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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세이 - 메디컬소설

지난 2005년에 연재되었던 엠엠재즈 재즈이야기 컨텐츠들을 이전하였습니다.
글: 최범 | 재즈를 사랑하는 산부인과 의사(서울의료원)

엠엠재즈

나를 달까지 보내 주세요

가을이 한참 무르 익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진료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가히 줄리 런던의 노래를 듣고 있던 중 어떤 여자 환자가 내과에서 의뢰되어 왔다. 이름은 불명씨, 환자에 대한 신상파악을 못했을 때 병원에서 쓰는 가명이다. 환자는 콩팥에서 방광으로 이어지는 요관이 막혀 소변이 배설되지 못함으로 생긴 요독증으로 정신을 잃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우연히 지나가던 병원 앰뷸런스가 응급실로 데려온 것이었다. 

즉시 콩팥이 있는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튜브를 집어넣어 밖으로 소변을 빼주기 시작하자 환자의 의식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곧 바로 신장 내과에 입원해 원인을 찾은 후 지속적인 하혈로 산부인과에 의뢰를 왔다. 진찰 결과 자궁경부암이었다. 콩팥뿐만 아니라 직장까지 퍼져 혈변 증상까지 있었다. 그녀의 나이 34세, 겉으로 보기에는 20대 중반 정도로 밖에 안보였고 매우 앳된 얼굴이었다. 한참 젊은 시절인데 암이라니... 그것도 말기라니... 그녀의 과거를 들어본 후에는 더욱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사찌코의 인생, 그리고 그녀의 노래 

그녀는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다. 고아원에서 자라 매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노래를 잘 부르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도 매우 뛰어난 실력이라고 한다.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밤무대에서 노래부를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이 약 10년 전의 일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은 라이브 클럽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 재즈의 대중화 역시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잘 되어있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녀는 그리 크진 않지만 싱어들이 노래도 부르고 술도 파는 어느 클럽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일본 이름은 사찌코. 사찌코는 열심히 노래불렀다. 가슴에 맺혀 있는 한이 노래에 실려있었기에 그녀의 노래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깊이 파고 들어, 한번 들어본 사람은 다시 그녀를 찾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인근 지역에는 한국에서 온 사찌코의 노래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밤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매상이 올라가자 보잘 것 없던 그녀의 급여도 조금씩 올라가게 되었다. 저축도 하고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던 지라 돈도 모을 수 있었다. 앳된 외모에 청순하면서도 왠지 모를 고독을 가진 그녀가 그 모든 것들을 노래로 풀어내다 보니 많은 남자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그러다가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같은 클럽에서 일하는 한국 남자였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그녀의 노래를 제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했다. 그에게도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힘든 과거가 있었다. 힘든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은 가까와졌다. 사찌코는 그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힘들 때마다 서로 위로해주고, 떠나온 고향의 파란 하늘과 푸른 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사랑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그러나 사찌코에게 반한 사람은 그 뿐이 아니었다. 클럽의 뒤를 봐주던 야쿠자의 중간 보스 격되는 사내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고서는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의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그 사내가 묶고 있는 호텔까지 가게 되었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던 피아니스트는 가만있을 수 없었고 호텔까지 찾아가 격분한 나머지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역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일본으로 건너간지 7년쯤 되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나를 달까지 보내주세요.’

결국 그녀는 혼자 남게 되었고 극도의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그 어려웠던 지난날에서 해방되어 이제 막 찾아온 행복이 너무 기뻤고 처음 알게 된 사랑에 눈물겨웠는데, 부모의 사랑도 잃었는데 애인의 사랑마저 잃고 나니 심한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노래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먹게 되고 깨어나면 괴로워 또 약을 복용하고는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3년을 지냈다. 그러다가 자살을 결심하고는 태어나 자랐던 고아원, 언젠가 그와 함께 오자고 했던 그 고아원을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죽을 마음에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아원은 없어져서 찾지도 못하고 길거리를 헤매다 이렇게 병원에 오게 된 것이다. 

이젠 자살이 아니라 암으로 인해 얼마 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자궁경부암 말기라는 말을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수술은 힘든 상황이라 수명을 좀 더 연장한다는 차원에서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시작했다. 그런 그녀에게 작은 용기라도 주고 싶어서 이런 저런 말로 위로를 했지만 그녀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던 내게 처음으로 사적인 말을 건넨 건 항암제로 머리가 하나도 남지 않은 그녀가 힘에 겨워 구토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항 구토제를 투여하며 ‘많이 힘드시죠?’라고 묻자 ‘선생님도 재즈를 좋아 하나봐요? 제가 처음 진료실에서 선생님을 보았을 때 줄리의 노래가 나오고 있더군요.’라고 대답했다. 

아! 재즈... 재즈... 그 태동부터 한을 갖고 태어난 재즈. 우리는 재즈에 의해 이미 통하고 있던 것이다. 재즈라는 공통된 단어 때문에 비로소 그녀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짧지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그리고 그녀는 줄리 런던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줄리 런던의 인기가 매우 많아서 몇 년 전 ‘에반게리온’이라는 인기 절정의 동영상 영화의 주제곡으로 줄리의 ‘Fly Me To The Moon’이 쓰일 정도라고 말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광고 음악으로도 쓰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죽기 전, 줄리의 노래를 한번 불러보고 싶다고 했다. 가슴이 아팠다. 그녀를 위해 무얼 해 줄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곧 연말이고 연말이면 병원에서 환자 위안의 밤을 갖는데 그때 노래하는 시간이 있음을 생각했다. 환자 건 보호자 건 의사 건 간호사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곧바로 병원 내 음악 동호회에 연락해 자진으로 하겠다는 기타 반주와 피아노 반주를 확보했다. 연습시간은 1주일도 채 안되었지만 그녀는 힘든 중에도 열심히 연습했다. 평소실력이면 연습 없이도 될 터였으나 3년을 쉬었고 항암제를 투여하는 중이라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녀의 마지막 노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12월 31일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 모두가 망년회다 뭐다 해 흥청망청 시끄러울 때 병원 현관 로비에는 작은 무대가 마련되었다. 환자 여러분의 쾌유를 빈다는 원장님의 격려사에 이어 가벼운 다과회와 소아과 어린이들의 율동이 끝나고 나서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을 제외한 현관 로비의 불을 모두 끄고 조그마한 조명이 켜진 무대 위 의자에 그녀가 앉았다. 반주는 기타와 피아노뿐이지만 어느 오케스트라보다 모자라지 않았다. 그녀는 ‘Fly Me To The Moon’을 부르기 시작했다. 모자를 썼지만 귀 뒤로 보이는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한올도 없어 낮은 불빛에도 파래 보였다. 한때 은빛 드레스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하고선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녀는 비록 화장도 하지 않고 환자복을 입고, 그리고 힘도 없었지만 깊은 목소리로 호소를 했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나를 달까지 보내주세요. 별들과 함께 놀게 해 주세요.

In other words hold my hand,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바꾸어 말하자면 나의 손을 잡아 달라는 얘기예요. 키스해 달라는 얘기라고요.

Filly my heart with song and let me sing forever more
내 마음을 노래로 채워서 제가 영원히 노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You ar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당신은 내가 기다려온 모든 것, 내가 경애하고 흠모하는 모든 것이에요.

In the words please be true, in other words I love you.
다른 말로 하자면 진실해 주세요 라는 얘기예요. 난 당신을 사랑한단 말이라고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노래 같은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의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는 눈물이 안나올 수 없었다. 앵콜곡까지 준비했지만 부를 수가 없었다. 모두들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목이 메어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었다. 영원히 노래하게 해달라는 말... 달나라로 보내 달라는 말... 그녀가 가고 싶어하는 달나라에는 그녀의 엄마와 아빠가 그녀를 따뜻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처음 사랑한 그 역시 부모님 옆에서 수줍게 피아노를 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런 달나라가 있다면 보내주고 싶었다. 가서 이제는 정말 행복하게 잘 살라고 보내주고 싶었다. 행복하게... 잘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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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엠엠재즈 웹사이트 관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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