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라 조던(Sheila Jordan) 추모 칼럼 - 재즈를 통해 구원 받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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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재즈를 통해 구원받은 삶
쉴라 조던(Sheila Jordan) 1928.11 ~2025.8
글/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재즈 보컬은 재즈 스타일의 변천사 속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는 분야다. 한 예를 들자면 1940년대 비밥은 적어도 ’50년대부터 재즈를 주도했지만 재즈 보컬은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 이 시기부터 재즈는 일반적인 대중음악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흐름을 이어갔지만 보컬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표현 양식은 이 시기에 기껏해야 재즈와 동시대의 대중음악 사이를 오갔을 뿐이다.
스콧 야노가 쓴 [음반 속의 재즈 Jazz on Record]를 뒤적여 1928년에 태어난 재즈 보컬리스트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재키 케인, 어네스틴 앤더슨, 에타 존스. 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이름을 알렸던 가수는 재즈와 R&B 사이를 오갔던 루스 브라운과 재즈와 팝 사이에 있었던 로즈매리 클루니였다. 그런데 이 가수들 가운데서 동시대 재즈의 중심이었던 비밥을 노래한 사람은 초창기의 재키 케인을 제외하면 없다. 유명 재즈 가수 가운데는 엘라 피츠제럴드(1917년생), 세러 본(1924년생) 정도만이 그들의 레퍼토리 안에 비밥을 포함했을 뿐 전반적으로 비밥은 보컬과 무관한 음악이었다. 다시 말해 비밥은 대중적 인기와 거리가 멀었음에도 재즈 전반을 이끌고 나갔지만 보컬만큼은 그 흐름에서 멀리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가수들과 함께 1928년에 태어난 쉴라 조던은 찰리 파커를 비롯한 비밥을 자기 음악의 기조로 삼았던 독특한 보컬리스트였다. 그런 만큼 그녀는 당대의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심지어 재즈 팬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오랫동안 낯선 인물이었다(그래서인지 위에서 언급한 스콧 야노의 책은 1928년생 중에 그녀의 이름을 빼놓았다). 그녀는 그래미 수상은 고사하고 재즈 전문지의 애독자 인기투표에서도 그 이름을 올린 적이 없었으며 심지어 그녀의 비밥은 비밥의 전성기가 한참 지난 뒤에 가까스로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삶은 한마디로 시류와 무관한 비타협이었다. 아니, 그녀의 의식 속에는 대중적 인기와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로지 그녀가 추구했던 것은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재즈, 그것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외골수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지난 8월 11일 뉴욕에서 결국 숨을 거뒀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6개월 전까지도 무대 위에 섰던 그녀의 나이는 올해 96세였다.
쉴라 조던은 1920년대 생, 그러니까 전형적인 비밥 세대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비밥 보컬리스트의 1세대에 속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녀보다 2년 늦게 태어난 베티 카터와 애니 로스가 여성 보컬리스트로서 비밥의 기치를 내걸었을 때도 쉴라는 여전히 무명의 상태였다. 그녀의 늦은 출발의 이유는 그녀의 삶 전반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4 쉴라 조던의 공식 전기 [Jazz Child ; A Portrait of Sheila Jordan] 2014년도 발간.jpg](http://www.mmjazz.net/./files/attach/images/7293/689/040/33fd553ec62e7ff7fb06b2292e696a15.jpg)
쉴라 조던의 공식 전기 [Jazz Child ; A Portrait of Sheila Jordan] 2014년도 발간
주크박스로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 인생이 바뀌었다.
지난 2014년,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엘렌 존슨이 쓴 [재즈 차일드: 쉴라 조던의 초상 Jazz Child: Portrait of Sheila Jordan]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중년이 될 때까지도 그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쉴라 조던의 삶을 생생하게 담은 전기다.
쉴라 조던은 1928년 11월 18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제너럴 모터스의 생산직 노동자였던 도슨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그녀를 낳았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집을 떠났고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생후 몇 달이 되지 않은 쉴라를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살고 있던 펜실베이니아 탄광촌 서머힐로 보냈다. 극빈 가정에서 자란 쉴라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튀기’라는 놀림까지 당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열네 살이 되었던 1942년, 쉴라는 다시 어머니가 살던 디트로이트로 돌아갔다. 그것은 역시 알코올 중독자였던 할아버지의 학대에서의 탈출을 의미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고통이 어린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늘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잠들었고 그 사이에 어린 소녀는 의붓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음을 쉴라는 훗날 전기를 통해 고백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에서의 생활은 우울했던 소녀 쉴라 에게 운명과도 같은 한 줄기의 빛을 내렸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쉴라는 학교 건너편에 있던 한 햄버거 가게의 주크박스에서 찰리 파커의 음반 <Now’s the Time>을 발견했고 소녀는 호기심에 주크박스 안으로 동전을 밀어 넣었다. 쉴라는 첫 소절 만에 황홀경에 빠졌고 그것은 그녀가 ‘재즈 차일드’가 되는 순간이자 동시에 80년 동안 이어질 재즈 인생의 출발이었다.

그녀는 이후 찰리 파커의 음악을 들으며, 심지어 복잡한 솔로까지 따라 부르는 훈련을 혼자서 하기 시작했고 아직 채 성인이 되기 전에 지니 도슨이라는 예명으로 디트로이트의 재즈클럽 무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디트로이트를 방문한 찰리 파커를 쫓아가서 뒷골목에서 그의 곡을 노래로 불렀는데 파커는 백만불 짜리 귀를 갖고 있다며 어린 쉴라를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더 큰 무대를 위해 디트로이트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던 쉴라는 1951년 결국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광고회사의 타이피스트로 일하면서 밤이 되면 재즈클럽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아울러 혁신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교사였던 레니 트리스타노에게 체계적인 수업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쉴라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뉴욕에 온 지 2년 후, 쉴라는 디트로이트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찰리 파커 퀸텟의 피아니스트였던 듀크 조던과 결혼했고 이때부터 조던이라는 성을 쓰게 되었다. 두 사람은 ’55년에 딸 트레이시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 듀크는 찰리 파커와 마찬가지로 헤로인 중독자였고 그 문제로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쉴라는 광고회사 타이피스트와 변호사 사무실 비서 일을 하면서 듀크 대신에 가계를 꾸렸다. 그 생활은 성인이 된 후 디트로이트 시절부터 뉴욕 시절까지 이어져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1962년 쉴라는 듀크와 이혼했으며 홀로 딸을 키웠던 실라가 전업 가수로서의 출발이 늦었던 것은 이런 이유였다.

콘트라베이스와 빚어내는 선명한 콘트라스트
쉴라가 어머니로부터, 외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가난만이 아니었다. 남편 듀크와 별거 상태에 들어가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 그녀를 덮친 것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60년대 초, 매일 사무실을 출근했던 쉴라는 주말 밤에라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리니치빌리지에 있었던 클럽 ‘페이지 스리’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실라는 허비 니컬스 밴드에서 노래했고 아울러 젊은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를 만나 오로지 베이스만을 반주로 노래하는 실험적인 앙상블을 시도했다. 쉴라의 팬이라면 알고 있다시피 그것은 매우 중요한 그녀의 음악적 출발점이었다.
당시 조지 러셀 섹스텟의 일원이었던 스왈로우는 쉴라를 조지 러셀에게 소개했고 조지 러셀은 1962년 그의 앨범 [The Outer View](리버사이드)에서 쉴라를 객원 보컬리스트로 초대했다. 이 앨범에서 러셀은 유명한 컨트리 송 <You Are My Sunshine>을 기이한 모습으로 편곡했고 쉴라는 그 편곡을 완벽하게 소화했다(실라가 녹음에 참여한 것은 1960년 베이시스트 피터 인드의 앨범에 참여한 것이 처음이었고 조지 러셀이 그 두 번째였다).
![3 쉴라 조던의 첫 공식 데뷔작이자 그녀의 커리어 대표작중 하나인 1집 [Portrait of Sheila].jpg](http://www.mmjazz.net/./files/attach/images/7293/689/040/44f294d02290c54601571912171ad3e3.jpg)
쉴라 조던의 첫 공식 데뷔작이자 그녀의 커리어 대표작중 하나인 1집 [Portrait of Sheila]
조지 러셀은 쉴라를 블루노트 레코드의 알프레드 라이언에게 소개했다. 그렇게 해서 ’62년 쉴라 조던의의 첫 앨범 [Portrait of Sheila]가 녹음되었다. 쉴라만큼이나 비타협적이었던 독립 음반사 블루노트가 보컬리스트의 앨범을 녹음한 것은 이 앨범이 최초였다. 이 탁월한 데뷔앨범은 실라 조던 음악의 미래를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보비 티먼스 작곡에 오스카 브라운 주니어가 가사를 쓴 <Dat Dere>는 오로지 스왈로우의 베이스 반주만으로 완성한 그녀의 노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발성은 기존의 재즈 보컬과는 확연히 달랐는데 건조하고도 가냘픈 목소리에 비음이 한껏 들어간 그녀의 발성은 특히 베이스와의 앙상블에서 선명한 대조를 만들어 냈다(여기에 담긴 <Dat Dere> 는 팝 가수 리키 리 존스가 1991년에 발표한 재즈 성향의 앨범 [Pop Pop]에 담긴 동명 곡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파트타임 뮤지션’으로서의 쉴라의 생활은 이후로 13년간 계속되었다. 딸 트레이시가 대학에 입학했던 1975년, 비로소 쉴라는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음악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13년 만의 그녀의 앨범 [Confirmation](이스트윈드)을 발표했다. 앨범 타이틀곡은 당연히 찰리 파커의 곡으로, 그녀가 이미 오래전에 이 곡을 위해 써 놓았던 가사를 이 앨범에 담을 수 있었다. 이 보컬 버전은 맨해튼 트랜스퍼가 녹음해서 세상에 더욱 알려진 에디 제퍼슨의 보컬 버전보다 1년 앞서 녹음된 것이었고 이후에도 쉴라는 버드의 곡 <Quasimodo>에 가사를 붙여 <Tribute>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후로 쉴라 조던의 앨범은 올해 녹음한 [Portrait Now](닷타임)에 이르기까지 50년간 꾸준히 발표되었다. 그 가운데 베이시스트 하비 S(그는 이전에 하비 슈왈츠라고 불렸다)와 캐머런 브라운은 가장 긴밀하게 함께 활동한 베이시스트였으며 피아니스트 스티브 쿤 역시 훌륭한 음악적 동지였다.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는 삶 속에서 어린 시절과 이혼의 상처 그리고 알코올 중독의 위험은 어느새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쉴라 조던은 1977년부터 오랫동안 뉴욕 시립대학에서 정기적으로 재즈 콘서트 프로그램을 이끌었고 재즈 음악인으로서, 교육자로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국립예술기금(NEA) 재즈 마스터로 선정되었다. 2022년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국내 무대에도 방문했던 그녀는 만년에 이르러 오히려 더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다. 비밥을 통해 삶의 구원을 얻었다고 믿었던 그녀는 늘 비밥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다. 그녀는 1998년 제임스 게빈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비밥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갔다가 비밥과 함께 잠을 깨요. 내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완전히 비밥에 빠져 있으니까요. 그것은 감정으로 느껴져요. 패츠 나바로의 솔로를 들으면, 세상에, 내 머리카락은 곤두서죠. 버드의 연주를 들을 때면, 나는 앉아서 운답니다. 모든 종류의 눈물이 흘러내려요. - 기쁨, 슬픔, 고통의 눈물이죠.”

역대 NEA Jazz Masters 수상자들과 함께 한 쉴라 조던의 모습. (맨앞줄 우측에서 세번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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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4 NEA Jazz Masters 수상자들과 함께. 맨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지미 히쓰 옆에 앉아있는 여성이 쉴라 조던이다..jpg (File Size: 300.2KB/Download: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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