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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첫 등단한 이후 40년 이상 시와 소설을 두루 써오고 있는 장정일 작가가 음악 이야기가 담긴 종류의 여러장르 책들을 직접 읽고서 쓴 서평, 리뷰 혹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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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페미니즘] - 민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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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페미니즘

민은기 저 | 음악세계 | 2022년 06월 30일(개정판), 초판 2000년 | 128P

 

 

민은기의『음악과 페미니즘』(음악세계,2022)은 2000년에 초판이 나왔던 같은 책의 개정판이다. 지은이는 초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의 내용은 결국 어린 시절에 내가 품었던 간단한 의문, 즉 왜 여자아이들만 피아노를 치는가? 그리고 피아노는 여자아이들만 치는데 위대한 음악가는 왜 모두 남자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위대한 음악가가 모두 남자인 이유가 여성이 음악적이든지 생물학적이든지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당연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길고 험난한 것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왜 위대한 음악가는 모두 남성인가?”라는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에바 리거의『서양 음악사와 여성』(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1991)이나 알리에트 드 라뢰의『모차르트는 여성이었다』(레모,2024)를 읽은 독자라면, 클래식 음악계에서 뛰어난 여성 음악가가 배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복습 삼아 다시 상기해보자면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체계를 뜻하는 가부장제. 이 제도는 남녀의 성차(性差)에 뚜렷한 역할 구분을 강제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공적인 역할은 남자에게, 사적인 역할은 여자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의 차이에 따라 남성은 공적 영역,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역할을 나누는 가부장제의 전통은 음악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여성을 사적인 영역 밖으로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때, 음악을 하려는 여성에게는 커다란 족쇄가 된다. 먼저 학교에서 배우거나, 다른 음악가들과 교류를 하고 연주회를 여는 데 장애가 된다. 따라서 여성의 음악 활동은 가정 안에서 가족이나 방문객을 위한 사교용으로 축소되었고, 레퍼토리나 그들이 배우는 악기 또한 실내악이라는 범주를 넘지 않게 된다. 피아노 교육의 역사를 보면,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은 또래의 남자아이들보다 부모로부터 더 자주, 더 오래, 더 강도 높게 피아노를 배울 것을 권장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부모들의 열성이 그 여자아이를 위대한 음악가로 만드는 데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들의 교육 목적이 대부분 자신의 딸을 음악가로 키우는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여자아이에게 피아노를 열심히 가르치는 것은 바로 여성스럽게 키우기 위한 훈련인 경우가 많다.” 20세기에 들면서 비루투오소급 여성 피아니스트가 출현하게 되지만, 그 이전에는 여성이 사적인 경계를 넘어 직업적인 연주자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남성 같은 여성’이라는 극심한 비난과 혐오를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 음악가의 출현을 가로막은 첫 번째 방해물이 가부장제였다면, 여성의 창조력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들의 여성 혐오가 음악계에 구축한 편견은 두 번째 방해물이다. 기독교의 창조신화는 ‘하느님 아버지’라고 불리는 남성 신이 남자를 먼저 창조하고 그 후에 남자(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다. 여성은 창조의 목적에서 제외된 가외의 피조물인 것이다. 이런 열등한 여자에게 이성이나 창조력이 있을 리 없으므로 여성에 대한 음악 교육은 성악과 일부 악기에 한정되었고, 작곡은 아예 가르치지 않았다.

 1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작품이 현대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여성 작곡가이자 다방면에 걸친 박학한 지적 탐구능력을 지닌 천재로 평가받는다..jpg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작품이 현대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여성 작곡가이자 다방면에 걸친 박학한 지적 탐구능력을 지닌 천재로 평가받는다.

 

 

“여성은 역사적으로 같은 음악 분야 중에서도 특별히 작곡 즉 창작 활동에서 노골적으로 배제되어왔다. 작곡 영역에서 여성의 부재는 너무나 뚜렷한 현상이라 그동안 여성들은 태생적으로 창조적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까지 했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뛰어난 여성 작곡가로 조명받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1098?~1179)과 클라라 슈만(1819~1896)은 가부장제의 억압과 여성 혐오가 어떻게 여성의 음악 활동을 견제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한 사람은 수녀원에 속했기에 평생 음악을 할 수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아버지가 직업 음악가였기 때문에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수녀원에 속하거나 아버지를 독선생으로 둘 수 없었던 여성은 음악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성이 작곡을 배우지 못한 암흑 시기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이야기하더라도, 약 800년이나 된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전문적 직업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속한 사회가 그에게 전문 예술가가 되도록 허락할 때만이 예술가로 만들어진다. 즉 위대한 작곡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의 예술적 천재성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사회적 요구와 그 사회의 제도적 기반이 더 결정적인 조건이 된다. 이러한 논리는 스포츠 분야를 보면 더욱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육상과 구기 종목에서는 흑인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지만 골프나 테니스에서는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흑인 선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흑인이 육상과 농구에는 재능이 있지만 골프와 테니스에는 재능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어려서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가지고 놀 수는 있었지만, 필드에 나가 골프공을 맞춰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되자 작곡과 연주에서 여성 음악가가 대거 출현하게 된다(작곡은 여전히 많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지은이가 잘 짚고 있듯이, ‘여성 음악가’가 늘어난다고 ‘여성 음악’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여성 음악가’와 ‘여성 음악’은 다른 층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여성 작곡가가 가사가 없는 음악에 ‘여성의 목소리’ 또는 ‘여성의 감수성’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만족할 만한 해답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문학이나 미술에서 페미니스트 예술을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작품의 양식이 아니라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소재에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 점이 왜 문학이나 미술과 비교해 음악에 ‘여성’ 작곡가와 페미니스트 예술이 없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음악은 소리를 다루는 무형의 추상적 예술이다. 가사라는 문학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서는,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음악가라고 해도 음만으로 ‘여성’이나 ‘여성의 삶’, ‘여성의 감수성’ 같은 여성적 주제를 표현할 길이 없다. 음악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 작곡가이자 탁월한 피아니스트로 살아생전 명망이 높았던 클라라 슈만(Clara_Schumann).jpg

작곡가이자 탁월한 피아니스트로 살아생전 명망이 높았던  클라라 슈만(Clara_Schu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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