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Special Column 키스 재럿(Keith Jarrett) [The Köln Concert] 발매 50주년 특집 칼럼 Part 2 - 그가 그려온 피아노 독주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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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öln Concert 50th Special Edition> 발매기념 특집 칼럼 Part 2
키스 재럿(Keith Jarrett)
그가 그려온 피아노 독주의 이상향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이렇듯 쾰른 콘서트에 담긴 키스 재럿의 피아노 독주는 다수의 대중들을 사로잡을만한 정서적 감흥 풍만한 멜로디와 심플한 반복 및 안정된 구조의 틀이 존재하며 이 구조를 다채롭게 풀어나가는 즉흥적 서사도 아울러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결국 재럿의 음악세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구현되어왔던 보편성과 예술성이 이 라이브에도 발현되어 있다는 얘기가 되겠죠. 다만 쾰른은 여타 솔로 라이브 작품들보다 보편성의 영역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물이라고 봐야 맞을 겁니다. 여기서 잠시 쾰른 콘서트를 진행할 당시 에피소드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드릴까 합니다.
1975년 초 유럽 투어 기간 내내 진통제를 매일 여러 알 먹어가면서 힘들게 공연을 해왔던 재럿이 허리 통증을 애써 참고 쾰른에서의 공연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와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와 쾰른 공연 녹음을 다시 들어봅니다. 또 남은 유럽 투어 기간 동안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쾰른을 수차례 녹음된 테이프로 함께 반복해 들은 뒤 두 사람 모두 그 해 발매를 하기로전격 결정하게 됩니다. 사실 악기 상태나 재럿의 컨디션등 여러 주변 상황을 고려한다면 음반으로 내기 쉽지 않을 요소들이 있었음에도 두 사람의 의견은 내는 걸로 결론이 났고 녹음된 음원을 스튜디오로 가져가 믹스다운을 거친 뒤 1975년 그해 겨울 이 앨범이 나오게 되죠. 이미 <Facing You>와 <Bremen/Lausanne> 이 뉴욕타임즈, 다운비트, 스테레오리뷰 등 각 유력 저널의 찬사를 받고 올해의 앨범으로 뽑히는 결과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널및 평론가의 시선이었을 뿐 다수의 대중들에게 널리 어필하게 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쾰른은 달랐죠. 속된 말로 자고나니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어있더라는 말이 떠오를만큼 <The Köln Concert>의 파급력은 그 당시에도 상당했으며 키스 재럿의 이름을 재즈 커뮤니티의 범위를 넘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널리 알리게 되는 기폭제가 됩니다. 쾰른 콘서트가 이렇게 커다란 반응을 얻게 된 이유로 심플한 멜로디 진행이 재즈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일반 리스너들에게도 쉽게 어필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지난 1월 칼럼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키스 재럿 본인도 쾰른의 놀라운 대중적 성공에 대해서 자신의 전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더군요.
'내 생각에 쾰른은 다른 솔로 라이브 앨범과 비교해 뚜렷한 논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기존의 풍부한 아이디어와 더불어 따스하고 친숙한 면들이 더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음악적으로 드높은 희열과 환희보다는 좀 더 다정하고 유려한 면이 드러나 있으며, 다양한 감정적 표현을 야기하는 긴장과 압박감들이 음악에 많이 반영되지 않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말에 더해 그는 유명 소설가들이 쓴 베스트셀러가 대부분 그 사람의 최고작은 아니라는 식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도 덧붙였더군요. 이와 비슷한 논조의 이야기가 이번 쾰른 콘서트 50주년 기념반 해설지에도 나와 있는데, 재럿은 자신의 피아노 솔로 레코딩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 쾰른은 결코 최고작이 아니며 여러 솔로 연주 과정 중 발현된 하나라고 보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더불어 다수의 감상자들이 쾰른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나름의 반감 및 경계심을 표한 바 있기도 합니다.
피아노 솔로의 출발점
한편, 여기에서 그가 피아노 솔로 라이브를 시작한 1972년 이후부터 마지막 솔로 공연을 가졌던 2016년까지 대략적으로나마 어떤 식으로 피아노 솔로를 풀어나가려고 했는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필자가 보기에 그의 피아노 독주는 그간 등장했던 어떤 재즈 피아니스트들과도 확연히 다릅니다. 전통적인 재즈의 관점에서 두고 보자면 쾰른 콘서트, 브레멘 & 로잔, 선베어, 비엔나, 파리 콘서트, 이태리의 라 스칼라를 포함, 그가 연주한 이 유니크한 피아노 즉흥연주의 세계를 재즈로 바라보는 게 과연 맞을 지조차 의문이 들만큼 선배들이 남긴 유산과 동떨어진 요소들이 음악 안에 채워져 있죠. 그래서 재럿이 처음 솔로를 선보이던 70년대 초반 당시 그의 연주를 두고 New Age 라는 표현을 저널에서 종종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표현에 대해 혼동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지금의 단순한 피아노 경음악 같은 뉴 에이지와 70년대 초 뉴 에이지는 음악적으로 꽤 달랐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오스카 피터슨은 재럿의 즉흥 연주를 두고 재즈와 무관한 연주음악이라며 그의 즉흥연주에서는 재즈를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클래식에 더 가깝다는 비판 아닌 비판을 하기도 했었죠. 그나마 그의 첫 솔로 독주반이자 스튜디오 앨범인 <Facing You>에서는 곡의 형태와 즉흥연주 내용 등이 재즈의 주요 이디엄을 일부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년 뒤 녹음된 두 번째 솔로 피아노 연주 <Bremen/Lausanne> 에서부터 사전에 작곡된 틀은 완전히 내려둔 채 당일 공연 현장에서 생겨나는 감흥을 기반으로 한 종잡을 수 없는 자유즉흥연주를 선보였고 그 내용들에는 그전까지 재즈 역사에 등장한 선배들의 유산 이상으로 클래식과 가스펠, 포크, 컨트리와 같은 타 장르 음악요소들이 혼재된 가운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흐름으로 진행되는, 길게는 한 시간이 넘게 끊임없이 연주를 지속하면서 과거의 전통에 담긴 전형성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가 자신의 피아노 독주를 이런 방식으로 연주하게 된 경위에 대해선 별도로 구체적인 언급을 한 적은 없지만 평소 그에게 영향을 준 여러 뮤지션들, 특히 존 콜트레인이나 소니 롤린스, 오넷 콜맨 같은 이들이 즉흥 연주 시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영향을 받아 흐름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연주를 들려주고자 했다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세실 테일러 같은 선배 뮤지션들이 60년대 후반 완전한 자유즉흥연주를 곡의 구분 없이 길게는 한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연주하는 모습을 젊은 시절 활동하는 과정에서 지켜보면서 제약 없는 상상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영감을 받기도 했었다고 말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완전한 즉흥연주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게 된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클래식 음악이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키스 재럿은 자신을 가리켜 타고난 즉흥연주자라고 말하며 동시에 바흐나 모짜르트 같은 클래식 거장들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이러한 방식의 피아노 솔로 즉흥연주를 깨우친 것이라고 Art of Improvisation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남긴 작품은 모두 기보된 작곡으로 진행되지만 이 곡들을 익히고 공부하면서 그 곡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음악이 형성되었을 지를 역으로 유추해나가는 과정이 분명 재럿에게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기존 재즈의 방식이 아닌 내용으로 즉흥을 표현하는 것을 떠올리게 된 것도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것일테고요, 이후 재즈를 비롯해 블루스, 가스펠, 블루그래스, 포크, 록 등 20세기에 등장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습득해 나가면서 이 모든 게 그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된 결과 다른 누구와도 차별된 즉흥연주가로서 자신을 정립해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또한 재럿의 피아노 독주가 위대하면서 동시 놀랄만큼 타 연주자들과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낸 데에는 그의 종교적인 태도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흥연주를 이해하는 관점, 이를 풀어낼 때의 태도와 마인드 셋 모두 일반적인 뮤지션들과 판이하게 달랐죠. 그는 즉흥연주를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했으며 그 흐름 속에 어떻게 머무르고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를 바로 그 순간 직관적으로 판단해 연주해왔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무대에 오르기 전 어떠한 사전 기획이나 컨셉트를 갖고 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재즈 역사학자이자 본인이 뮤지션이기도 했던 이언 카의 저서 [Keith Jarrett ; The Man & His Music] 에서 언급하길 ‘재럿은 공연 전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비우고 올라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했을 때 장시간의 즉흥연주를 충실하게 구현해낼 수 있었고 만약 사전에 다른 아이디어나 방향에 대한 틀을 잡고 갈 경우 결코 좋은 연주를 끌어낼 수 없었다고 재럿 스스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종교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에고를 지우는/혹은 내려놓고 무아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과 상당히 유사한데, 재럿은 즉흥 연주시 자신은 도구이고 음악이 자기를 통해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도록 안배할 따름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연 당시 공연장의 분위기와 울림, 관객들의 반응, 악기 상태 등이 자연스럽게 연주에 영향을 끼치게 되며 이 반응을 예민하게 음악으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이뤄지는 유일한 음악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생기기에 그의 솔로 라이브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공연이 이뤄진 장소나 도시의 이름을 가져오게 되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스튜디오 솔로 녹음이 아닌 라이브의 경우 앨범에 별도의 제목을 부여한 것은 <Dark Interval> <Radiance>, <Creation> 이 세 작품 외엔 없습니다)

평생에 걸쳐 음악적 인연을 이어온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와 키스 재럿
Epilogue
키스 재럿이 여러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내용과 그의 전기, 다큐멘터리, 그리고 앨범 라이너노트에 실린 글들을 토대로 그의 피아노 솔로가 어떤 형태로 연주되는 지, 그의 정신과 내면은 어떤 상태에서 이 놀라운 퍼포먼스를 진행하려고 한 건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봤습니다. 논리적인 설명을 곁들여 그의 즉흥 연주에서 빚어진 예술세계를 얼추 이해해보고 했는데 사실 이 모든 설명은 그의 음악에 녹아든 신비로운 영성과 풍요롭고도 심오한 미감을 가늠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그의 음악을 듣는 내내 느끼게 되더군요. 결국엔 듣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감상자들이 직접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아름다운 멜로디에만 국한되지 않은 온갖 감정과 이미지의 파노라마가 그의 손을 통해 표현되는 그 순간들을 말로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수사일 뿐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이 글을 쓰면서 놀라게 되는 점은 지극히 비상업적인 의도를 갖고서 오직 한 악기의 즉흥연주로만 이뤄진 장시간의 라이브 녹음을 기꺼이 앨범으로 만들고 세상에 선보일 수 있도록 뮤지션의 비전을 구체화시켜준 만프레드 아이허란 프로듀서의 혜안과 헌신입니다. 더블 LP, 석장, 심지어 열장의 박스 셋 형태로 단일 앨범을 만들어내는 무모하고 미친 짓을 시도할 수 있었던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열정, 두 사람이 함께 낡은 차를 타고 유럽을 돌면서 투어를 벌이던 젊은 날의 꿈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은 것을 떠나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아주 비현실적인 일입니다.
예술가로서 키스 재럿이란 뮤지션의 재능과 그릇을 일찌감치 파악해서 그에게 피아노 솔로 녹음을 제안한 프로듀서의 선구안이 없었다면 재럿이 남긴 23장의 피아노 독주 녹음은 지금과 같이 우리의 귀에 전달될 수 없었겠죠. 이 유니크한 피아노 솔로 앨범들은 위대한 예술가만큼이나 그 예술가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고 동기부여해줄 안목을 지닌 파트너 역시 중요하다는 걸 우리에게 강하게 시사 합니다.
쾰른 콘서트의 기념비적인 성공으로 다수의 대중들에게 키스 재럿이라는 희대의 재즈 뮤지션이 전달되었지만 이는 그의 광대한 음악 세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무쪼록 그가 남긴 여러 피아노 솔로 앨범들을 한번 찾아 들어보시길. (지난 1월호에 실린 솔로 피아노 베스트 8선 글 참고) 그리고 그 음악마다 무엇이 다르게 반영되어 있고 어떤 특별한 순간들이 녹아 있는지 각자의 감성으로 직접 찾고 느껴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