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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스윙, 비밥, 이후 5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하드 밥 시대까지 잘 알려진 재즈 명반들 외에 현 시대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음악적 스타일과 연주를 담은 작품들을 찾아서 조명하고 해당 아티스트들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시각으로 이야기 해보려는 기획 의도를 갖고 있는 코너. 참여 필자 - 편집장 김희준, 기타리스트 정수욱, 칼럼니스트 황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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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나르시시즘에 깃든 놀라운 천재성 [Footloose!] - 폴 블레이(Paul Bley)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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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블레이(Paul Bley)   <Footloose!>   Savoy Rec./1963

 

Piano  Paul Bley

Bass  Steve Swallow

Drums  Pete LaRoca*

 

 

 

1 "When Will The Blues Leave"   (Ornette Coleman)

2 "Floater"   (Carla Bley)

3 "Turns"  (Paul Bley)

4 "Around Again"  (Carla Bley)

5 "Syndrome"   (Carla Bley)

6 "Cousins"  (Paul Bley)

7 "King Korn"  (Carla Bley)

8 "Vashkar"  (Carla Bley)

 

Written-By – Carla Bley (tracks: 2,4,5,7,8), Paul Bley (tracks: 3, 6)

Recorded August 17, 1962 (1,2,4), September 12, 1963, (3, 5 t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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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나르시시즘에 깃든 놀라운 천재성

클래식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 그리고 또 한명의 재즈 피아니스트 폴 블레이. 음악만 놓고 본다면, 이 세 분 사이에 공통점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연주 세계는 서로 너무나 달라서, 이미 고인이 되셨다는 점 외에는 공통된 무언가를 떠올리기조차 어렵지만, 넓게 외연을 보자면 이들은 모두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같은 악기를 연주하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 분을 같은 분류에 넣는 것은 말이 안되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극단적인 차이야말로 이분들이 지닌 가장 위대한 공통점일지도 모릅니다. 각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피아노의 표현 영역을 밀어붙이며, 지금 현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고 가신 피아노의 전설들로 남아 계시다는 사실이 아마도 가장 확실한 공통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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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피아니스트 폴 블레이는 젤리 롤 모턴, 아트 테이텀, 셀로니어스 멍크, 빌 에번스 등과 함께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재즈 팬들이 여기에 동의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최소한 저와 같은 골수 팬들에게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재즈계 전반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폴 블레이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를 두고 존경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결코 그의 음악적 성취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전 부인이었던 칼라 블레이(훗날 그의 오랜 음악적 동료인 스티브 스왈로우의 실질적인 아내가 되신 분)를 비롯해 수많은 동료 뮤지션들의 증언과 여러 일화가 담긴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모던 재즈 피아노가 비밥과 쿨의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선구자로 나섰습니다. 즉흥성과 직관성에 기반한 독창적인 연주 세계를 구축했으며, 또한 ECM을 비롯한 유럽 재즈의 주요 흐름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특히 3살차이 나는 빌 에번스와는 정반대의 재즈 스펙트럼에 자리하며, 프리재즈와 아방가르드의 실험 정신을 탑재한 채 그 새로운 흐름을 알리고 발전에 공헌한 의미가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산업, 특히 재즈를 포함한 대중음악 산업의 전체 구조 속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2 젊은시절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던 스티브 스왈로우 1961년도.jpg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Steve Swallow) 의 젊은 20대 시절 

 

그의 1963년 피아노 트리오 앨범인  [Footloose!] 는 당시 재즈의 흐름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앨범 중 하나였습니다. 재즈가 모던과 프리의 주요 갈림길에서 방향을 새롭게 틀던 시기, 폴 블레이는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시대의 변화를 포착했고, 그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2000년대 등장했던 재즈 트리오 배드 플러스의 전 피아니스트였던 이단 아이버슨은 이 앨범 [Footloose!]에 대해 폴 블레이에서 키스 재럿을 거쳐 브래드 멜다우로 이어지는 현대 재즈 피아노 스타일의 주요 계보는 이 음반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평가한 바 있으며, 필자 역시 그 의견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에서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스티브 스왈로우가 콘트라 베이스를 맡았고, 그의 추천으로 합류하게 된 드러머 피트 라로카가 함께 리듬 섹션을 구성해 트리오를 이루었습니다. 피트 라로카는 이후 조 헨더슨과 함께 연주한 Blue Bossa 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수많은 세션을 소화한 후, 본명인 피터 심스로 활동하며 나중에 변호사로 전직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Footloose!]의 레퍼토리는 오넷 콜맨의 When Will the Blues Leave 와 폴 블레이 본인의 오리지널 곡 두 곡을 제외하면, 모두 당시 그의 아내였던 작곡가 칼라 블레이의 초기 작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곡들은 멜로디 중심의 보편적인 곡 구조를 따르기보다는, 즉흥성을 위한 일종의 다이빙 보드처럼 기능하며, 프리 재즈 스타일의 연주 접근에 최적화된 헤드솔로헤드 구조의 구색만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칼라 블레이의 존재감과 폴 블레이의 음악 세계가 맞닿아 있던 중요한 시기를 포착한 초기 시절의 결정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한편, 폴 블레이는 오넷 콜맨이 프리 재즈의 창세기적 명반으로 평가받는 [The Shape of Jazz to Come] (Atlantic/1959)을 발표하기 1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그와 만나 함께 연주하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의 정규 앨범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일부 라이브 부틀렉 음원들이 발매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두 사람의 연주 스타일과 교감의 흔적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도 합니다.

비밥의 전형적인 언어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재즈적인 즉흥성과 음악적 내러티브가 충분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일단 연주력이 첫 번째로 필요한 기술이었습니다. 폴 블레이는 이미 10대 때부터 프로페셔널 연주자로 활동했고, 맥길 대학교와 뉴욕 줄리어드 음대를 거친, 그야말로 그 시절부터 기술이 이미 완성되어 있던 연주자였습니다. 찰리 파커와 함께 연주한 적도 있었고, 자신의 데뷔 앨범은 레전드 찰스 밍거스가 본인 레이블인 데뷔(Debut)에서 직접 발매해줄 만큼 촉망받는 재즈 인재이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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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에 관하여

사실 이 앨범은 냉정히 말해 어쿠스틱 사운드의 퀄리티 측면에서만 본다면, 동시대의 다른 수작들, 예컨대 블루노트 레이블 앨범들에 비해 그리 매력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음악이 약 60여 년간 적극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다소 가려져 있던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Footloose!] 앨범에 관한 스티브 스왈로우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많은 비가 내려 녹음 예정이었던 스튜디오의 피아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폴 블레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악조건조차 연주의 일부로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Syndrome 에서의 피아노 솔로는 시작부터 멜로디를 따라 부르거나 스캣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진행되는데, 이는 훗날 쥐어짜는 듯한 괴성으로 기억되는 키스 재럿의 스타일이 이미 이 시기에 일정 부분 폴 블레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암시하는 장면으로도 느껴졌습니다. ,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흐름에 힘을 실어준 비의도적인 구조의 전개, 그리고 그런 관행이 이 앨범에서 하나의 미학적 형식처럼 작동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조금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리 어긋난 해석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키스 재럿이 60년대 중반 젊었던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 [Footloose!] 이었다고 오래 전부터 말한 적이 있었죠. 골백번은 더 들었다고 직접 말할 만큼 이 작품에 대해 키스 재럿이 지닌 애정은 무척 컸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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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머 피트 라로카(Pete Laroca) 

 

칼라 블레이의 곡 Around Again, Syndrome 에서 들을 수 있는 피트 라로카의 드럼 솔로는, 그가 당시 얼마나 참신하고 탁월한 스윙 그루브의 마스터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폴 블레이가 새롭게 시도하던 재즈에서는 스윙보다는 스트레이트한 리듬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그런 흐름이 이 앨범 곳곳에서 감지되기도 했습니다. 연주자 간의 긴장감과 상호 작용은 이 앨범이 여느 명반과는 다른, 미묘하고 유기적인 분위기를 가지게 만든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Cousins 는 특히나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피아노와 베이스 듀엣으로 구성된 이 곡은, 훗날 ECM 레이블이 추구하게 되는 사운드의 공간감을 구조적인 음악 언어로 받아들이는 계기를 마련한 곡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ECM의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는 훗날 폴 블레이의 유럽 공연에서 직접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는 키스 재럿, 칙 코리아, 폴 블레이가 각각 발표한 피아노 솔로 앨범들 [Facing You], [Piano Improvisation], [Open, to Love] 이 후대 재즈 피아니스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출발점은 폴 블레이가 1950년대 레니 트리스타노에게서 받은 영향, 특히 쿨 재즈 스타일의 수평적인 라인 감각과 직관적인 즉흥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언급되곤 하죠. 칼라 블레이의 심쿵 발라드’ Ida Lupino 의 베스트 버전 중 하나도 바로 [Open, To Love] 에 있습니다.

 

한편, 이 작품에 반영된 또 다른 중요한 영향으로는 쿨 재즈 스타일의 색소포니스트/클라리넷 연주자 지미 주프리에게서 받은 것이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재즈의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 중 한 명이었으며, 폴 블레이는 1961주프리 3’라는 프로젝트 트리오(이때 스티브 스왈로우와 처음으로 함께 연주하게 되었습니다)를 통해 그의 음악 세계와 직접 접촉했습니다. 이 시기의 앨범들은 훗날 ECM에서 1961이라는 제목으로 재발매 되었으며, 그 안에는 칼라 블레이가 첫 번째로 작곡한 Jesus Maria 가 수록되기도 했었죠. 이 곡은 2009년 브라스 퀸텟(금관 5중주)과 피아노 베이스버전으로 다시 등장한 바 있는데, 그 안에서 드러나는 칼라 블레이의 모던한 작곡 세계는, 폴 블레이와의 관계가 단순한 동료 이상의, 음악적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연결을 맺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줍니다.

폴 블레이는 이후 60년대 중반 잠시 소니 롤린스의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여기에 얽힌 흥미로운 오디션 일화가 있습니다. 뉴욕의 클럽 버드랜드에서 열린 오디션 중, 소니 롤린스가 폴 블레이를 먼저 데려가는 바람에 마일스 데이비스는 할 수 없이(?) 허비 행콕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재즈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듯 예측할 수 없는 우연과 선택의 흐름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알 수 없음의 동전 던지기야말로, 폴 블레이의 예측 불가능한 음악 세계와 가장 닮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비단 저 혼자만은 아닐 거라 봅니다.

 

5 클라리넷 연주자 지미 주프리와 함께 연주하는 스티브 스왈로우와 폴 블레이. 1961년도.jpg

클라리넷 연주자 지미 주프리와 함께 연주하는 스티브 스왈로우와 폴 블레이. 1961년도

 

Epilogue

지금으로부터 62여 년 전 녹음된 이 앨범이 지금 들어도 여전히 진보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얼마나 남다른 진취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상업적 인지도, 대중 팬 층의 규모, 미디어 노출 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키스 재럿, 칙 코리아, 허비 행콕, 브래드 멜다우 같은 실력 대비 '운이 따랐던 레전드들'에 비해 폴 블레이는 확실히 저평가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는 단순히 대중의 무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선택한 음악적 길 (자율성과 예술적 모험을 우선하는 길)을 선택한데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데,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재즈 피아니스트를 지망하는 소수의 누군가는 이 앨범 [Footloose!]에 담긴 음악을 처음 듣고 깊은 충격을 받으며, ‘왜 이런 음악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라고 말하겠죠. 그리고 폴 블레이가 남긴 주옥같은 다른 디스코그래피를 훑어 나갈 겁니다. 그는 그런 음악가였고, (너무 진부해 표현하기 주저하게 되는 문장들이지만) 그야말로 시대보다 최소한 반세기를 앞서 있었고, 그 누구보다 독립적이었으며, 어쩌면 대중이 따라가기에는 너무나도 자아도취적인, 지극히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던 예술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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