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때로는 음악에 연륜의 깊이를 반영한다는 것이 한 아티스트에게나 듣는 감상자에게나 얼마나 축복인지 생각할 때가 있다, 올해 아르헨티나 출신의 반도네온 마스터 디노 살루치는 90세를 맞아 발표한 새 앨범 <El Viejo Caminante>에서 아들 호세 마리아 살루치, 그리고 노르웨이 기타리스트 야콥 영과 함께한 트리오로 오랜 세월 쌓아온 연륜을 음악에게 불어 넣고 계신다. 사실 그가 오랫동안 이렇게 세월, 인생 등을 담은 꾹꾹 눌러 담은 듯한 사운드와 프레이즈로 음악을 계속 만들어와서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잡다한 음악의 홍수인 요즘 이런 진솔한 음악을 만나는 즐거움은 특별한 점이 있다.

이번 앨범의 매력은 반도네온과 두 대의 기타가 만들어내는 친밀하면서도 투명한 사운드의 조합이다. 호세가 클래식 기타로 따뜻한 질감을 만들고, 야콥 영은 일렉트릭 기타를 주로 사용하며, 서로 다른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든다. 오랫동안 같이 연주한 아들의 기타 반주와 듀엣 협주는 자칫 진부 해질 수도 있겠지만, 다소 의외의 요소인 일렉트릭 기타와 함께 얽힌 사운드와 편곡들은 새로운 일면을 불어넣는다.

호세와 야콥의 듀오 공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디노 살루치는 직접 야콥에게 세션을 제안했고, 이듬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세 사람은 레코딩을 진행했다. 야콥도 직접 작곡한 트랙 Dino Is Here 에서 이 거장을 직접 헌정하고 있다. 탱고의 루바토적 세계와 실내악적인 텍스처를 넘나들며 디노에게 넓은 공간을 열어주고 있는 것.

디노 자신의 곡들도 이번 앨범에서 새롭게 해석되는데 앨범 <Volver>에서 연주했던 Tiempos de ausencias 가 다시 아들 호세와 야콥의 트리오로 편곡되어 등장하고, 찰리 마리아노, 볼프강 다우너와 잠시 활동했던 트리오 레퍼토리였던 Y amo a su hermano 도 포함되었다. 타이틀곡 El Viejo Caminante는 늙은 여행자라는 뜻으로 연륜이라는 요소가 없다면 결코 음악으로 녹아내기 힘든 감정의 질곡을 이 평범한 곡에 담아두신다.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이 작은 곡조가 특별함으로 바뀌는 감성의 마법을 경험하게 해주는 트랙.

또한 포크, 탱고, 재즈를 모두 넘나들면서도 레이블 특유의 여백과 서정성을 잊지 않는다. Someday My Prince Will Come, My One and Only Love 같은 재즈 스탠더드와 노르웨이 보컬리스트 카린 크로그의 곡 Northern Sun 을 함께 수록함으로서, 이 앨범은 특정 장르를 넘어서는 개방성을 보여준다. Buenos Aires 1950 에서는 디노 옹께서 라디오 엘 문도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곡이라고 한다. 이번 앨범은 그가 여전히 새로운 협업과 맥락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찰리 헤이든, 엔리코 라바, 토마슈 스타코, 존 서먼, 안냐 레흐너 등 수많은 유럽·미국 뮤지션들과 협업해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90세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의 접점을 찾고, 음악적·인간적 성장을 추구한다” 는 그의 말은 이번 앨범에서 증명된다. 이 새 앨범은 한 노장의 진솔한 회고록이기도 함과 동시에 탱고와 포크, 재즈, 그리고 연륜이 여전히 가치를 갖는 현재의 예술적 선언을 말해주는 것 같다. 글/재즈 기타리스트 정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