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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엠재즈

Hiro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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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mi   

불혹의 나이에 두 번째 피아노 솔로앨범<Spectrum> 발표한 재즈 피아니스트

 

‘자신의 현재 모습 기록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무명시절 없이, 데뷔 초부터 화려하게 재즈 신에 등장했던 일본출신의 피아니스트 히로미가 어느 새 40대에 접어들었다. 외모로 보았을 때, 그녀가 벌써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지만, 이는 사실이다. 데뷔 후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당찬 여성 피아니스트는 그 시간동안 한 치의 낭비 없이 자신을 담금질해나갔다. 칙 코리아, 스탠리 클락, 앤소니 잭슨, 사이먼 필립스같은 초거물급 조력자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음악유산들을 접하고 또 전해 받으며, 자신의 것을 하나하나 다져온 그녀는, 어느 새 그 나이에 걸맞게 음악에 깊이가 생겼고, 연주하는 한음 한음에 여러 가지 표정들이 잡혀나가기 시작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열심히만 한다고 누구나 다 체득되는 결과가 아니다. 바라보는 관점, 느끼고 깨우치는 인식의 범위가 넓어졌기에 가능한 결과! 센세이셔널한 테크니션으로 주목받고 인기를 끌었던 그녀는 이제 조금씩 다른 영역으로 자신을 옮겨가는 중이다. 

 

글/재즈피아니스트 우미진

사진/Muga Miyahara

 


 

그녀의 음악적 토대

 

2000년대 중후반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순간 한국에서 히로미의 이름이 꽤나 자주 재즈 마니아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재즈를 막 배우기 시작하는 재즈학도들의 입문 앨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의 앨범에 실린 연주와 자작곡들은 오스카 피터슨과 더불어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연주자의 스타일에서 언뜻 비슷한 점이 보인다. 블루스 스케일을 기반으로 둔 프레이즈, 음악언어들과 빠른 음표의 쉬지 않는 패시지를 잘 구사한다는 점이다. 물론 오스카 피터슨은 비밥이 더 강하고, 히로미는 클래식한 양손의 반복음형이 추가되는 것으로 구분되어 진다. 정말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많은 이들이 재즈음악을 떠올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요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윙리듬과 더불어 블루지한 느낌을 가장 대표적으로 꼽는다. 그만큼 전통적인 재즈에서 블루스는 단연 핵심요소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블루스만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있고 블루스를 기본으로 재즈역사에서 발전된 형태의 다른 음악언어, 표현들을 따라가며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연주자들도 있다. 비밥을 거쳐 컨템포러리한 언어들까지 섭렵하는 연주자들도 있으며, 이는 정말 철저히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빈번히 어떤 시대, 어떤 전설적인 뮤지션을 이상향으로 삼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선택은, 자신이 태어난 지역,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바이오그래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히로미는 클래식 음악으로 충만한 십대를 보낸 듯 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테크닉의 기본은 모두 매우 클래식적인 느낌과 인토네이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뛰어난 클래식 테크닉과 블루스의 만남이 필자가 가졌던 히로미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특히 그녀가 커리어 초반에 낸 앨범들은 대부분 이 특징을 아주 선명하게 들려준다. 

 

 

그녀의 음악적 이력과 과정 

 

버클리에서 만난 멘토 아마드 자말이 프로듀싱을 담당했던 첫 앨범 <Another mind>에서 파워풀하면서도 변화무쌍하고 드라마틱한 퓨전 음악을 당당히 보여주던 그녀가 벌써 데뷔 이래 16년이 지난 세월을 맞이하고 있다. 초반에 그녀가 가진 음악적 아이디어와 연주가 매우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이라거나 ‘일본식 퓨전의 잔향’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도 모두 그녀의 음악을 말하는 특징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일본 음악계의 황금시대라고 할 수 있는 70~80년대를 주름 잡았던 퓨전밴드 T-square 나 카시오페아의 음악의 영향이 그녀의 초반 음악에선 좀 더 뚜렷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퓨전밴드 옐로우자켓의 음악이 그들과 꽤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일본식 퓨전이란 표현이 가진 느낌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히로미는 다행스럽게도 거기에만 머물지 않았고, 음악을 전하는 방법에서 훨씬 복잡한 작곡방식을 사용하고 피아니스틱한 음형이 주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그녀의 음악이 좀 더 정리가 되고 그녀만의 색깔이 확연해졌다고 보이는 것은, 필자가 보기에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퓨진스키가 참여한 <Time Control> 때부터이다. 히로미의 소닉블룸 일렉트릭 밴드라는 밴드명으로 베이스에 토니 그레이, 드럼에 마틴 발리호라가 멤버로 참여한 이 음반은 확실히 전작들과는 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다. 연이어 1년 뒤 같은 라인업으로 발매한 <Beyond Standard> 까지 소닉블룸으로 발매한 히로미표 작곡이 더 빛을 발할 뿐만 아니라 일본식 퓨전의 느낌을 많이 덜어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이 부분은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퓨진스키의 영향이 매우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 시기부터 히로미의 연주가 내용면에서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좀 더 여유 있고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후 히로미가 내는 음반들은 개인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자신감과 뚜렷한 표현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 이십대의 그녀에게 아마도 중요한 이벤트이자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게 되는데, 바로 칙 코리아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워낙 그녀가 가진 피아니즘이 칙 코리아의 그것과 꽤 많이 닮아 있기도 하지만, 재즈계의 전설과 듀오를 이루어 연주하고 녹음하는 경험은 여간한 연주자들이 클럽에서 긱(Gig)하듯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칙 코리아와 함께 연주한 듀오 음반을 들어보면, 그녀가 얼마나 칙 코리아의 소리에 집중하여 섬세하게 반응하며 연주하고 있는지 잘 관찰할 수 있다. (짐작이긴 하지만 이 칙 코리아와의 협연이 그녀에게 새로운 음악적 개안을 전해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하나씩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발전시켜나가며 화려한 이십대를 보낸 히로미는 이 무렵 개인 프로젝트를 하나 생각해 내는데, 그것이 바로 2009년 발매된 <Place to be> 라는 피아노 솔로 앨범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십대를 마무리하며 ‘20대의 히로미 기교와 사운드는 이러했다는 발자국,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라며 앨범의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솔로 피아노 음반은 그녀의 상상력을 펼치는 가장 좋은 포맷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워낙 작곡 스타일도 그렇고 연주역시 클래식한 테크닉을 즐겨 쓰기 때문에 그녀의 특징을 더욱 빛내준다는 점 때문이다. 역시 이 음반에서도 그녀는 쉼 없이 빠르게 달려가는 듯한 음들을 많이 사용할 뿐 아니라, 주로 *펼친화음(아르페지오, 분산화음) 으로 곡의 진행을 풀어내고 있다. 또한 그녀의 장기인 스트라이드 피아노 스타일을 원 없이 들려주고 있으며 매우 능숙한 강약조절의 패시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녀의 연주에서 사실 일반적인 재즈 연주가들에게서 한번쯤은 나올 법한, 그 흔한 비밥언어나 전설적인 재즈 거장들의 그림자를 찾아내기는 다소 힘들다. 그러나 이미 그녀가 갖고 있는 크로매티시즘과 블루스라는 이 두 요소만으로 자신의 음악을 매우 효과적으로, 그리고 높은 수준의 표현력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다. 

 

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인생의 이정표라고 말하는 이 음반에 이어 정확히 십년이란 시간이 지나 두번째 피아노 솔로 음반인 <Spectrum> 이 지난달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녀의 나이가 어느덧 40줄에 들어선다는 이야기인데, 벌써 세월이 이만큼이나 지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십년간 그녀의 음악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또 이 음반에서 그러한 변화가 충분히 나타나고 있을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히로미 자신의 예술적 기교와 발전이 담긴 자화상과 같은 음반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컸던 것이다. 앨범을 이어 들은 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가 추구하고 있는 기본방향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 그럼에도 이전과는 다른 깊이와 자연스러움이 음악 전반에 걸쳐 풍부하게 느껴진다.

 

시작과 동시에 압도적으로 관객을 이끌며, 끝까지 잡고 이끄는 복잡하고 다양한 모티브의 변화와, 초기재즈의 즐거움에 포커스를 둔 연주와 작곡스타일은 그대로이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징, 장점들이 모두 다 한층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앨범의 첫 트랙은 ‘Kaleidoscope’ 와 ‘Spectrum’ 이란 곡은 모티브의 활용이 한층 다양해지고 세련되어졌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Mr. C.C’ 와 ‘Yellow Wurlitzer Blues’ 에서는 여전히 능숙하고 화려한 블루지한 프레이즈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비틀즈의 명곡 Blackbird 의 재해석은 원곡의 훌륭한 멜로디 테마를 잘 살리면서도 즉흥의 묘미도 한껏 발휘해 새로움의 농도를 한껏 높여냈다. 무엇보다 이 음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 메들리’ 는 그녀의 편곡의도가 잘 반영되고 드러난 연주라고 볼 수 있는데, ‘블루’ 라는 단어가 들어간 곡을 발표했던 세 명의 아티스트: 조지 거쉰(랩소디 인 블루), 존 콜트레인(블루 트레인), 록 그룹 더 후(Behind blue eyes) 의 음악을 전후로 배치하여 블루라는 색깔의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음악 여정을 무려 이십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스트레이트하면서도 장대하게 표현해내었다. 사실상 이 곡의 경우 러닝타임 때문에 중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가능성도 꽤나 높은데, 히로미는 그 점도 원숙하게 잘 커버하며, 연주자로서 자신의 기량이 이제 완연한 경지에 올라섰음을 멋지게 증명해보이고 있다.   

 

 

Epilogue

 

1979년생이니 올해로 정확히 불혹의 나이에 다다른 히로미는 앞으로 어떤 음악인생을 살게 될까? 이전까지는 주로 피아노로 그린 그림을 밴드 사운드로 정확히 옮겨 전달하는데 앙상블의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이제는 다른 좀 다른 방법을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주로 색깔이나 이미지를 떠올리며 작업하는 방식이 이젠 어떤 하나의 철학적 주제 아래 하나의 음반 안에서 펼쳐지게 될까? 그녀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나갈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고 발표되면 그걸 통해서 미루어 짐작할 뿐! 어쨌거나 그녀는 훌륭한 음악적 기교와 뛰어난 상상력을 탑재한 뮤지션이다. 벌써 십 수년이 지난 긴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확고한 음악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같은 방향을 걷는 그녀를 또 다시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히로미표 음악’을 즐기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듯하다. 하물며 매번 확실히, 그리고 조금씩 음악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져 갈 것이라는 점을 이렇게 작품으로 계속 증명해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같은 연주자로서 그녀가 걸어갈 길을 망설임 없이 지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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