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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에 연재되었던 엠엠재즈 재즈이야기 컨텐츠들을 이전하였습니다.
글: 최범 | 재즈를 사랑하는 산부인과 의사(서울의료원)

엠엠재즈

잃어버린 것들 1

Moon And Sand

쳇 베이커의 ‘Moon And Sand''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 위에 뜬 메마른 달을 암울하게 노래하는 쳇과 그의 차가운 트럼펫 소리... 누구라도 이런 노래를 CD플레이어에 올려놓고 반복 재생해서 밤새도록 듣는다면 공허하고 허무하다 못해 자살을 생각할 법하다. 진료실에서는 그렇게 밤새 쳇 베이커의 ‘Moon And Sand''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발견 당시 강은 진찰실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왼팔에는 텅 빈 차가운 링겔 병이 굵은 18gage의 혈관주사용 바늘로 그와 연결되어 있었고, 오른팔은 침대 옆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끝에는 10cc 일회용 주사기가 여러 개 놓여져 있었다. 바닥에는 주사기뿐만 아니라 여러 혈관주사용 앰플들이 널려져 있었다. 전해질 보충에 쓰이지만 혈관으로 들어가게 되면 즉각적인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염화칼륨, 죽음처럼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펜토탈과 호흡할 수 있는 근육마저도 마비시키는 석시닐콜린 등이 담겨 있던 조그만 유리 앰플들이었다. 

얼굴표정은 그리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경찰 발표에 의한 추정시간은 새벽 2시에서 4시경이며 원인은 약물투여에 의한 자살이었다. 신문 한 구석에 조그맣게 그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지난밤 청담동 모 병원의 내과 과장 강모 씨가 진료실에 숨져있는 것을 이튿날 청소하러간 박모 씨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자살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같은 병원 원장이라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아왔으며 가정적으로도 1년 전 결혼한 아내와 특별한 문제없이 잘 지내와 왜 자살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평소 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자살 현장에서도 음악을 틀어놓았던 것으로 보아 음악을 듣다가 우울증에 빠져 순간적인 정신착오에 의한 사고로 보여진다’

신문기사도 그렇듯 자신 이외의 세상보기는 항상 그렇다. 맨 마지막 결과와 당시의 상황만 보고 판단하기 마련이다. 그가 오래 전부터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날은 음력 3월 13일이었다. 보름도 가까워져 가고 있었고 구름도 별로 많지 않은 봄밤이라 그 날 밤은 푸른 달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진료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거기다가 쳇 베이커의 ‘Moon And Sand''라니... 물론 도화선이 될 수는 있었지만 터지는 것은 도화선 끝에 연결된 폭약이다. 폭약에 얼마나 많은 화약이 담겨져 있느냐에 따라 화력이 틀려지게 되는 것이다. 보통은 도화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안에 담겨 있던 화약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게 된다. 

정신 착란은 더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자살은 앞으로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판단을 하고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자살이야말로 위대한 철학이 될 수도 있다. 철학의 목적이 인생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 모든 것보다 가치 있다. 사랑만이 그의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 헤맨 것도 사랑이었다.


Cantaloop

그러니까, 3년 전 봄이었다. 그가 그녀의 원룸에서 눈을 떴을 때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가 속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말했다. “빨리 가야지, 늦겠군. 오늘 아침에 세미나 발표도 해야되고 중환자실 환자 Extubation(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하기로 했는데... 아침 ABGA(동맥혈가스분석검사)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항상 그런 식이군요.” 그녀는 휴지가 널려있는 재떨이에서 간밤에 반쯤 피우다 꺼버린 담배꽁초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우린 이제 이렇게 끝난 건가요?”

“어젯밤에 다 얘기했잖아. 짜증나게... 나 빨리 가야돼.”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이렇게 헤어지면 마음이 아프지 않나요? 날 사랑한 게 아니었군요.”

Repeat 해 놓은 카세트에서는 어젯밤부터 계속 반복되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이전에도 많이 들었는지 늘어진 테이프 소리가 났다.

“철수 씨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상당히 아픈 가슴을 가지고 있겠구나. 그래서 내가 그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그건 아니었군요.”

“아무 말도 하지마.”라고 대답하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계속..)


* 글에 나오는 구체적인 지명이나 상품명 등은 글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함이며 어떠한 광고나 비난성이 전혀 없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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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엠엠재즈 웹사이트 관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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