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세가와 요헤이의 도쿄 레코드 100] - 하세가와 요헤이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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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요헤이의 도쿄 레코드 100
하세가와 요헤이 저 | 김밥레코즈 | 2003년 3월 | 232P
어쩌다 홍대 근처에 있는 술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 집은 ‘시티팝’을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집이었다. 생소한 노래를 들으면서 주인장으로부터 시티팝에 대한 귀동냥도 하고, 뜻하지 않게 책도 한 권 선물 받았다.『하세가와 요헤이의 도쿄 레코드 100』(김밥레코즈,2023)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 뮤지션 하세가와 요헤이는『고고! 대한 록 탐방기 - 신중현, 산울림부터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록의 향연』(북노마드,2015)라는 흥미로운 책의 지은이이기도 하다.
『하세가와 요헤이의 도쿄 레코드 100』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일본 대중뮤지션이 만든 음반 가운데 시티팝으로 불리거나 불러도 무리가 없는 음반 100장을 소개한다. “일본에 이미 발매된 가이드북이 많지만, 사실 시각 차이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한국적 시각’에서 시티팝 명반을 소개하고 싶다는 취지로 이 책을 쓰게 됐다.”, “음반 선정은 거의 내 개인적 취향과 판단을 기준 삼았지만, 입문자들의 시선을 많이 고려했다. 어디까지나 문턱을 낮춰 가능한 한 현재 일본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1천엔 내외로 살 수 있는 명작들을 고르려 했다.”
[도쿄 레코드]의 저자인 하세가와 요헤이. 과거 곱창전골, 뜨거운감자,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밴드를 거쳐 현재 DJ 활동도 병행해오고 있는 중이다. 일본이름의 한글 발음인 양평을 한국어 이름으로 사용해 양평이형이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은이는 한국의 시티팝 애호가와 컬렉터가 ‘디깅’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 때문에 시티팝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려는 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음악은 ‘듣고’서야 ‘알아’지는 것이기에, 이 책에 소개된 100선의 레코드를 유튜브로 하나씩 찾아 들으며 시티팝을 알아갈 수 있다. 그것이 최상이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음악책을 읽는 자유를 누리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재즈와 클래식을 들으며 힙합에 대한 책도 읽고, 국악에 대한 책도 읽고, 록에 대한 책도 읽는 것이다. 시티팝이라고 해서 이 자유를 반납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음악책을 읽는 이유는 음악과 사회가 맺고 있는 양상과 맥락이지, 그 음악을 더 잘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힙합과 K-팝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거기 나오는 ‘명곡’을 모두 들어보려는 만용을 부렸다가 죽을 뻔했다. 나한테는 고문이었어).
시티팝은 일본 음악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일본 대중음악 전체를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넷 서점에 이런 저런 검색어를 넣어 보았는데, 마땅한 책을 못 찾았다. 대신 황선업의『당신이 알아야 할 일본 가수들』(스코어,2016)과 사토 유키에의『일본 LP 명반 가이드북 – 가요에서 록, 시티팝까지』(안나푸르나,2021)를 손에 넣었다. 이 두 권의 책도『하세가와 요헤이의 도쿄 레코드 100』처럼 컬렉터들을 위한 음반 가이드북이다. 일본 대중음악에 관한 본격적인 소개서는 하나도 없는데, 음반 가이드북은 여러 권이나 되는 이 현상은 재미있다. 먼저 이 현상은 음악은 아는 것(일본 대중음악사!)이 아니라, 듣는 것(명반을 들으라!)이 우선이라는 앞서의 진리를 다시 일깨워 준다. 다음으로 이 현상은, 일본에 대한 앎에는 관심이 없지만 일본을 향유하는 많은 기호층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음반 가이드북이 여러 종이나 나올 만큼, 일본 음악을 즐기는 기호층이 두텁다는 것은 일본 대중문화의 유입을 노골적으로 억제해온 한국 정부의 비공식적이면서 노골적인 억제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일본 가수가 한국 텔레비전에 처음 나온 것은 1978년 서울국제가요제에 참가했던 시몬 마사토인데, 그는 일본어 노래는 방송에 나올 수 없다는 주최국의 불허 원칙에 따라 참가곡 <Face of Love>를 영어로 불러야 했다. 이 원칙은 지금도 불변인데, 요즘 세상에 누가 외국 가수나 노래를 텔레비전으로 만난다는 말인가.
흔히 일본의 전통 대중음악으로 엔카(演歌)를 꼽지만, 1940년대에만 해도 엔카는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았다고 한다. 전전(戰前)에 유행했던 단음계 멜로디를 기본틀로 엔카가 완성된 것은 작곡가 코가 마사오(古賀政男,1904~1978)의 활약에 힘입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이때부터 ‘엔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는데, 이 시대에 엔카가 정립된 데에는 사정이 있다.
일본 대중음악사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승리자인 미국의 대중음악을 모방하기 시작한 1945년을 영년(零年)으로 한다. 처음에는 재즈가 기저였으나, 1950년대 중반에 엘비스 프레슬리와 로커빌리가 유입되고, 1960년대부터는 에레키(‘일렉트릭 기타’의 일본식 약어) 밴드 붐이 일면서 미국 대중음악이 청년층을 뒤흔들었다. 일본의 보수 세력은 자국의 문화가 한때 적성국이었던 대중음악에 침범당하는 것을 또 하나의 패전으로 생각했다. 이에 미국의 문화적 침략에 대응하는 ‘만들어진 전통’으로 엔카가 NHK의 집중 지원을 받았다. 반면, 벤처스나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GS(‘Group Sound’의 약자) 음악은 높은 인기와 무관하게 방송금지 조처를 당했다.
1966년 6월 30일, 비틀즈의 역사적인 일본 공연이 일본 시장의 크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도 남는 만큼, 영미의 유명 록 밴드 중에 일본에서 공연을 한 밴드보다 공연을 하지 않은 밴드를 찾는 게 더 어렵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일본에서는 1970년대 초에 록이 성장 단계에 들어섰고, 1970년대 후반이 되자 일본 록은 성숙기를 맞이했다. 일본 록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4인조 록 그룹 ‘핫피엔도’가 1970년에 1집 ≪핫피엔도≫와 이듬해에 낸 2집 ≪바람 거리의 로망≫에서 일본어 노래로 성공을 입증하기까지, ‘일본의 록 밴드는 일본어로 노래를 부른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밴드들은 록 사운드와 일본어의 어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정지었는데(영어로 불러 해외에서 히트시킨다는 목표도 물론 있었다), 이런 믿음의 실체 또한 왜곡된 형태의 패전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야마시타 타츠로가 1982년도에 발표한 [For You]. J-POP, 시티팝의 초기 대표작이자 명반으로 인정받는다.
하세가와 요헤이가 그의 책 프롤로그에 쓴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시티팝의 양대 명작’으로 야마시타 타츠로의 ≪FOR YOU≫와 타케우치 마리야의 ≪VARIETY≫를 꼽는다고 한다. 그 자신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펼쳐본 그의 음반 소개글에 따르면 전자는 “100년 후에도 퇴색하지 않을 걸작”이며, 후자는 “시티팝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그건 <Plastic Love>다.”라는 영예를 얻었다. <Plastic Love>는 ≪VARIETY≫ 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을 직접 작사ㆍ작곡한 타케우치 마리야의 곡이며,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야마시타 타츠로다. (나는 음악책을 읽으며 그 음악을 상상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듣고,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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