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도널드슨(Lou Donaldson) 추모 칼럼 -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진정한 전통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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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소울 재즈의 전설 우리 곁을 떠나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진정한 전통주의자
루 도널드슨(Lou Donaldson) 1926.11 ~ 2024.11
글/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지난 2023년 10월 30일, 뉴욕에 위치한 디지스 코카콜라 클럽(Dizzy’s Club)에서는 알토 색소폰의 전설 루 도널드슨의 아흔일곱 번째 생일 파티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그의 대표곡 <블루스 워크 Blues Walk>가 연주되었고 그를 기억하는 재즈 연주자들과 재즈 팬들의 박수 속에서 ‘스위트 파파 루’는 그의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이 행사는 2021년에도, 2022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매해 열렸고 루 도널드슨은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부르거나 연설을 남겼다. 그는 재즈계의 전설이었고 명사(名士)였다.
하지만 예정되어 있던 2024년 생일 파티는 루의 폐렴 악화로 열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생일이 여드레 지난 11월 9일, 이 노장은 아흔여덟 살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가디언>, <피플> 등 외신들은 “재즈 히트곡 <앨리게이터 보갈루 Alligator Bogaloo>의 명연주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으며 <뉴욕 타임스>는 “완벽한 기교의 연주자이자 1952년부터 블루노트 레코드의 주역으로 활동 해온 인물”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재즈앳링컨센터에 위치한 디지스 클럽에서 96번째 생일축하파티를 맞는 루 도널드슨의 모습. 2022년도
반면에 최근 몇 년 사이에 블루노트 레코드에 대해, 그리고 소위 ‘레전드’에 대해 유독 열광하고 집착하는 것 같았던 국내에서, 재즈 월간지를 제외하면 그 어떤 활자 매체에서도 그의 부고를 읽지 못했다는 점은 의아함을 넘어 슬픈 일이었다. 1952년부터 1974년까지, 그 가운데 단 3년만을 제외하고 19년 동안 블루노트 레코드에서 수십 장의 앨범을 녹음하며 이 음반사의 스타일을 주조해 온 그의 죽음마저 외면 받은 것은 우리의 재즈 대중화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지점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70년이 넘는 그의 연주 경력 속에서 그의 음악은 비밥에서부터, 하드밥, 소울 재즈까지 넓게 드리워져 있다. 그중에서 1960년대에 구사했던 그의 소울 재즈는 그의 음악적 정체성이었고 그 주춧돌의 주역 중 한 명이 루 도널드슨이었다.
모던재즈의 한 줄기인 하드 밥과 재즈 바깥의 큰 흐름이었던 리듬 앤드 블루스의 혼합물이었던 이 음악은 1970년대에는 결국 퓨전 재즈의 한 갈래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이 음악은 ’60년대만 하더라도 모던재즈의 ‘해독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비밥 이후 재즈의 주류가 즉흥연주를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그 급진성에 제어 장치를 잃어버렸을 때 소울 재즈는 ’60년대의 방식으로 재즈와 그 뿌리인 블루스, 가스펠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아트 블레이키의 커리어 대표작중 하나로 평가받는 1954년 버드랜드 클럽 실황 연주당시 밴드의 모습.
좌로부터) 클리포드 브라운, 컬리 러셀, 루 도널드슨, 아트 블레이키
루이스 앤드루 도널드슨 주니어는 1926년 11월 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소도시 배딘에서 태어났다. 루가 태어나기 불과 한 달 하고 일주일 전, 배딘에서 남동쪽으로 약 43마일 떨어진(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 노스캐롤라이나의 소도시 햄릿에서는 또 다른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이 태어났다. 하지만 이후 루는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반면에 존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두 사람이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음에도 멀리 떨어진 두 도시에서 성장한 것은 두 사람의 음악이 같은 뿌리에서 출발해 결국 꽤 멀리 떨어진 스타일로 발전했던 모습과 닮아있다. 다시 말해 루 도널드슨의 음악은 같은 해에 태어난 재즈의 거인 콜트레인의 음악과 견줄 때 그 행보와 위치가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두 개의 뿌리: 비밥과 리듬 앤드 블루스
목사였던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에게서 자란 루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배웠다. 물론 그가 배운 것은 고전음악과 교회음악이었지만 10대 때 루는 베니 굿맨, 아티 쇼의 연주를 들으며 재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 대학에 입학한 그는 1945년 군에 입대했고 시카고 근처에 주둔한 레이다 부대에서 근무했다. 어느 날 그가 군악대 연습실 앞을 걸어가고 있는데 연습실 안에서 엉성한 클라리넷 소리가 들려왔다. 루는 연습실 안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저거보다는 제가 더 잘 불 수 있겠는데요?”라고 말하자 군악대 교관은 색소폰도 함께 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루는 불어 본 적은 없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악보 읽는 테스트를 합격하고서 바로 보직을 군악대로 옮겼다. 루가 군악대에서 만난 인물은 클라크 테리, 윌리 스미스, 어니 윌킨스 등 훗날 재즈의 명인들이었다. 루의 인생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루 도널드슨이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찰리 파커를 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존 콜트레인 역시 ’45년에 찰리 파커의 연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루는 시카고의 한 클럽을 찾아갔다가 클럽 구석에서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루는 그가 주정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를 깨워 손에 색소폰 한 대를 쥐어 주었는데 간신히 눈을 뜬 그는 무대로 나가더니 생전 처음 듣는 연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버드라고 불렀다.
“난 클라리넷을 버리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이제부터 저 사람처럼 색소폰을 불기로 마음먹었죠. 그의 음색은 너무 날카로워서 내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어요!”
군 복무를 마친 후 도널드슨은 대학에 복학했고 그곳에서 대학 동문으로 이뤄진 리듬 앤드 블루스 밴드 ‘리듬 베츠’에서 연주했다. 이 무렵 노스캐롤라이나를 방문한 당시 색소폰의 젊은 스타 일리노이스 재켓(illinois jacquet)의 연주를 듣고 루가 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그는 당시까지 어릴 적부터 마음에 품던 야구 선수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루 도널드슨의 또 다른 음악적 뿌리를 말해준다.
다시 말해 1930년대의 스윙은 재즈 안쪽에서는 비밥으로 진화했고 재즈의 바깥쪽으로는 리듬 앤드 블루스라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그때 일리노이스 재켓은 새로운 댄스 음악 R&B를 재즈로 끌어들인 최초의 인물이었다. 루 도널드슨은 일리노이스의 연주를 보며 그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이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단지 무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훗날 그가 구사할 소울 재즈의 씨앗을 가슴에 품은 것이었다.

블루노트 레코드와의 인연
루는 ’49년 뉴욕주 올바니에 있던 대로우 음악원에서 공부를 마친 후 1950년부터 맨해튼 할렘에서 생활하면서 소니 스팃, 재키 매클린, 제이제이 존슨, 세실 페인 등과 자주 연주하며 비바퍼로서의 기량을 쌓고 있었다. 1952년 어느 날, 비바퍼의 집결지였던 할렘의 민턴스 플레이하우스에서 루가 연주하고 있을 때 한 백인 남성이 그곳을 찾아왔다. 음반 프로듀서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난 찰리 파커처럼 연주하는 색소포니스트를 찾고 있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루는 대답했다. “그게 바로 내가 연주하는 방식이죠.” 루와 블루노트의 알프레드 라이언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루 도널드슨은 1952년 블루노트가 제작한 밀트 잭슨의 녹음(4월)과 셀로니어스 멍크의 녹음(5월)에 참여한 후 자신의 첫 앨범 [뉴 페이스 – 뉴 사운드 New face – New Sound](6월)를 녹음했는데 이는 20년 가까이 지속된 블루노트 레코드와의 시작이었다.
루 도널드슨는 첫 리더 녹음에서 피아니스트 호러스 실버를 기용했고 이듬해인 1953년에는 신인 트럼펫 주자 클리퍼드 브라운을 초대해 도널드슨-브라운 공동의 이름으로 역시 블루노트에서 녹음을 남겼다. 그런 면에서 루는 블루노트의 핵심적인 아티스트들을 공급하며 특유의 블루노트 사운드를 완성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도널드슨은 훗날 한 인터뷰에서 실버와 브라우니를 블루노트에 소개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밝혔다).
1954년의 기념비적 라이브 앨범인 아트 블레이키 퀸텟의 [버드랜드의 밤 A Night in Birdland]에 도널드슨, 브라운, 실버가 모두 참여했다는 점을 기억하면 블루노트에 대한 도널드슨의 기여는 더욱 분명해진다
(도널드슨은 원래 [버드랜드의 밤]은 ‘블루노트 올스타스’의 이름으로 기획되었는데 아트 블레이키가 버드랜드의 사회자 피위 마키에게 3달러를 주면서 아트 블레이키 밴드로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유명한 피위의 어나운스먼트가 앨범에 그대로 수록되면서 아트의 음반이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루 도널드슨의 음악은 ’50년대 중후반까지 비밥, 하드밥 성향이었다. 하지만 ’50년대 후반에 이르러 블루스적인 색깔, 펑크(funk)적인 리듬이 두드러졌는데 그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연주자가 오르가니스트 지미 스미스다. 지미 스미스 역시 ‘오르간의 찰리 파커’라는 평가와 함께 ’50년대 중반부터 모습을 드러냈고 루 도널드슨은 ’57년 스미스의 블루노트 레코드 앨범 넉 장에 모두 세션맨으로 참여했다. 그 뒤를 이어 스미스는 ’58년 2월 기념비적인 소울 재즈 녹음인 <설교 The Sermon>를 녹음했는데 이 곡에서도 연주한 루는 5개월 뒤에 그의 대표걸작 <블루스 워크 Blues Walk>를 완성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60년대 루 도널드슨의 음악은, 소울 재즈가 전반이 그렇듯이, 오르간 트리오의 반주가 대세를 이뤘다. 여기에 ’66년 드러머 이드리스 무하마드(그는 이전에 리오 모리스란 이름으로 활동했다)의 가세는 루 도널드슨 사운드의 마지막 화룡점정이 되었다. 소울 재즈의 찬가로 불리는 <앨리게이터 보갈루 Alligator Bogaloo>, <빌리 조를 위한 송가 Ode To Billie Joe>는 모두 ’67년에 녹음되어 소울 재즈팬들을 매료시켰고, 21세기의 힙합 뮤지션들은 그의 음악을 샘플로 삼았다. 특별히 <앨리게이터 보갈루>는 싱글로 발매되어 ’67년 <빌보드> 싱글 순위 93위에 오르는 재즈의 진기록을 남겼다.
소울 재즈의 찬가
하지만 그의 이름은 ’60년대 재즈의 쇠락과 함께 사라졌다. 1981년 루 도널드슨이 네덜란드 타임리스 레코드와 오랜만의 복귀작을 녹음했을 때 앨범 제목은 [잊힌 사람 Forgotten Man]이었다. ’60년대 소울 재즈 이후로 루의 음악은 동어반복이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시에 리 코니츠, 오넷 콜먼, 존 콜트레인 등 다른 색소포니스트에 대한 단호한 그의 입장은 한 편의 촌절살인이었다.
“내게 모든 재즈는 댄스음악입니다. 심지어 비밥도 마찬가지죠.”
소울 재즈가 ’70년대 퓨전 재즈의 한 부류가 되었음에도 그는 퓨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퓨전이 없다면 혼란도 없습니다 (No Fusion, No Confusion).”
’80년대 신전통주의를 대표했던 윈턴 마살리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삼가지 않았다.
“그의 솔로 중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한, 두 음뿐이에요. 나머지는 그냥 역사수업이죠. 내가 그걸 왜 들어야 합니까? 나 자신이 역사수업인데.”
이러한 독설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위트 파파 루’라는 별명처럼 기본적으로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처음 할렘에 왔을 때 만난 부인 메이크 터너(그녀는 루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2006년 작고)와 평생을 함께 살았고, 찰리 파커를 존경했음에도 결코 ‘약쟁이’들과는 연주하지 않았던 것이 자신의 긴 활동과 가정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1999년에 마지막 녹음을 남겼던 그는 2012년 국립예술기금(NEA) 재즈 마스터로 선정되었으며 91세였던 2017년까지 현역 연주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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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트 블레이키의 커리어 대표작중 하나로 평가받는 1954년 버드랜드 클럽 실황 연주당시 밴드의 모습. 좌로부터) 클리포드 브라운, 컬리 러셀, 루 도널드슨, 아트 블레이키.jpg (File Size: 106.2KB/Download: 1)
- 4 블루노트 레코드와 인연을 맺은 뒤 걸출한 하드 밥, 소울 재즈 명반들을 만들어낼 당시의 루 도널드슨. 1960년도.jpg (File Size: 170.0KB/Download: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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