 기를 써서 손가락을 벌려 봐도 지판이 제대로 짚어지지 않는다.”

앞서 나왔지만, 많은 사람이 악기에 도전하지만 중도에서 그만두는 커다란 이유는 빨리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조급증 때문이다. 지은이가 기타 레슨을 2년쯤 했을 때였다. “기타 실력의 발전이 더디게 느껴지면서 회의가 몰려왔다. ‘나는 클래식 기타를 하기에는 재능이 없고 나이도 너무 늦은 것 아닌가.’” 지은이는 독학은 이런 회의에 쉽게 무너진다면서, 개인 교습을 받으면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적다고 한다. “만약 코드를 잡고 노래 반주를 할 정도의 실력을 목표로 한다면 독학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동호회나 문화센터 등에서 배우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클래식 기타를 정통으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클래식 기타를 배우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어서 배워서 <로망스>, <카바티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그런데 초보용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로망스>는 세계적인 프로 기타리스트들도 프레이징이나 아티큘레이션을 제대로 살려서 연주하기가 어려운 곡이라고 하며, 지은이는 지금까지 모신 세 명의 선생에게서 8년째 <카바티나>를 배우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누군가가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꼭 연주해보라고 청하는 곡 가운데 하나인데, 10년째 교습중인 지은이는 아직도 이 곡을 제대로 못 친다고 한다. “이 책을 쓰는 것을 애초 망설였던 이유 중의 하나도 알함브라 때문이었다. 알함브라를 능숙하게 연주하지 못하면 클래식 기타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알함브라는 아마추어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 같은 곡이다.”

 

 

악보를 외우고 나서는 악보를 다시 보지 않는 습관을 가진 지은이에게 기타리스트 오승국은 한 번 암보를 하고나서 그다음부터 악보를 보지 않고 계속 연습을 하게 되면, 박자는 물론 음까지 틀리는 경우가 생긴다고 주의를 주었다. 이 대목은 악기와 상관없는 인문학자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하다. 말하자면, 옛 어르신들의 공자왈, 맹자왈은 많은 부분 기억에 의지하고 있는 암보인데, 기억은 자기 편한 대로 공자, 맹자를 왜곡시킨다. 이들은 그것을 힘들게 외웠기에, 좀체 자신의 기억은 물론 최초의 해석마저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공자맹자가 아니라 칸트나 헤겔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한번 외운 것을 바꾸지 않고 평생 써먹는다. 자신의 기억이 틀렸거나, 자구는 같되 해석이 최신 연구에 의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은 상상도 하려고 들지 않는다. 음악이든 인문학이든 암보에 의지하지 말고, ‘악보/을 옆에 놓고, 계속 보고 심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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