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 마야 앤젤루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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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앤젤루 저/김욱동 역 | 문예출판사 | 2024년 06월 10일 | 원서 ;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 (1969) | 480P
유튜브에 들어가서 자주 Dr. Lonnie Smith & Peter Bernstein의 ≪Jungle Soul≫(Palmetto,/007)을 켜놓는다. 이 앨범 가운데 표제곡 <Jungle Soul>이나 <Jungle Wisdom>같은 곡을 듣고 있으면, 소울 재즈는 ‘조증(躁症ㆍmania) 음악’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조증은 우울증(depression)과 반대되는 정신 질환으로,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 매우 흥분하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울증 상태에 빠지게 되면 주체 못할 자신감이 생겨 뭐든 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울증 환자는 이 기간에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기도 하고, 몇 개 국어의 외국어 학원에 동시에 등록한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망상이 불러온 증상 가운데 하나는 불면증이다. 어떻게 잠이 오겠는가? 세상이 온통 자기 뜻대로 될 것만 같은데? 대개는 불면증을 우울증과 연관시키고는 하는데, 조증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소울 재즈의 조증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서는 단서가 없지 않다. 소울 재즈는 남부 흑인 교회의 일요 예배와 부흥회에서 왔다. 이런저런 재즈 문헌을 뒤져보면, 남부 흑인 교회의 예배 특성과 소울 재즈 사이의 음악적 연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부 흑인 교회의 예배 특성이 어떻기에 재즈에 조증을 전승시켰다는 것인가. 마야 앤젤루의『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문예출판사,2006)는 재즈의 역사나 이론과 아무런 상관없는 자서전/자서전 소설이지만 재즈의 먼 기원 또는 재즈의 특정 장르(소울 재즈)에 대한 문화지적(文化知的) 해석을 제공한다.

본명이 마거리트 앤 존슨인 마야 앤젤루는 1928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앤젤루는 세 살 때 부모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한 살 위인 오빠와 함께 아칸소 주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경영하는 친할머니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덟 살 때 세인트루이스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합류한 그녀는 댄스와 연극 등 예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서른 살 때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샌프란시스코 오케스트라단을 지휘하고,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조지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서 배역을 맡았다.
1954년에서 1955년까지 에브리맨스 오페라단의 일원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20여 개 나라를 순회하며 공연하기도 했던 그녀는 남아프리카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지도자와 결혼했다. 이집트 카이로에 이주한 그녀는 5년 동안 아랍계 신문의 편집자로 아프리카 잡지에 글을 발표하는 하면서 가나대학에서 음악 및 연극을 강의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요청으로 미국에 돌아와 흑인 지위 향상을 위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엔젤루는 1971년에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조지아, 조지아>라는 영화의 각본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이 영화에 직접 출연했다. 또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뿌리』(1976)를 각색한 영화에 출연해 에미상 후보자가 되기도 했다. 무려 30개가 넘은 명예 학위를 받은 사실이나 1982년부터 웨이크 포리스트대학(노스캐롤라이나 주 윈스턴 세일럼)에서 미국학 석좌교수로 재직했던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여러 권의 시집과 에세이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국도서상을 받았으며 미 의회도서관이 위촉하는 계관시인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앤젤루는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고, 흑인과 (흑인) 여성 작가에게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과 영감을 주는 작가로 꼽힌다.
앤젤루 남매가 이혼한 양편의 부모를 떠나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칸소 주는 흑백분리에 있어서 앨라배마 주나 미시시피 주의 악명에 뒤지지 않았다. 흑백분리가 엄격했다는 말은, 흑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 문제에 있어, 백인들이 치외법권을 누렸다는 말이다. 흑인 남자들은 백인 여자를 쳐다만 봐도 사형(私刑)을 당했다.
앤젤루가 3~8세까지 살았던 스탬프스의 경우, 흑백분리가 얼마나 심했던지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당시 앤젤루는 “하나님도 백인”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두 남매를 키워준 친할머니 ‘마마’는 그 지역 흑인 교회(기독 감리교파 감독교회)의 독실한 신자였다. 남부 지역 흑인 교회의 예배는 교파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일요일이면 때로 기절해서 쓰러질 때까지는 노래하고 춤을 추는 소리가 반마일 밖까지 들렸다.”라고 할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이유는 달리 있지 않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의로움과 짓밟힌 사람들만이 맛보는 독특한 감정을 느끼며 행복한 기분에 취했다. 백인들이 돈, 권세, 인종차별, 빈정거림, 커다란 저택과 학교, 카펫 같은 잔디밭, 책들을 모두 갖도록 내버려두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얀 피부를 그들 몫으로 갖도록 내버려두기로 하자. 반면, 영원토록 지옥불에서 불타느니 차라리 잠깐 동안 이승에서 침 뱉음을 당하고 학대받으면서 힘없고 비천하게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170쪽)

2010년 당시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게서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는 마야 엔젤루.
흑인 교회의 성원이 일요일마다 노래하고 춤을 추다가 기절하는 일의 배면에는 흑인들이 남부에서 백인들에게 당해야 하는 가혹한 박해와 경제적 빈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이 지상에서의 박해와 빈곤은 잠시 동안의 것이고, 천국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위치가 바뀐다. 이 얼마나 즐겁지 아니한가! 일요 예배가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날, 어린 앤젤루에게 이상한/당연한 어떤 것이 포착되었다. “신도들의 중심 무리가 연못에 있는 짧은 다리에 이르렀을 때 싸구려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는 귀에 거슬리는 음악 소리가 그들을 공격했다. 마룻바닥을 구르는 발소리 위로 술집의 블루스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얼마나 오래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몇 분 전에 부흥회에서 불렀던 찬송가와 기찻길 옆 선술집에서 춤을 추라고 틀어놓은 노래를 서로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오, 하나님,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시편」13편 1절 ; 「이사야서」6장 11절)
앤젤루가 포착했던 이 대목은 두 가지를 암시해 준다. 하나. 남부 흑인 교회 음악과 블루스는 성속(聖俗)이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맥락을 가졌다. 바로 불행한 현실로부터의 구원. 둘. 남부 흑인 교회 음악이 블루스와 재즈를 비롯한 흑인 음악에 전해준 특성은 조증이다. 바로 전도된 현실에서 오는 행복 혹은 당겨진 미래. 그리고 이 턱없는 구원의 확신과 행복의 약속의 배면에 슬픔이 배여 있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는 블루스와 재즈, 그리고 힙합 등의 흑인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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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신의 책을 들고 있는 젊은 시절의 마야 안젤루.jpg (File Size: 239.6KB/Download: 0)
- 2010년 당시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게서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는 마야 안젤루..jpg (File Size: 330.0KB/Download: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