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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전위의 굳건한 결합 [Montreux Concert] - 돈 풀른(Don Pu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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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돈 풀른.jpg

 

 

 

돈 풀른(Don Pullen)

 

전통과 전위의 굳건한 결합!

 

<Montreux Concert>

(Atlantic/ WPCR-27482)

 

1 Richard's Tune 18:08

2 Dialogue Between Malcolm And Betty 21:49

 

 

Piano Don Pullen

Producer Herbie Mann, Ilhan Mimaroglu

Design [Album Cover Design] Sandi Young

Drums Steve Jordan

Electric Bass Jeff Berlin

Engineer [Mastering Engineer] George Piros

Engineer [Mixing Engineer] Bobby Warner

Engineer [Recording Engineer] John Timperley

Illustration [Cover Illustration] Don Brautigam

Percussion Raphael Cruz (트랙: B), Sammy Figueroa (트랙: B)

Photography By [Liner Photograph] Giuseppe Pino

 

Recorded "live" on July 12, 1977 at Montreux International Festival, Switzerland.

Mixed and mastered at Atlantic Recording Studios, New York, N.Y.

 

 

 1975년 찰스 밍거스 밴드를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피아니스트 돈 풀른에게는 아마도 걱정과 기대가 함께 했을 것이다. 1970년대, 밍거스 자신도 악전고투하면서 당시의 재즈계에서 생존해야 했지만 그나마 밍거스라는 커다란 거목의 그늘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은 풀른에게는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풀른과 유사한 아방가르드 재즈 연주자들에게 당시 붙여졌던 로프트 재즈’, 다락방 재즈라는 별칭은 로큰롤 시대에 전위재즈가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방가르드 재즈는 ’70년대 들어서 서서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내 음악을 더 이상 재즈라고 부르지 말라고 말했던 것처럼 재즈가 록 혹은 소울 음악과 뒤섞이며 재즈의 지난 시절과의 단절을 보이자 비로소 아방가르드 재즈가 재즈 역사 속에서 갖고 있던 의미가 선명하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대 초 소수의 평론가와 제작자들만이 인정하던 아방가르드 재즈의 가치는 ’70년대에 이르러 대중적인 수요와는 무관하게 좀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았는데 ’70년대 초 오넷 콜먼이 컬럼비아, A&M에서 녹음을 남겼던 것은 대표적인 현상이었다. ’75년 라산 롤랜드 커크는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맺었으며 ABC-파라마운트 산하의 임펄스 레코드 역시도 ’70년대에도 여전히 샘 리버스, 아치 솁, 마리언 브라운 등을 통해 전위 재즈를 지지하고 있었다.

밍거스 밴드를 떠난 풀른에게 관심을 맨 처음 보인 곳은 미국 음반사가 아닌 캐나다의 새크빌, 이탈리아의 호로와 블랙 세인트였다. 풀른은 ’75년에서 이듬해까지 새크빌에서 한 장, 호로와 블랙 세인트에서는 각각 두 장씩, 총 다섯 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리고 경이로운 그의 연주를 간파하고 미국의 대형 음반사 애틀랜틱은 돈 풀른에게 계약을 제안했다. 이미 밍거스 밴드 시절 애틀랜틱과 작업한 바 있는 풀른이었지만 당시 아방가르드 재즈 연주자와 대형 음반사가 계약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애틀랜틱에서의 첫 번째 음반 <내일의 약속 Tomorrow’s Promise>은 풀른의 명성을 널리 알린 첫 번째 음반이었다. 음악적인 측면보다는 배급의 문제 때문에 극히 제한적으로 알려졌던 전작들과는 달리 <내일의 약속>은 적어도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듀오에서부터 10중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성으로 짜인 여섯 곡은 하드 밥, 아방가르드, 펑크(funk), R&B를 한데 불러 모음으로써 ’70년대 재즈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동시에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풀른의 진수는 역시 피아니스트로서의 역량에 있었다. 피아노에서 들려주는 그의 분방한 음악적 전개와 강렬한 타건은 본질적으로 다른 악기나 복잡한 편성으로는 제대로 표현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가 밍거스 밴드에서 탈퇴를 결심한 것도 좀 더 피아니스틱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그 점은 밍거스 밴드 탈퇴 후 ’75년부터 이듬해까지 녹음한 다섯 장의 음반 가운데서 석 장이 피아노 독주 앨범이라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디어는 애틀랜틱에서의 두 번째 음반 <몽트뢰 콘서트 Montreux Concert>를 통해 다시 재현되었다.

 

DP-8.jpg

 

<몽트뢰 콘서트>는 발매 당시 LP 한 면씩을 가득 채운, 단 두 곡만을 담고 있다. 첫 번째 곡은 리처드의 곡 Richard’s Tune’으로, 그의 스승이자 창조적 음악인의 발전을 위한 모임’(AACM)의 중심인물이었던 무할 리처드 에이브람스의 작품이다. 풀른은 첫 번째 피아노 독주 음반인 ’75년 작 <솔로 피아노 앨범 Solo Piano Album>(새크빌)에서 이 곡을 이미 녹음한 바 있다. 이 앨범의 두 번째 곡이자 처음 녹음된 풀른의 작품 맬컴과 베티의 대화 Dialogue Between Malcom & Betty’는 제목 그대로 맬컴 엑스와 그의 부인 베티 섀배즈의 대화를 음악적으로 묘사한 곡이다. ‘리처드의 곡은 연주시간 1813초로, 피아노 트리오 편성으로 연주되었고 맬컴과 베티의 대화는 연주시간 2148초에 두 명의 타악기 주자가 추가되어 5중주로 연주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데이터일 뿐 음악적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리처드의 곡은 연주 시간 1153초에 이를 때까지 오로지 피아노 독주로만 진행되며 맬컴과 베티의 대화역시 1236초까지 피아노를 제외하면 아무런 악기도 등장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두 곡 모두 다 반주가 딸린 피아노 (독주) 음악이다.

신인 시절이었던 ’60년대 풀른은 몇몇 평론가들과 연주자들 사이에서 2의 세실 테일러로 불렸다. 무조성의 음계를 빠른 속도로 타악기처럼 두드리는 그의 주법은 충분히 테일러를 연상시켰으며, 실제로 세실 테일러는 초기 돈 풀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73년 밍거스 밴드에서 풀른의 모습은 훨씬 폭넓은 것으로 변모했다. 그것은 아방가르드 재즈를 보다 다양한 재즈(초기 재즈에서부터 찰리 파커까지)의 한 부분으로 포섭한 밍거스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지미 러싱에서부터 아서 브라이삭, 아이렌 리드, 니나 시몬 그리고 루스 브라운까지, 탁월한 보컬리스트들의 반주자 경력을 쌓아온 돈 풀른의 정석적인기초에 기반한 결과였다.

<몽트뢰 콘서트>에서 돈 풀른은 단순히 2의 세실 테일러로 한정 할 수 없는 그의 폭넓은 음악성을 들려준다. 조성과 무조성을 수시로 오가는 그의 연주는 평온과 낭만에서부터 불안과 광폭함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인간의 감정을 휩쓸고 지나간다. 동시에 그것은 손쉬운 분위기 연출이 아니라 철저하게 연마된 연주가가 아니면 표현해 낼 수 없는 초절기교 피아노의 세계다. 끊이지 않는 그의 즉흥연주는 말 그대로 경악의 소리를 이어간다.

오늘날 재즈에서 전위주의는 따로 외롭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류재즈의 중요한 어법으로 포함되었다. 오늘날 아방가르드를 배제한 재즈는 옹색한 복고주의가 아니면 천편일률적인 상업주의 재즈뿐일 것이다. 그래서 평론가 요하임 베렌트는 데이비드 머리(David Murray)를 대표로 하는, 아방가르드와 전통주의의 결합을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란 이름으로 주목했다. 그리고 그러한 조류는 데이비드 머리 이후에도- 건반주자들만 놓고 보더라도 D.D. 잭슨, 제이슨 모란, 비제이 아이어를 통해 계속 이어져 내려 왔다. 이러한 흐름의 꼭대기에 돈 풀른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그리고 데이비드 머리 바로 위에 풀른의 오랜 동료 조지 애덤스가 있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비록 아방가르드 재즈에 대한 메이저 음반사의 관심은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고, 풀른은 유럽 독립 레이블과 자신의 로프트에서 다시 진지를 구축해야 했지만 이미 그가 남긴 음악은 재즈의 미래를 어슴푸레 밝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통과 전위의 굳건한 결합이었다

 

 

글/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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