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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에 연재되었던 엠엠재즈 재즈이야기 컨텐츠들을 이전하였습니다.
글: 최범 | 재즈를 사랑하는 산부인과 의사(서울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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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Rainbow 1

새벽녘 아득히 멀어지는 꿈을 흔드는 기운에 눈을 떴습니다. 여느 새벽의 노란 가로등 불빛보다 밝고 투명한 느낌이 창에 비추어졌습니다. 창을 열자 폐 속까지 시원해지는 맑고 차가운 대기가 나를 감싸줍니다. 눈을 감고 깊이 들이 마셔봅니다. 신선한 공기를 손끝 혈관까지 가득 머금고 살며시 눈을 뜨다 휘둥그레지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밤새 눈이 내린 겁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하얀 나라 손님들을 반기며 즐거워하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 서둘러 길가 한쪽에 서있는 가로수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창 밖을 보다가 발견한 그 가로수에는 겨울이 찾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나뭇잎이 하나 매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앙상한 가지에 몸을 잔뜩 오그린 채 달려있던 그 잎은 지난 번 한차례의 추위가 몰아쳤을 때에도 비록 얼어붙을 지언정 떨어지지 않던 잎이었습니다. 

낙엽은 편지입니다. 화려했던 여름날을 써 내려간 편지입니다. 가을이 오면 나무는 행여 아름다웠던 모습을 잊을까봐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님들에게 편지를 건네줍니다. 아마도 그 잎은 님이 오시질 않아 편지를 전해주지 못했나 봅니다. 그 못다한 사랑에 동병상련을 느끼며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습니다. 이제 그 잎이 보이지 않습니다. 편지가 드디어 전해졌나봅니다. 밤사이 님이 다녀 가셨나봅니다. 무척이나 기쁜지 눈꽃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그래, 너는 결국 님을 만났나 보구나!’ 

이제는 조바심에 그 나무를 쳐다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 당신이 계신 그곳에도 눈이 왔습니까? 혹시 내가 잠든 사이 다녀가시진 않으셨는지요.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매 순간 모자이크되어 살아지는 삶, 잠시의 숨 돌릴 틈 없이 돌아가는 그 정연한 초침의 질서 아래 주어지는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정녕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과의 마지막 만남도 겨울이었습니다. 그 해 가을 함께 하자고 했던 삶이 무참히 깨지고 난 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애원 끝에 당신을 만났습니다. 거리는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기쁨과 환희에 가득 차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어울릴 수 없어 찾아 간 곳은 한강의 선착장이었습니다. 차갑다 못해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요. 
여느 때처럼 우리는 선착장 한켠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배를 탈 것도 아니면서 대기실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멍하니 강물에 비친 도시의 겨울 그림자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낡은 스피커에선 ‘Over The Rainbow’가 흘러나오고 있었지요. 언젠가 당신과 함께 보았던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렸습니다. 당신은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었죠. 그때 당신이 태풍에 집이 날려 무지개 너머 마법사들이 사는 오즈에 가게 된다면 둘이서 꼭 함께 노란 벽돌길을 걷자고 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려 당신을 쳐다보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꾹꾹 참고 있었습니다. 결국 당신이 먼저 말을 꺼내었습니다. 

‘많이 힘들지...? 나도... 많이 힘들어.’

‘으응... 그렇지 뭐.’ 

침을 꿀꺽 삼키고 하늘을 쳐다본 후에야 간신히 눈물을 참았습니다. 

‘우리 유람선 한번 타보자. 한번도 탄 적 없었잖아.’ 

‘시골 사람들이 서울 구경 왔을 때나 타는 거라더니 오늘은 웬일로...’ 

그 날의 마지막 유람선에는 우리 말고도 몇 쌍의 연인들이 그리 춥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반쯤 안긴 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는 선실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 싸늘한 기운이 옷 속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손을 잡아 줄 수도 어깨를 감싸줄 수도 없었습니다. 한밤의 마지막 유람선이 천천히 한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며 다리 밑을 여러 번 지나갈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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