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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편집장이 직접 전해주는 재즈와 여러 음악 이야기들. 아티스트 추모 칼럼에서 인터뷰, 이슈및 논란이 되는 여러가지 사안들을 포함해, 다양한 시각을 담보한 여러 종류의 글들이 함께 다뤄지게 됩니다. 음악을 듣고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을 좀 더 폭넓고 깊이있께 가져가고자 기획된 코너!

Johnk

#28 Tribute - 유한한 삶 넘어, 영원의 예술세계 추구했던 거인 -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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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영화음악가, 엠비언트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1952.1 ~ 2023.3

 

유한한 삶 넘어, 영원의 예술세계

추구했던 거인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KAB Inc

 

지난 42일 또 한명의 위대한 음악가 타계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일본 출신으로서 영,미권을 포함해 전 세계적인 명성을 30년 넘게 이어온 몇 안 되는 뮤지션이자 영화음악가로서도 당대 최정점에 도달했던 류이치 사카모토가 오랜 암투병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제 그가 세상을 떠나신 건 328일이었지만 공식적으로 그 소식을 알린 날짜는 그로부터 무려 5일이 지나서였죠. 통상적으로 운명한 그날, 혹은 그 다음날에 타계 소식을 알리는 편인데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관한 이유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생전 사카모토가 장례식을 절친한 가족과 내부 관계자들 외에 팬들의 참석 및 일체의 조문을 원치 않았기에 장례식을 내부적으로 마무리한 이후 타계소식을 전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가 커리어 초, 중반기 남긴 영화음악 주제가및 삽입곡들, Merry Christmas Mr.Lawrence, The Last Emperor, Rain, The Sheltering Sky, High Heels, The Wuthering Heights 같은 곡들이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저녁, 심야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이 곡들이 꾸준히 리퀘스트 되었으며, 그 여파로 지금도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명반 <1996>2년여 뒤 발매되었던 피아노 솔로 앨범 <BTTB>이 국내 라이선스로도 소개되며 단숨에 인지도가 급상승했죠. 현재 국내 인지도의 상당부분은 이 시기 만들어졌다고 보면 틀리지 않은데, 그 여파로 2000년도에 첫 내한 공연까지 성황리에 갖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전시회를 포함해 한국에 지금까지 4차례 정도 다녀갔으며 남한산성 같은 국내 영화 O.S.T 작업에도 참여하면서 이곳과의 접점을 우호적으로 만들어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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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에 삽입된 동명의 타이틀 곡 (부제 Forbidden Color) 의 보컬리스트였던 데이빗 실비앙과 함께한 젊은 시절 류이치 사카모토 

 

 

젊은 10대 유년시절 사카모토는 프랑스 출신의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의 음악에 깊이 매료되어 한때 스스로를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믿을 정도로 그와 자신을 동일시했었고 또 그에 못지않게 바흐에도 깊이 빠졌었기에 사카모토의 작품에는 이런 고전 음악들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선율과 화성들이 적잖이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선율미가 전면에 발현된 곡들이 앞서 언급한 우리가 오랫동안 듣고 사랑해온 그의 대표 명곡들인 것이죠.

그러나 사카모토는 거기에만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영화음악 작업에서 이런 현악 기반의 클래시컬한 요소들을 적극 부각시킨 한편 자신의 솔로 작품들에서는 전자음향에 방점을 둔 작업들을 더 많이 시도했으며 때론 이런 일렉트로닉스 기반의 소리들과 현악, 어쿠스틱 악기들을 함께 접목시켜 사운드적인 실험을 과감하게 보여주었고, 이 과정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더욱 크게 부각됩니다. 필자가 보기에 사카모토의 관심은 이 시기 이후부터 고전적인 화성의 아름다움에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보는데 그렇기 때문에 21세기 이후 그의 신작들에서 예전의 대표 명곡들과 같은 모습들이 잘 보이지 않는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 시기이후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현대음악의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좀 더 이해가 쉬워지고 납득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소리, 노이즈, 음가, 화성, 비화성, 리듬, 비리듬, 이런 모든 요소들을 상호 동등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걸 한데 작품으로 담아내려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합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이런 구상을 시작하게 된 동기, 이유에 관한 중요한 단초들이 바로 2017년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코다(Coda)]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그가 오래전부터 영감을 받은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 특히 [솔라리스 Solaris]의 사운드트랙을 보면 자연에서 발생되는 여러 가지의 소리들을 담고 있는데 사카모토는 타르코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이 소리들을 그냥 무의미하게 일어나는 그대로 담지 않습니다. 아주 세밀하고 민감하게 자신이 원하는 느낌이 맞지 않을 경우 도구를 다르게 가져가 소리를 여러 각도로 만들고 실험하곤 하면서 이걸 음악적으로 엮어내었죠. 이런 과정들은 그가 암투병을 하게 된 이후 더욱 심화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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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코다<Coda>)의 포스터

 

 

이미 그가 2014년도부터 암투병중이며 처음 발병한 인두암에서 직장으로 암이 전이되었다는 소식 또한 국내 뉴스를 통해서도 전해졌었기에 여간한 팬 분들이시라면 다 알고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암환자에게 다른 부위로 전이되었다는 소식은 생존율을 아주 크게 떨어트리는 결과이기에 재작년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스스로도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수차례 언급하기도 했고요. (이번 타계소식을 듣고 난 뒤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직장 외에도 간과 림프구등으로 암세포가 넓게 전이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여파로 직장과 대장 30cm정도를 이미 절개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머지않아 찾아올 자신의 죽음 앞에 너무나 담담하고 초연한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음악가로서 그는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오히려 내면으로 승화시켜 마치 구도적 자세를 작품에 담아내는 것 같은 모습을 투병기간 내내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암투병 이후 발표한 <Async>, <12> 같은 정규 앨범과 그 외 <Revenant>, 한국 영화인 <남한산성 The Fortress>을 포함, 몇 편의 영화음악들에 담긴 소리들은 과거의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선율미를 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대신 소리의 표현 자체에 더욱 포커스를 두고 있습니다. 2017년도 공개된 그의 다큐멘터리 [Coda]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자연과 사물들에서 생겨나는 여러 형태의 소리들을 채집해 이를 자신의 사운드 소스로 활용하거나,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디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커리어 후반기 작업의 핵심이라고 보는데, 놀랍게도 이 소리들은 기존의 전자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것과는 무척 다른 울림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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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스임에도 전혀 기계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템포도 화성도 전혀 일정하지 않지만 그 소리들은 일정한 내러티브를 분명히 갖고 있으며 또 그 안에 감정, 이미지들도 일부 내포하고 있죠. 무엇보다 자연의 소리들이 갖고 있는 파동, 공간감이 그 안에 담겨져 있는데 그래서 소리의 여운이 좀 더 지속되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점들은 어쿠스틱 악기들을 함께 사용하건 전자악기를 위주로 사용하건, 혹은 둘 다 함께 사용하건 상관없이 동일하게 유지되더군요. 젊은 시절 클래식을 포함한 서구 현대 음악을 깊이 파고들면서 동시에 세계 여러 곳의 민속음악에도 동일한 수준의 탐구심을 보여준 그의 마지막 행보는 바로 자연의 소리, 파형에 가장 근접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가 영화 O.S.T 작업에 참여했던 베르나르토 베스톨루치 감독의 1990년도 영화 [The Sheltering Sky] 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동명 원작 소설을 쓴 폴 보울스가 직접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이 문구를 생전 사카모토는 아주 좋아했는데, 간단하게 의역하자면

인간은 영원을 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렇게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며 순간순간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Because we don’t know when we will die, we get to think of life as an inexhaustible well. Yet everything happens only a certain number of times, and a very small number really. How many more times will you remember a certain afternoon of your childhood, an afternoon that is so deeply a part of your being that you can’t even conceive of your life without it? Perhaps four, five times more, perhaps not even that. How many more times will you watch the full moon rise? Perhaps 20. And yet it all seems limitless.”

 

이 문구를 사카모토는 이 영화의 O.S.T를 작업한 1990년 이후부터 줄곧 가슴에 담아왔습니다. (이 문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앨범 <Async>에 담긴 ‘Fullmoon’ 에 다시 한 번 나레이션 그대로 담아냅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그가 평소 입버릇처럼 되뇌던 ‘Art is Long, Life is Short’ 와도 맥락이 이어지죠. 자신이 평생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 글귀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그는 암투병 막바지 음식을 제대로 삼키기 어려운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력이 닿는 순간마다 창작에 몰두했고 결국 올해 초 12개의 연주곡이 담긴 앨범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시아 출신을 떠나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종합적이면서 본질적인 관점으로 음악을 일관되게 바라보고 평생 소리를 탐구해온 뮤지션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분명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웠을 자신의 시한부 인생 앞에 더욱 더 깊고 본질적인 소리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그의 행보는 예술가로서는 물론이고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값지고 고귀하며,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의 철학과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긴 음악, 소리들을 남기고 이곳을 떠난 사카모토의 영혼이 더 이상 고통 없이 진정한 쉼을 얻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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