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케니 배런(Kenny Barron) 진정한 재즈는 경쟁심에서 만들어지지 않아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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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배런(Kenny Barron)
'진정한 재즈는 경쟁심에서 만들어지지 않아 '
그저 가슴이 훈훈하고 먹먹해질 따름이었습니다. 지난 2023년 9월 10일 피아노 솔로로는 처음 국내에서 공연을 가진 거장 케니 배런의 연주는 평소 그의 작품에서 들었던 따스한 선율과 기품있는 스윙이 끊임없어 흘러나왔죠. 크게 힘을 들이지 않음에도 연주 한 소절, 한 코러스에도 가슴에 와닿은 라인들이 유려하게 연주되었으며 당시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정말 쥐죽은 듯 고요하게 이 노대가의 연주에 경청하는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필자가 올해 현재까지 봤던 모든 재즈 공연 무대중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셀로니어스 멍크를 비롯 자신의 오리지널 곡들 사이 거의 모든 레퍼토리가 잘 알려진 스탠더드 넘버였지만, 그는 이 곡들에 자신의 감성과 터치를 담은 해석으로 감동을 전해줬고 이는 고스란히 사인회로 이어져 200여명이 넘는 관객들이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었죠. 결코 현대적이지도 않고 화려한 테크닉을 연신 드러내지도 않음에도 왜 이토록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심지어 상당수 관객들은 평소 케니 배런에 대해 잘 몰랐을 법한 20~30대 젊은 층이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케니 배런과 이야기 나누었던 순간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그의 연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그 공연장에 같이 있었던, 그리고 케니 배런의 연주를 듣고 가슴이 파문이 일었던 분들이시라면 이 인터뷰를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아마도 이 노장의 음악이 왜 이토록 진솔하게 우리에게 와닿는지 조금은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비스킷타운, 김희준, Carol Friedman

당신이 처음 재즈에 매료되었던 순간을 기억하시는지요?
내겐 16살 나이 차이가 나는 형*이 있었는데 그도 재즈 뮤지션이죠. 색소포니스트였고 재즈 신에서 꽤 명망있던 연주자였습니다. 형은 내가 어릴 때부터 열렬한 재즈 팬이었는데 꽤 많은 앨범 콜렉션을 갖고 있었어요. 대부분 비밥 시대 음반들이었고 저 역시 그 음악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죠. 그리고 내가 살던 필라델피아 지역에는 24시간 계속 재즈를 방송하는 라디오 채널이 있었어요. 24 Hours Stations 란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에선 거의 모든 장르의 재즈 음악을 소개해줬었죠.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부터 오넷 콜맨, 선 라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까지 틀어줬었죠. 프랭크 시나트라가 매주 금요일 출연해 노래하기도 했었는데, 난 그 방송을 듣는 걸 너무 좋아했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재즈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빌 배런(Bill Barron) ; 재즈 색소포니스트이며 비밥 시대부터 활동했던 연주자. 1927년생으로 케니 배런보다 16살이 많았다.
당신은 80년대 후반부터 스탄 겟츠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함께 연주해온 피아니스트입니다. 그와 함께 하면서 그에게서 받은 영향, 영감등을 이야기해주신다면?
정말 많은 것을 그를 통해서 배웠죠. 특히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멜로디였어요. 연주자들의 즉흥연주에서 좋은 멜로디를 연주하기 위해 최대한 집중하고 노력해라, 보여주기 식으로 과장되게 연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스탄 겟츠는 생전 그런 마음가짐으로 연주에 임했고 제게도 그렇게 하도록 주문했죠. 그런 점은 제게도 큰 영감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연주할 수 있도록 계속 나 자신을 일깨우려고 합니다. 또 스탄 겟츠는 제가 연주하는 방식을 처음부터 무척 좋아했어요. 우리는 서로의 연주에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기에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함께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여기서 당신이 이야기하는 멜로디는 단지 서정적인 선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요?
맞아요. 그리고 만들어진 곡에 관한 것이 아니며 즉흥연주에 대한 이야기죠.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만이 아니라 비밥, 블루스등 어떤 형태의 흐름에서 좋은 멜로디를 찾아내도록 노력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좋은 솔로는 그 곡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뛰어난 즉흥 연주자라면 그런 새로운 스토리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듣는 이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 인터뷰를 보면 오로지 피아노 솔로로만 연주하는 것이 당신이 원하는 재즈 연주자로서의 커뮤니케이션과 달라서 별로 내키지 않는 편이라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이번에 앨범을 녹음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는 것이 두려웠죠(웃음). 그런데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랬어요. 왜냐하면 다른 연주자들이랑 함께 할 때엔 내가 실수를 해도 그게 티나지 않고 묻힐 수 있지만 피아노 솔로에서는 모든 게 나의 잘못이고 책임이 되니까 그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거죠. 그 연주를 망친다면 온전히 당신의 책임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쉽게 솔로 연주를 하기가 꺼려졌는데, 이젠 괜찮습니다. 약간의 실수는 개의치 않고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번에 솔로로 앨범도 내었고 앞으로 좀 더 자주 솔로 프로젝트를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당신은 듀오 스페셜리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드 미첼, 론 카터, 버스터 윌리암스, 찰리 헤이든, 하비 슈왈츠, 데이브 홀랜드등 탁월한 베이시스트와의 협연을 꾸준히 해오고 있으신데, 다른 편성보다 베이스와 함께할 때 음악적인 동기를 더 잘받는 편이신지 궁금해요. 아님 다른 이유가 있을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단 베이스와 함께 연주할 때엔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는 편이에요. 다들 아시겠지만 베이스는 전체 연주에서 기본을 잡아주죠. 근음을 통해 연주 전체의 뿌리를 지탱해주는 게 베이스인데 베이스 주자와 함께 연주할 때 나는 좀 더 폭넓은 음악적 선택을 할수 있게 됩니다. 근음 노트들을 내가 굳이 연주해야할 필요가 없이 상상력을 가동할 수 있어서 베이스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함께 해온 베이스 주자들은 모두 각자의 훌륭한 타임 필을 갖고 있었으며 동시에 멋진 즉흥연주 실력도 겸비했죠. 레이 드러먼드, 버스터 윌리암스, 론 카터, 데이브 홀랜드등. 그리고 베이스 주자와 듀오 앨범을 많이 내긴 했지만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도 듀오 앨범을 만들어왔었죠. 바이올린 연주자인 레지나 카터와의 듀오 앨범 <Freefall>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그녀는 정말 훌륭한 즉흥 연주가에요. 무척 좋은 귀를 갖고 있어서 내가 가는 길을 다 따라왔었죠. 그 앨범에 담긴 곡중 Freefall 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없이 완전히 자유즉흥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정말 멋졌죠. 그녀와 녹음 내내 함께 대화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는데 그런 역량을 지닌 연주자라면 악기에 상관없이 기꺼이 듀오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혹시 앞으로 다른 연주자와 듀오 앨범을 만들 계획이 잡힌 게 있는지?
아니 현재로선 없어요. 난 그런 계획을 미리 잡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함께 연주하다 여러 상황과 합이 맞아 들어가면 그때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스탄 게츠와 함께 연주할 때 우린 단 한번도 리허설을 한 적이 없어요. 그냥 곡을 아는지 물어보고 키와 템포만 대략적으로 잡은 뒤 바로 연주를 진행했었죠. 그렇게 연주할 때 훨씬 재미있고 또 예상을 넘어선 멋진 연주가 나오게 마련이죠. 참! 얼마 전 젊은 색소포니스트인 엠마누엘 윌킨스가 나의 퀸텟 멤버들과 함께 협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또한 무척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더군요. 좀 더 프리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 친구였는데 나와 연주할 때는 발라드를 소화했죠. 스탠더드 넘버 Nearness of You 를 연주했는데 마치 자니 하지스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아주 심플하면서 아름다운 즉흥선율을 들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영감을 믿고 연주할 수 있는 즉흥연주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함께 작업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가치와 미덕은 무엇인지요?
아주 어려운 질문이군요. (잠시 고민하다가) 가장 인간적인 면을 연주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훌륭한 인간이 되길 바라고 또 그런 노력이 연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길 바랍니다. 누군가와 경쟁해서 그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경쟁하고 그를 넘어서려는 관점으로 음악을 하면 언젠가 스스로에게 좌절하고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재즈는 경쟁이 아니라 진실된 인간성,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봐요.
많은 재즈 피아노 지망생들이 당신의 연주에서 어떤 점을 좀 더 주의 깊게 봐주었음 하는 게 있을까요?
흠...글쎄요. 일단 자신의 고유한 터치를 찾아내려고 고민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군요. 사람마다 각자 다른 피아노 터치를 갖고 있는데 누군가는 거칠고 파워풀한 반면 누구는 아주 소프트한 터치를 갖고 있다. 이런 자기만의 고유한 터치를 좋은 연주로 함께 만들어나가도록 노력하고 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좋은 멜로디를 표현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 연주를 듣고서 어떻게 좋은 멜로디가 만들어지고 스토리가 이어져가는 지를 관심 있게 들어봐줬으면 좋겠군요.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임미정과 송영주 모두 그렇게 자신의 터치를 찾고 꾸준히 다듬어나가면서 멋진 피아니스트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그 점을 유념하고 꾸준히 피아노를 연습해주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