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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 '모던 색소폰 트리오'의 진정한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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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50년대 유럽 투어 실황 앨범 발매한 색소폰 레전드

모던 색소폰 트리오의 진정한 선구자

최근 잇달아 소니 롤린스의 라이브 앨범들이 공개되었습니다. 하나는 바로 블루 노트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빌리지 뱅가드 실황의 완전판이며 다른 하나는 처음으로 공식 발매되는 1959년도 유럽 투어 실황입니다. 이 두 작품은 실제 연주기간에 2년 정도의 터울이 있지만 동일한 색소폰 트리오 편성이라는 점, 그리고 스튜디오가 아닌 라이브라는 점이 일치합니다. 소니 롤린스가 본격적으로 재즈 신에 화두를 불러 온 색소폰 트리오 편성, 피아노나 기타 같은 화성 악기의 조력 없이 온전히 자신이 진두지휘하는 이 편성으로 당대 최고의 연주자 지위를 얻어낸 그의 젊은 시절 최전성기 모습이 담겨진 두 작품은, 덱스터 고든과 함께 테너 색소폰이 갖는 남성적인 특징과 매력이 무엇인지를 A부터 Z까지 유감없이 들려줍니다.

/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Chuck Stewart. Blue Note, Francis Wol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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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상 임프로바이저 향해가던 시기

남성미 넘치는 선 굵고 호방한 테너 색소폰 톤과 중후한 블로잉을 기반으로 끝없이 터져나오는 장대한 즉흥연주 구사 능력을 지닌 역사적인 테너의 거장. 벤 웹스터와 콜맨 호킨스에서 이어지는 테너 색소폰의 전통적 계보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해낸, 재즈사에 길이 남을 명 테너맨 소니 롤린스. 그의 첫 전성기 시절은 1956년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전부터 그의 실력에 대해서 다들 엄지를 치켜 올리고는 있었지만 리더 작으로서 평단과 재즈 팬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프레스티지에서 발표한 56년도 녹음 <Plus 4>부터였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당시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던 하드 밥의 표본과도 같은 사운드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냈죠.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과 맞먹는 수준의 인지도를 지닌 라인업에 오히려 피지컬한 관점에선 그들보다 한 수위의 역량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초호화 멤버들,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 드러머 맥스 로치, 피아니스트 리치 파월(버드 파월의 친동생이죠. 잘 아시듯 같은 해 클리포드 브라운의 차 사고에 동승했던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베이시스트 조지 모로우의 조합으로 함께 한 이 작품은 소니 롤린스가 바라던 최상의 재즈 캄보에 가장 근접했었다고 해도 틀림이 없죠. 뒤이어 두 달 정도 뒤 같은 녹음실에서 작업한 <Tenor Madness> 에서 마일스 캄보를 대동, 여러모로 상호 대비되는 작품을 연이어 만들어내게 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 들어보면 두 캄보의 연주 성향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레스티지 레이블의 사장 밥 와인스톡이 그 당시 수완이 좋았고 또 일정이 맞아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당대 최고의 재즈 유닛을 소니 롤린스의 리더작을 위해 위해 연이어 작업할 수 있도록 조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니 롤린스의 위상이 당시 솔리스트로서 최고의 스타에 도달해있었음은 틀림이 없죠. 이런 상승세는 같은 년도에 녹음, 이듬해 발표한 소니 롤린스 전체 커리어 최고 대표작 <Saxophone Colossus>을 필두로 지구 성층권을 뜷고 우주로 나갈만큼 상종가를 치고 이 흐름을 발판으로 1959년 돌연 잠적하기 전까지 매해 2~3장 신작 녹음을 이어갈만큼 지속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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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롤린스가 최초로 녹음한 색소폰-베이스-드럼 편성의 앨범. 단일 앨범으로 수록곡 전체를 색소폰 트리오로 녹음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을 커리어의 최고 정점을 일찌감치 스물 여섯의 젊디젊은 나이에 맞이한 그였지만 소니 롤린스는 이 흐름에 안주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존의 트럼펫-색소폰 퀸텟 형태의 앙상블 작업 외에 생뚱맞게 완전한 색소폰 트리오 녹음을 하나 갖게 되는데 그게 바로 LA 지역의 컨템포러리 레이블을 통해 이듬해 초 발매된 걸작 <Way Out West>였죠. 기존 리듬 섹션에서 트럼펫을 포함한 다른 관악기를 제외시키고 피아노까지 뺀 뒤 오로지 색소폰-베이스-드럼의 소편성, 화성악기가 일체 포함되지 않은 편성으로 녹음실에 들어갔는데 리듬 파트 주자 두 사람 또한 그전까지 한번도 맞춰본 적이 없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드러머 셜리 맨과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은 당시 LA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죠. 연주자및 녹음실 스케줄로 인해 새벽 3시에 모여 리허설을 시작한 이들은 밤을 새고 다음날 오전까지 계속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색소폰 트리오 앨범을 이야기할 때 꼭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며 소니 롤린스는 피아노나 기타 없이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음악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죠.

이 자신감은 같은 해 11월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되는데, 바로 블루 노트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빌리지 뱅가드 실황입니다. 이 두 작품은 소니 롤린스가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남긴 몇 안 되는 색소폰 트리오 녹음임과 동시에 역사적으로 이 편성으로 만들어진 작품들 가운데 교과서와 같이 언급되는 대표 걸작이기도 합니다. 화성악기의 도움 일체 없이 즉흥연주가로서 자신의 가진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내어 표현해야 하고 사운드를 빈 곳 없이 채워야만 하는 이 편성은 여간한 연주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시도하기 쉽지 않은 편성이며 좋은 결과를 내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소니 롤린스는 당대 어떤 색소포니스트들보다 먼저 이 난이도 높은 작업을 시도했고 또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공히 성공을 거둡니다. 이 시기부터 재즈의 리듬 섹션들이 수동적인 스윙 기반의 서포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인터플레이의 개념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모드의 반영을 통해 화성의 틀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상상력의 범위도 넓혀나가기 시작했죠. 그 결과 즉흥 연주가들은 자신의 역량과 아이디어가 가능하다면 곡의 코러스를 끊임없이 돌면서 연주를 확장시켜나갈 수 있게 됩니다. 소니 롤린스는 이런 접근을 색소폰 연주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시도한 인물중 하나라고 볼 수 있으며 조 헨더슨이나 리 코니츠 같은 비슷한 세대 동료들은 물론이고 이후 등장하는 조 로바노, 브랜포드 마살리스, 제임스 카터, 조슈아 레드맨등 여러 후배 색소포니스트들에게도 큰 영감과 동기부여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커리어 첫 유럽 투어에 오르다

한편 기념비적인 색소폰 트리오 라이브 걸작인 빌리지 뱅가드 실황앨범이 발매된 게 1958년도인데 그 로부터 만 1년 뒤 소니 롤린스는 생애 첫 유럽 투어에 오릅니다. 스웨덴 스톡홀름과 프랑스의 프로방스, 이태리와 스위스의 취리히, 네덜란드의 라렌, 독일의 흐랑크푸르트 지역을 도는 투어였는데 이 투어에서 그는 오로지 트리오 편성으로만 공연을 갖습니다.(그러고보면 소니 롤린스는 정말 이 편성에 젊은시절부터 큰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의 색소폰을 위시해 베이시스트 헨리 그라임스, 드러머 피트 라 로카, 케니 클락, 조 해리스등으로 이뤄진 라인업으로 약 2주 정도의 유럽 투어일정을 모두 소화했는데 바로 이 시기의 유럽 투어 녹음이 지난 4월 말경 공식적으로 처음 발매되었죠. 미공개 음원 재발매 전문 레이블인 레조넌스(Resonance)에서 2000년대 후반 부틀렉 형태로 불법 제작되던 녹음들을 모두 취합, 실제 발매 권리를 취득해 처음으로 공식 발매한 이 작품은 소니 롤린스가 이후 음악적인 아이디어및 에너지 고갈 등의 이유로 1962년까지 3년간 잠적하게 되기 전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우는 모습들이 담겨져 있으며, 당대 최고의 즉흥연주자로서 자신이 가진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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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피트 라 로카, 헨리 그라임스, 소니 롤린스

 

이 라이브가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와 비교해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먼저 수록된 레퍼토리 포함 총 33시간 정도 러닝타임인 넉넉한 분량과 연주에서 한층 더 긴 즉흥연주 비중입니다. 특히 마지막 3번째 CD에 담긴 프랑스 실황은 단 세 곡만이 실려 있지만 각 트랙은 15분이 가볍게 넘는데, 이 정도로 긴 즉흥연주를 들려준 경우는 이 당시 소니 롤린스의 작품들 중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즉흥연주가로서 정체성과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인데 특히 Woody N You Lady Bird 는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도 찾기 쉽지 않은 명연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와 함께 첫 번째 CD에 담긴 스웨덴 실황 또한 꼭 언급하고 싶은데 대표적 명곡인 St Thomas How High the Moon , Oleo 는 소니 롤린스가 지금껏 들려준 어떤 버전보다 밀도 있는 즉흥연주와 해석의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애초 녹음상태가 다소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음향적인 아쉬움이 일부 있습니다만 연주의 음악적 충실감으로 인해 가볍게 상쇄될 정도로 멋진 연주들이 여기에 담겨져 있죠.

다만 이 라이브 셋 음반의 단점이 없지는 않은데 두 번째 독일과 네덜란드, 스위스 지역 실황이 담긴 CD는 솔직히 정규 앨범으로 발매하기엔 음향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트랙에 따라 좋은 호연은 다수 발견되지만 1,3번째 CD파트와 비교하면 음질이 너무 조악해서 음악적 내용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전체의 기록을 다 담아두는 차원에서 이런 단점이 있음에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이며 자료적인 가치를 담은 부분으로 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여러분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이유는 소니 롤린스가 3년간의 잠정 공백기를 갖기 전 마지막 모습이 어땠는지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그의 판단과는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즉흥연주 역량이 최고조에 도달해있던 시기라는 점 또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스스로 1962년 복귀 이후 잠시 일선을 떠나 있었던 이유로 당시 자신의 연주에서 음악적 한계점에 도달했고 창작력이 고갈되어 더 이상 연주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었지만, 평범한 필자의 귀에 1959년의 소니는 이전 어느 때보다 거침없고 강력하며 단연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습니다. 장담컨대 현재 활동하는 젊은 색소포니스트들이 색소폰 트리오로 이렇게 연주하라고 하면 과연 설득력 있는 선율과 이 정도 중량감 있는 테너 사운드를 끝간데 없이 계속 뽑아낼 수 있을까요? 피지컬, 에너지도 괴물이지만 음악적인 영감 또한 말도 안되는 수준이라는 걸 이 라이브는 훌륭히 인증해주고 있습니다. 이 당시 그의 라이벌 격이었던 존 콜트레인과 비교하면 소니는 최소한 두어 단계는 더 위의 레벨에 도달해 있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는데 도대체 이 시점에서 왜 안식년을 가져야 했던 건지 더더욱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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