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Review Column(Archive) 시공 초월한 영적 깊이와 감정의 파노라마 - 키스 재럿(Keith Jarrett)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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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Jarrett <A Multitude of Angels> ECM/2016
Keith Jarrett Piano
(Recorded October 1996)
CD 1
1 Modena, Part I
2 Modena, Part II
3 Danny Boy
CD 2
1 Ferrara, Part I
2 Ferrara, Part II
3 Ferrara, Encore
CD 3
1 Torino, Part I
2 Torino, Part II
CD 4
1 Genova, Part I
2 Genova, Part II
3 Genova, Encore
4 Over The Rainbow
시공 초월한 영적 깊이와 감정의 파노라마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Henry Leuwylerwyler, Paolo Woods
본 작은 지난 1995년 녹음되어 2년 뒤에 발표되었던 <La Scala>의 연장선상에 있다. 녹음 시기는 1년 정도 뒤인 1996년도에 이루어졌으며, 모든 트랙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두 앨범에 담겨진 음악의 흐름은 일부분 유사한 점이 있는데 아마도 이태리란 장소에서 느끼는 그의 개인적인 감흥이나 느낌으로 인해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시기별로 키스 재럿의 피아노 솔로를 나눈다면 그가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인해 2년 정도의 휴지기를 맞이한 이후 좀 더 단편적인 스토리를 들려주던 2000년도 이후의 것과, 이번 라이브 앨범을 종점으로, 짧게는 10~20분에서 길게는 1시간에 이르는 장대한 시간동안 즉흥연주를 하던 이전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시기의 변화를 대조해볼 때 좀 더 그다운 음악세계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래도 병을 앓기 전에 들려주던, 긴 시간동안 지속하는 피아노 솔로라고 봐야 할 터. 그 점에서 이번에 새롭게 발매되는 이 4장짜리 미공개 연주가 담긴 박스 셋은 다시 한 번 키스 재럿 피아니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사실 그의 피아노 즉흥 솔로는 결코 쉬이 다가갈 수 없는 음악들이다. 트리오 연주는 그래도 스탠더드란 소재가 뚜렷하고 그게 셀로니어스 멍크의 곡이든, 혹은 제롬 컨, 리처드 로저스의 곡이든 사전에 인지한 상태에서 들을 수 있기에 어느 정도 재즈에 대한 이해가 있는 감상자라면 그래도 맥락을 잡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이 피아노 솔로 연주는 전혀 다르다. 오직 그 시점, 그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유일한 퍼포먼스이며 재럿 스스로도 어떤 의도나 계획을 갖고 피아노 앞에 앉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선율을 바로 그 순간 느끼는 감흥에 따라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연주자나 듣는 관객 모두 일종의 모험에 가까운 것이며 결과가 어떨지는 끝나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음악에 대해 리뷰를 하는 것은 사실 아주 어려운 일이며,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서 쓸 수가 없다. 그나마 좀 더 적극적인 감상을 하자고 한다면 상상력을 동원해 각자의 이미지를 그려나가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본다. 물론 작품에 따라 접근성의 차이가 있으며 쾰른 라이브 같은 경우는 전 파트에 아주 뚜렷한 테마가 담겨져 있어 상대적으로 감상이 어렵지 않은 면이 있다

마치 파노라마와도 같이 흐름이 변화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한 패턴이나 그루브에 집중하면 그를 토대로 끊임없이 반복과 변주를 이어가면서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때론 화성을 기반으로, 어떨 땐 무조성으로 진행되는 피아노는 이론과 관습의 틀을 넘어선 미지의 어딘가로 나아가는 듯하다. 사실 필자의 경우 들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인데 수십분 이상 지속되는 재럿의 솔로 피아노 라이브는 처음과 끝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이 여겨질 때가 많다. (이는 아마 연주하는 그 자신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반적인 음악의 형식과는 무관한, 아니 좀 더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그걸 최대한 내려두고 무의식에 가까운 영역에서 연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수십 여분에 이르는 장대한 시간동안 악보 한 장 없이 자신의 즉흥적인 감흥과 악상만으로 결코 연주를 지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실상 일반적인 범인이 해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물론 그 연주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재럿이 평소 깊이 심취해온 음악의 요소들이 흐름마다 속속 스며 들어있다. 원초적인 가스펠과 블루스, 언제나 그의 멜로디를 심플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포크와 컨트리의 정서, 그리고 이 단상들을 장대하고 드라마틱하게 스토리를 이어가게 만들어주는 클래식 음악들의 풍부한 에센스까지... 그러나 이런 음악의 여러 스타일과 장르를 충분히 섭렵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오직 즉흥으로 이렇게 한데 어우러지게 총체적인 연주로 담아낸다는 것은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칫 허한 자의식의 과잉과 남발로 귀결될 소지가 큰 이런 작업을 끊임없이 지속해올 수 있으며 관객들의 가슴에 다가가게 만들 수 있는 능력. 오로지 재럿에게만 주어진 특별함이며, 필자는 바로 여기에 그의 위대함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감성을 음악으로 형상화해내는 과정에서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다.
스포츠에서 말하는 ‘In The Zone’(정신력과 육체의 능력이 동시에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 한계를 넘어서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 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되는 레벨에 도달하거나, 혹은 그에 도달하려고 정신력을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가 직접 작성한 이번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 이에 대해 유추할 수 있게 만드는 코멘트가 적혀져 있는데 바로 자신이 피아노 앞에서 연주할 때 그저 한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즉흥연주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독려하고 힘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천사의 힘’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 앨범의 제목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천사는 바로 당시 공연장에 있던 관객들과 피아노,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고통, 심지어 이 연주가 녹음되던 Sonosax DAT 레코더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표현이라고 말한다 – 그리고 침례교의 교회, 무슬림의 사원, 아프리카와 스페인 같은 곳의 종교적이고 영적인 에너지가 이 음악들을 통해 스스로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당시 그가 연주하면서 머리에 떠올린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게 특히 흥미롭게 읽혔다. 공연 할 당시엔 오로지 피아노와 음악에만 집중할 뿐 특별한 이미지나 형상을 떠올리진 않는다는 것이다. 허나 이 녹음을 다시 꺼내 들었을 때 그에겐 20년 전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와는 다른 무엇이 느껴졌던 것 같다.
결코 우연한 퍼포먼스가 아닌 인과의 흐름, 혹은 운명과 같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자신이 연주되는 것과도 같다고 이야기한 것은 그가 오래전부터 수피즘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종교적인 가치관 또한 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명 객관적인 시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재럿과 같은 음악가들은 평범한 뮤지션들보다 훨씬 깊고 높은 영적 경지에 도달해있다고 개인적으로 평소에 생각해왔기에 그의 말이 그저 자아도취에 취한 뮤지션의 독백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게다가 이태리에서 연주를 할 당시 이미 그는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으며 이렇게 장시간의 연주를 지속할 육체적, 정신적인 여력도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를 이끌어준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존재였다는 것. 이 작품을 새롭게 발매하는데 가장 커다란 동기가 되어준 것도 바로 그 존재의 힘 때문이 아닐는지...
이 넉 장의 CD에 담겨진 녹음은 그가 현재까지는 마지막으로 시도한 장시간의 피아노 즉흥연주다. 게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음원들이기에 오랜 팬들은 당연히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마도 개인마다 그의 음악에 매료된 지점이 다를 터! 그가 이만큼 입지를 다지는데 가장 커다란 힘이 되어준 멜로디의 수려하고도 우아한 미감에 흠뻑 취해도 좋겠고 명불허전인 압도적이고 노도와도 같은 테크닉에 시선을 돌려도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이는 늘 듣는 여느 음악들과 동일한 입장에서 이 신비롭고 원초적이며 기이하고도 독창적인 음악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의 피아노 솔로 음악이 가진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길 원한다면 이 음악을 들을 때 수동적인 감상태도를 넘어서 피아노 앞에 앉은 그의 고양된 정신과 영적인 상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어느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 담긴 음악들에 내재된 환희와 감동, 고통과 괴로움 같은 온갖 종류의 감정들을 제대로 인식하기란 아주 어려울 것이며, 무려 280여분에 달하는 이 장대한 소리들을 끝까지 다 듣는다는 것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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