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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에 연재되었던 엠엠재즈 재즈이야기 컨텐츠들을 이전하였습니다.
글: 최범 | 재즈를 사랑하는 산부인과 의사(서울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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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um 2

한참을 헤엄치다 문득 돌아보았더니 뒤따라오던 아버님이 보이질 않았다. 폐병이 중한 아버님이 그렇게 오랫동안 헤엄치는 건 불가능 한 일이었다. 시신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울며 울며 건너간 그 바닷가에 아버님을 묻고 육지에 도착했을 때는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품속의 아기가 전부였다. 
일가친척도 하나 없었다. 처음 한 동안은 멍하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바다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딸을 보고서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뼈 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지독한 배고픔을 이겨낸 건 오직 딸 때문이었다. 
여자의 몸으로 온갖 험한 일을 해 내면서 힘들게 딸을 키웠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그 바닷가를 찾아 짧았지만 행복했던 생활을 추억하고 남편이 묻혀있는 검붉은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눈물지었다. 

사고가 났던 날은 어렵게 키운 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자 인사를 드리자며 아버님이 묻혀있는 바닷가를 다녀오던 중이었다. 어머님은 이렇게 당신 딸을 훌륭하게 키워 곧 예쁜 손주도 볼 수 있으니 이제는 당신 곁에 가도 떳떳하다면서 처음으로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이야기를 마친 남편의 베개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모두들 착한 분이셨으니 비록 사고를 당하셨지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며 산모를 수술할 때 아기에 대한 기도도 하였노라고 대답해 주고서는 병실을 나왔다... 

그 날 진료가 끝나고 그 바닷가 해안을 찾아보니 이야기 속에 나오던 해안가는 사라지고 해안도로가 나있었다. 갓 길에 차를 세우고 난간에 기대어 있으니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바닷바람이 한 겨울처럼 매섭게 느껴졌다. 
차가운 바다, 그 모든 비극을 다 삼켜버린 바다는 무심하게도 싸늘한 바람소리에 그저 파도만 출렁일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지는 해의 빠알간 석양이 떠나가는 그네들의 모습처럼 보여도 저 바다너머 밝고 따뜻한 세상으로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몸이 너무 차가워져 차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슬픈 그네들이 떠나는데 진혼곡이라도 들려주고 싶었다. 차 속을 뒤져 고른 음반은 [Officium]이었다. 

막 석양이 사라진 어둡고 텅 빈 바다에 아무 반주도 없이 기도문을 읊조리는 듯 경건한 힐라드 앙상블의 코랄 화음이 시작되고, 어디선가 한줄기 강한 빛처럼 얀 갸바렉의 색소폰이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그레고리안 성가 같은 보컬에 악기는 얀 갸바렉의 색소폰 하나뿐이건만 레퀴엠에 사용되는 모든 악기의 소리가 들린다. 신의 기운이 가득하다. 
재즈 색소폰이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담아내는 소리라면 고대성가 합창은 이에 화답을 하며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천상의 목소리이다. 고대와 현대를 모두 나타내면서 어울릴 수 없는 종교음악의 경건함과 즉흥적인 재즈의 자유로움이 잘 버무려져 표현되어 있으며 이후 유행하게 된 아카펠라의 기준을 제시해 주었고, 바로크 이전의 음악에 대한 연구를 가져오게 된 음반이다. 
인간의 마음과 신의 소리를 모두 담아내면서 이토록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하고 전율이 느껴지는 음악이 또 있었던가? 깊은 종교적인 체험을 느끼며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젖은 눈을 감으니 어디선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의 소리가 들린다. 

‘여보 이제 왔구려, 이 추운 곳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우리 사랑하는 딸도 왔구나.’

‘흑...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너무나 힘든 인생이었어요. 아빠 얼굴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가야, 이분이 할아버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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