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 포트너(Sullivan Fortner) - 풍부한 경험으로 쌓아올린 대기만성형 피아니즘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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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귤러 트리오로 신작 앨범 발매및 내한공연도 치른 재즈 피아니스트
설리번 포트너 Sullivan Fortner
풍부한 경험으로 쌓아올린 대기만성형 피아니즘
8년전 세실 맥로린 살반트가 발표한 수작 앨범 <The Window>에서 처음 마주한 설리번 포트너의 피아노 연주는 요즘 말로 결코 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당대 유명한 피아니스트들보다 우위에 둘만한 압도적인 테크닉을 보여주지도 않았었죠. 다만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보컬 반주능력이 또래 연주자들과 비교해 남다른 데가 있었다는 것, 가수의 노래를 아주 잘 서포트해주면서 동시에 반주자의 중요한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과하지 않게 요소요소 적절히 녹여낼 줄 아는 균형감과 센스가 그에게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면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각이상으로 보기 드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재즈 신의 흐름은 새로운 스타일과 사운드를 누가 더 근사하게 해내는가에 놓여 있었고 이에 부합하기 위해 젊은 뮤지션들이 서로 열심히 경쟁하는 구도를 보여줬기 때문이죠.
브래드 멜다우가 스타로서의 확고한 위치에 있는 사이 제이슨 모란, 비제이 아이어, 티그랑 하마시안이나 애런 팍스등 여러 실력있는 후배들이 각자의 작품세계를 부단히 쌓아올려나갔지만 그들중 어느 누구도 보컬 반주자로서 설리번 포트너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던 겁니다. 스윙 시대부터 이어져온 과거의 유산을 충실히 반영한 그의 피아노에 필자가 처음 눈을 뜨기 시작한 순간이었으며 동시에 피아니스트이자 뮤지션으로서 재즈 신에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Youri Lenquette, Dasha Dare

재즈 보컬 신의 걸출한 기대주로 주목을 받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의 대호평을 받았던 그 시기의 세실 맥로린 살반트에게 연주와 프로듀싱 양쪽으로 탄탄한 조력자가 있으며 그가 피아노 반주자로서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소문은 그때부터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설리번은 이후 재즈미어 혼, 그리고 사마라 조이 같은 새로이 등장한 후배 가수들과도 작업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2024년도에는 당대 최고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로 확고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던 커트 엘링과도 듀오 작업을 하는 등 동시대 최상의 보컬 반주자로 경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컬 콜라보레이션과 함께 그는 개별 리더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도전도 서서히 해나가기 시작하는데, 초기 임펄스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 두장의 리더작 이후 5년 간의 공백을 깨고 새롭게 레이블을 아트워크 레코드로 이전한 이후 발표한 피아노/키보드 독주 앨범 <Solo Game>에서 그간 여러 종류의 경험을 통해 쌓아온 센스 있는 편곡과 해석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스탠더드 넘버들을 포함한 다채로운 소재들을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로 풀어내며 마치 흥미로운 단편소설집을 읽는 것과도 같은 재미를 감상자들에게 전달해주었는데, 스티비 원더의 고전 Don't You Worry about a Thing 을 재치 넘치게 해석한 것부터 친숙한 스탠더드 넘버인 Invitation 을 브래드 멜다우를 연상케 하는 왼손 연주를 기반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긴장감 넘치게 곡을 풀어내며 평단및 재즈 팬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명곡 Once I Loved 에서는 자신의 스승격인 프레드 허쉬에서 영향을 받은, 감성과 지성이 한데 균형을 이룬 서정 발라드 플레이어로서의 일면도 선보이죠. 이 작품을 통해 설리번 포트너는 걸출한 보컬 반주자에서 뛰어난 아이디어와 해석력을 겸비한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면모 또한 갖추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필자는 피아니스트로서 설리번 포트너의 음악성과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레퍼런스로 이 앨범을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그의 곡 해석과 건반을 다루는 솜씨가 초기 시절과 비교해 일취월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파트너인 보컬리스트 세실 맥로린 살반트와 함께 한 설리번 포트너
여기에 작년 발표되어 그에게 2026년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재즈 연주 앨범 부분 트로피를 처음으로 안겨준 트리오 편성 앨범 <Southern Night> 이 커리어 출세작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죠. 평소 함께 연주하지 않았던 베이스 드럼 주자와 함께 처음으로 작업을 시도한 이 작품은 사실 그의 입장에선 평소 선망하던 연주자인 피터 워싱턴과 마커스 길모어를 섭외해 빌리지 뱅가드에서 1주일간 라이브를 벌일 때의 경험이 정규 음반 제작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첫 라이브에서의 교감이 기대이상으로 좋았던 그는 세실 맥로린 살반트의 적극적인 권유로(이 멤버로 녹음을 해보라는 그녀의 제안이 없었다면 아마 앨범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네요) 이 라인업으로 녹음을 시도하게 되었고 결국 그에게 솔로 레코딩으로서는 처음으로 그래미 트로피를 안겨주게 됩니다. 상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논하기 전에 그래미 어워즈 트로피는 여전히 아티스트의 네임벨류를 높이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긴 합니다. 세실 맥로린 살반트의 명성을 높이 끌어올려준 요인 중 3차례의 그래미 수상이 결코 작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설리반 포트너도 자신의 솔로 앨범으로 그래미 트로피를 받게 되었다는 점이 활동 반경의 폭을 넓혀주고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더군다나 그와 같이 음악성과 실력을 겸비한 연주자에게 트로피가 수여되었을 경우에는 시너지 효과가 더 커질 수 밖에 없는데 바로 그 여파로 그가 이달 첫 이곳 한국에서 단독 공연을 할 수 있게 된거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리고 완전한 그 자신의 레귤러 팀메이트만으로 트리오 앨범을 발표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수상 성과로 인한 것이라 봅니다.
![4 전작[Southern Night] 에서 함께 한 피터 워싱턴과 마커스 길모어..jpg](http://www.mmjazz.net/files/attach/images/1078/863/041/804f13349cf168ac6a9073e5db59bc34.jpg)
전작[Southern Night] 에서 함께 한 리듬 섹션 주자들 피터 워싱턴과 마커스 길모어.
신작에 관하여
<Southern Night> 이 발매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에 이전 앨범들과 비교해서 비교적 짧은 간격으로 새로운 신작을 발표하게 되는데 같은 피아노(건반)-베이스-드럼 편성임에도 전작과 이번 앨범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선 이번 앨범은 설리번이 어쿠스틱 피아노 이외에 해먼드 B3 오르간, 신디사이저, 마림바 같은 다종의 악기들을 직접 다루고 있으며 무엇보다 앨범 전체적으로 프로듀서의 의도와 방향이 확고하게 마련된, 테마와 스토리를 담고서 진행된 일종의 컨셉트 앨범입니다. 스탠더드를 포함한 타 작곡가들 작품의 재해석은 거의 없이 대부분 자신의 작곡으로만 전체 수록곡들을 채워내고 있다는 점도 차별된 지점이죠. (유일하게 한곡 Number 3 만 타 뮤지션의 곡입니다)
이번 신작은 설리번(Sullivan)이 직접 작곡했거나 트리오가 스튜디오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해 완성한 12곡의 자작곡을 담고 있습니다. 주요 수록곡으로는 셀로니어스 멍크(Thelonious Monk)에게서 영감을 받은 ‘Swirl’, 고(故) 마마 페인(Mama Payne)을 기리는 명상적인 헌정곡 ‘A Hymn for Linda’, 포트너의 2015년 첫 데뷔 앨범 <Aria>의 타이틀 곡을 재해석한 ‘Aria II’, 그리고 사색적인 분위기의 리드 싱글 ‘Que Diablos’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Leave That in There> 라는 앨범 제목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2006년 다큐멘터리 영화 <When the Levees Broke: A Requiem in Four Acts,>에 나오는 대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며, 앨범은 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이후 뉴올리언즈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고 있습니다. 음반 라이너 노트에서 설리번 포트너가 이 구절에 얼마나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언급하고 있는데, 이 구절이 앨범의 다양한 주제들인 기억, 생존, 유머, 슬픔, 조상, 회복력과 관련해 어떤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암시한다고 말합니다. (다큐멘터리를 직접 보지 못한 필자로선 저 문장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알지 못해 타이틀 자체의 의도를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음악을 들어보면 각 곡들은 개별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따로 구분되지 않고 전체의 흐름이 이어지는, 그러니까 마치 다큐멘터리의 O.S.T 와도 비슷한 맥락을 갖고서 진행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더욱이 수록곡들은 짧게는 2분 이하, 길어도 4분대 남짓한 길이로 즉흥연주의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것 또한 전작 트리오 앨범과 뚜렷이 구분되는 지점이죠. 완전한 작, 편곡에 의한 창작 의도를 담아낸 작품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앞서 언급한 유일한 리메이크 곡 Number 3 가 6분대로 가장 긴 러닝타임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이 앨범의 컨셉트와는 다소 구분되는 면 또한 담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포트너는 이번 앨범 전반에 걸쳐 멕시코만 남부 지역(Gulf South)의 풍경과 그곳의 문화적, 음악적,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아 음악으로 만들어내었습니다. 첫 곡인 ‘Sugarcane’은 포트너 개인의 삶과 그가 자란 루이지애나 남부의 깊은 역사적 배경을 아우르며, 앨범이 다루는 폭넓은 주제들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합니다. 드러머 케이본 고든(Kayvon Gordon)의 바타(Bàtá) 드럼 연주와 트리오 멤버 간의 입체적인 리듬 어프로치를 중심으로 표현된 이 곡은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영향을 받은 뉴올리언스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며 동시에 전혀 트리오 편성으로 연주된 것 같지 않은 풍성한 사운드의 결을 보여줍니다. 긴장감 넘치는 피아노 리프의 반복을 통해 점차로 고조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Que Diablos 는 이전까지 설리번이 들려주지 않았던, 혹은 드러내지 않은 작풍으로 미니멀한 뱀프의 반복이 묘한 중독성을 자아냅니다. A Poignant Time 같은 경우는 불과 1분 30초 밖에 안되는 짧은 테마로 이뤄진 일종의 인터루드격인 곡인데 아마 라이브에서 즉흥연주가 가미될 경우 멋진 다이내믹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곡의 틀을 지니고 있죠. 이어지는 Aerobatics Part 1, 2 는 설리번의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곡인데 두번째 파트에서의 일렉트릭 피아노 같은 소리 또한 이전의 그에게서 쉬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으로 마치 칙 코리아나 조지 듀크 같은 뮤지션들의 70년대 퓨전을 연상케 하는 면모가 보입니다. 그의 즉흥연주가 앨범 통틀어 Number 3 와 함께 가장 두드러지게 가미된 트랙이기도 하죠. 이 앨범의 유일한 리메이크 넘버이기도 한 Number 3 는 디트로이트 출신의 드러머 겸 작곡가 로렌스 윌리엄스(Lawrence Williams)가 쓴 빠른 템포의 오드미터 곡입니다. 본작에서 이전 설리번 포트너가 들려준 어쿠스틱 피아노 트리오 음악의 연결지점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트랙이기도 하며 과거 자신과 인연이 있던 트럼페터 마커스 벨그레이브(Marcus Belgrave)를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네요. 이전의 설리번 포트너 연주를 기대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유일한 트랙이라고 봅니다.
한편 설리번 포트너와 베이시스트 타이론 앨런, 드러머 케이본 고든 3세로 구성된 이 트리오는 최근 몇 년간 그가 라이브 무대를 통해 선보인 레귤러 라인업으로 현재 설리번이 가장 신뢰를 갖고 있는 멤버들입니다. 그만큼 탄탄하고 안정된 기량을 가지고 있으며(특히 드러머가 발군의 연주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설리번 포트너가 온전한 리더로서 자신의 레귤러 라인업을 통해 선보이는 첫 번째 작품이 이 앨범이라고 생각되며 ‘Aria II’, Que Diablos Number 3, 같은 곡들을 통해 이 트리오의 팀워크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번 한국 내한에도 함께 동참하기에 직접 우리 눈으로 이들 세명의 조화를 확인 할 수 있을 겁니다.

Epilogue
그는 데취 초기시절부터 주목을 받은 천재형 피아니스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운도 그다지 없었습니다. 활동 초기 로이 하그로브 밴드에서 7년간 몸담았긴 했으나 그 당시 로이 하그로브는 약물 중독으로 리더작 한 장을 제대로 만들 수 없을 만큼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상황이었죠. 다만 설리번 포트너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고 음악성을 가다듬어나갔습니다. 그렇게 다이앤 리브스나 프레드 허쉬, 존 스코필드, 스테폰 해리스, 세실 맥로린 살반트를 만났고 함께 음악을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대선배 격인 피아니스트 배리 해리스를 만나 그에게서 직접 배우고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설리번에게 엄청난 기연으로 작용하게 되며 이후 자신의 커리어를 자신 있게 부각시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요즘 학교에서 음악을 배우고 나서 자기 또래 주자들과 팀을 결성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다수의 젊은 뮤지션들과 달리 설리번 포트너는 올드 스쿨 방식으로 직접 클럽과 같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음악을 체득하고 이를 발전시켜나간, 지금 시대에선 보기 드문 음악적 배경을 지닌 뮤지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에는 정서적인 깊이와 함께 전통의 언어들이 살아 있죠. 천부적인 재능이 없을지라도 급하지 않게 하나하나 배우고 깨우쳐나간 결과 지금 현재의 자신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설리반 포트너는 대기만성형 연주자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그의 미래가 더 안정적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무쪼록 지금과 같은 행보로 계속 경험을 쌓아나가시길! 그렇게만 해도 자신의 롤 모델이자 우상인 프레드 허쉬, 행크 존스나 배리 해리스 같은 대가들의 영역에 머잖아 다가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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