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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베넷 & 다이애나 크롤(Tony Bennett & Diana Krall) - '듀엣의 아이콘, 처음으로 다이애나 크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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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세 번째 혼성듀오 앨범 발표한 거장 보컬리스트 

Tony Bennett & Diana Krall  

“듀엣의 아이콘, 처음으로 다이애나 크롤을 만나다”

 

혹자는 토니 베넷을 대중적 기호에 영합해 커다란 성공을 거둔 스탠더드 가수라고 말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그가 발표해온 근작 앨범들 중 상당수는 스타 마케팅이 포함되어 있으며,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나 지향점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평범하다. 그렇기에 과거 젊은 시절 얻은 명성이 세월이 흘러가며 고형화 되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커리어 일부만을 바라봤을 때 범하게 되는 오류다. 토니 베넷은 여느 연예인 팝가수들과는 격이 다르다.  

 

무엇보다 그가 대단하고 위대한 것은 자신의 노래, 목소리에 평생의 책임감을 두고 끊임없이 관리하며 단련해왔기 때문이다. 여간한 재즈 팬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가 오래전부터 불러왔던 스탠더드 넘버가 새롭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렇다고 커리어를 통틀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이나 장르로 도전하지도 않은 것도 안다. 그 점에서 그는 결코 진취적인 행보를 보여준 뮤지션은 아니다. 하지만 이 백전노장 명창은 그 뻔한 스탠더드 넘버에 진한 감정과 느낌을 담아낼 줄 안다. 비록 평범한 편곡과 반주가 주를 이룬다지만 그의 노래와 목소리만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서문 / 편집부

본문 / 강대원

사진 / Mark Sel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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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 시대를 거쳐 온 전설적 뮤지션들이 거진 다 세상을 떠났다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도 우리 곁에는 의외로 적잖은 분들이 현존해 계신다. 드러머 로이 해인즈(1925년생), 색소포니스트 지미 히쓰(1926년생), 리 코니츠(1927년생), 베니 골슨(1929년생), 소니 롤린스(1930년생), 웨인 쇼터(1933년생), 피아니스트 배리 해리스(1929년생), 아마드 자말(1930년생), 기타리스트 케니 버렐(1931년생)등등...모두 다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말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분들인데, 재즈 보컬 쪽의 현존 거장이라면 단연 토니 베넷의 이름을 맨 처음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베넷 외에 프레디 콜(1931년생), 앤디 베이(1939년생) 등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구순이 넘은 지금도 주류 언론에서 이슈메이커로 활약하는 베넷의 커리어를 넘어서기는 힘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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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생인 베넷은 프랑크 시나트라(1915년생), 멜 토메(1925년생), 빌리 엑스타인(1914년생), 냇 킹 콜(1919년생) 등과 거의 동시대를 두고 활동해왔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선배 및 동료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놀랍게도 베넷은 타고난 근력과 생명력으로 아직까지 정정함을 과시하고 있으며 2000년대 이후 ‘판타스틱 듀엣’ 컨셉으로 다시금 성공가도를 구가, 남성 재즈 보컬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마돈나의 뒤를 잇는 섹시 아이콘 레이디 가가와의 듀엣은 그야말로 전 세계음악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빅 뉴스 중 하나였다. 레이디 가가뿐만이 아니라 베넷은 스티비 원더, 에이미 와인하우스, 존 메이어, 셰릴 크로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케이디 랭, 노라 존스 등 팝, 록계의 스타 보컬리스트와 함께 노래하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는 한편 몸소 듀엣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토니 베넷의 초기 성공스토리’

토니 베넷(본명은 Anthony Dominick Benedetto)은 1926년 미국 뉴욕 퀸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이탈리아계 이민자였던 토니 베넷의 부모는 아주 가난해 아버지가 잡화점 점원, 어머니는 재봉사 일을 했다고 한다. 베넷은 10세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 뉴욕 산업예술고에서 음악과 미술을 배웠으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16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노래했다. 베넷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육군에 징집돼 유럽의 전장을 누볐다. 당시 죽을 고비도 있었다고 하지만, 종전 무렵 미 육군밴드에서 노래하다가 하사로 제대하며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이후 가수의 길을 선택, 1940년대 베넷은 여러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가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1949년 미국의 코미디언 밥 호프의 순회공연에 초대를 받아 참가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토니 베넷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고 한다. 1950년대 비로소 베넷은 보컬리스트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데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 후 발표한 ‘Because Of You’ 싱글이 무려 100만장 이상 팔렸고 이듬해 음악 차트 넘버 1에 올랐다. 이후 <The Beat of My Heart> <Basie Swings, Bennett Sings> 등의 음반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베넷은 1956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TV쇼를 진행했으며 58년에는 영화 <선셋 77번가>의 조연으로 스크린에 데뷔, 66년에는 영화 <오스카>에도 출연했다. 

 

‘추락의 시기: 비틀즈, 이혼, 파산, 약물중독’

베넷은 1962년 발표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로 정상의 보컬리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2년 뒤 비틀즈가 등장하며 음악계 판도가 흔들렸고 베넷의 인기는 이때부터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한다. 64년 첫 번째 부인 파트리샤 비치와 이혼을 하고 이후 앨범을 꾸준히 녹음, 발표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았으며, 음악적 재기를 노리며 72년 새로운 음반사와 계약을 체결했으나 그 또한 순탄치 않았다. 베넷은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와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영국으로 자리를 옮겨 활동했다. 당시 퀸과 공연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유럽에서도 실패를 맛봐야했다. 결국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베넷에게는 빚더미만 가득했고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개인사에서도 악재가 계속 됐다. 이어진 두 번째 결혼생활도 이혼으로 끝이 나고 난뒤 베넷은 실의에 빠져 약물에 빠졌고 1979년에는 코카인 과다복용으로 죽음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베넷은 다시 재기를 결심하고 약물을 끊고 80년대부터 음반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 이후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그 결과 92년과 93년 연속으로 골드레코드를 기록하며 과거의 영광을 회복했으며 케네디센터 공로상, 그래미평생공로상 그리고 그래미어워드 20여회 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더할나위없는 황금의 말년기를 보내고 있다. 베넷이 이렇게 재기할 수 있었던 데에는 80년대 초부터 매니저역할을 맡아준 아들 대니 베넷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후문이다. 그가 없었으면 토니 베넷은 다시 재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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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반주자 역할을 맡고 있는 피아니스트 빌 살랩과 함께 한 토니 베넷

 

‘베넷의 골든타임, MTV Unplugged와 판타스틱 듀엣’

베넷의 후반 황금기의 결정적 터닝 포인트라면 바로 <MTV Unplugged> 공연을 꼽을 수 있을 테다. 90년대 불어 닥친 언플러그드(이른바 어쿠스틱 라이브) 바람은 ‘MTV Unplugged’에서 절정을 달했고 당시 인기 스타들이 앞 다투어 이 라이브에 출연해 자신의 라이브 실력을 뽐냈다. 당시 베넷의 나이는 칠순에 가까웠지만 이 노 대가는 방송에 출연, 2-30대의 젊은 음악 팬들을 휘어잡으며 젊은 대중에게 다시 한 번 토니 베넷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한다. 케이디 랭, 엘비스 코스텔로가 이때 베넷과 듀엣을 하기도 했는데 역시 이 공연의 압권은 바로 마이크를 내려놓고 육성으로 노래하는 ‘Fly Me To The Moon’이 아닐까 싶다. 노래에 대한 열정과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랄까. 이후 베넷은 2001년 <Playing With My Friends: Bennett Sings The Blues>부터 듀엣 편성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 2002년 K.D 랭과 함께 입을 맞추어 앨범 전체를 그녀와 함께 노래한 <A Wonderful World>를 발표했으며 2006년에는 <Duets: An American Classic>를 통해 본격적으로 판타스틱 듀엣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Duets II>를, 2012년에는 <Viva! Duets>를, 2014년에는 레이디 가가와의 듀엣인 <Cheek To Cheek>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솔직히 이정도면 우려먹어도 너무 우려먹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2015년 <The Silver Lining: The Songs Of Jerome Kern>을 발표하며 잠시 듀엣 작업을 멈췄던 베넷은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공연실황을 담은 <Tony Bennett Celebrates 90>으로 재차 판타스틱 듀엣을 공개했다. 

 

특히 <Duet II>로 베넷은 빌보드 앨범 차트 사상 최고령 1위 가수(만 85세) 달성이라는 진기록을 수립했는데 최근 필자는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입수했다. 과거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얼마 전 새 앨범 <Egypt Station>으로 36년 만에 76세로 빌보드 정상에 올랐지만 베넷이 세운 빌보드 정상에 오른 최고령 뮤지션의 기록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60년대 정상의 자리에서 비틀즈로 인해 깊은 나락으로 빠져야했던 베넷의 이야기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되는 뉴스라 곁들여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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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토니 베넷

 

‘베넷의 새로운 듀엣 파트너, 다이애나 크롤’

올해 92살이 된 베넷은 새로운 프로젝트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이번 새 앨범은 미국 현대음악의 거장 조지 거쉰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재즈 팬들에게는 ‘Rhapsody In Blue’와 ‘Porgy And Bess’ 그리고 ’S Wonderful’ ‘My One And Only’ ‘I Got A Rhythm’ ‘I've Got A Crush On You’ 등의 곡으로 익숙한 작곡가이다. 앨범은 버브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는데 그의 아들이자 매니저인 대니 베넷이 2017년도부터 버브 레이블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된 과정으로 보인다. (다이애나 크롤 또한 현재 버브 레이블 소속이기도 하다) 

 

베넷은 거쉰의 곡을 재해석하는데 있어 듀엣 형식을 택했고 파트너로 여성 재즈 보컬계의 중견 베테랑인 다이애나 크롤을 맞이해 작업을 함께 했다. 그녀는 일전에 베넷과 듀엣 곡을 불렀던 바 있고 그녀의 남편인 엘비스 코스텔로는 베넷의 MTV 언플러그드 라이브에서 함께 노래한 적도 있어 여러모로 서로 친분 관계를 이미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베넷의 전작 <The Silver Lining>에서 멋진 반주를 맡았던 빌 샬랩 트리오가 다시 한번 반주를 위해 소환되었다. 최근 임펄스 레이블에서 아주 인상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샬랩 트리오는 재즈의 기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몇 안되는 팀으로 본작에서도 두 보컬을 돋보이게 하는 한편 물흐르듯 유연한 연주로 전체의 매끄러운 진행을 돕는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베넷이 크롤과 앨범 작업을 한다고 해서 크롤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렇게 하진 않았다. 아마도 이는 두 사람의 보컬 호흡에 보다 집중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결과적으로는 보컬과 연주 부분 모두 안정감이 배가되어 매끄러우면서도 부담 없는 감상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노래를 하며 일찍이 성공과 좌절을 함께 경험했으나 결국 다시 노래를 통해 딛고 일어선 토니 베넷. 혹자는 그의 듀엣 시리즈가 너무 남발되고 이벤트로 지속되는 데에 우려를 표하지만 함께 노래함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이를 공감하고자 하는 듀엣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그리 나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반백세에 가까운 베넷이 누리고자 하는 것은 말년의 인기와 부귀영화라기보다는 노래를 통한 세대 공감이며 오랜 스탠더드의 매력과 가치를 후대에 계속 알리려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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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토니 베넷은 자신이 스탠더드 곡들만을 선택해 노래하고 앨범으로 만드는 이유에 대해 지난 2010년도 미국의 어느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바 있다.

 

‘나는 대형메이저 음반사를 위해 지금 유행하는 곡들을 노래하거나, 최근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난 나쁘게 쓰여진 곡들을 결코 부르지 않는다. 1920년~30년대는 음악계가 가히 예술적 르네상스 시대라고 말할 만 했다. 콜 포터, 자니 머서를 비롯한 당시의 작곡가들은 최고의 곡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런 곡들이야말로 진정한 고전이며 결국 싸구려 엔터테인먼트와는 다르게 취급되게 된다.  

 

I'm not staying contemporary for the big record companies, I don't follow the latest fashions. I never sing a song that's badly written. In the 1920s and '30s, there was a renaissance in music that was the equivalent of the artistic Renaissance. Cole Porter, Johnny Mercer and others just created the best songs that had ever been written. These are classics, and finally they're not being treated as light entertainment. This is classical music.   

 

위의 명제대로 그는 자신의 주관과 신념을 평생 동안 지켜온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명 스탠더드 작곡가들의 작품들로 이뤄진 송북 앨범이 넘쳐나며 심지어 그렇게 울궈먹다시피했던 듀엣 시리즈에서조차도 흔한 팝 넘버 하나 고르지 않고 철저하리만큼 스탠더드 넘버에 국한된 선곡으로 진행 되었던 것이다. 

 

이번 다이애나 크롤과의 앨범, 그리고 바로 전 빌 샬랩과의 협연앨범에서 각각 조지 거쉰, 제롬 컨같은 스탠더드 넘버 작곡가들의 송북이 작품의 컨셉이 된 것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이유다. 

 

-  토니 베넷에 관한 재미난 사실 3  -

 

*1975년에 베넷은 어릴 적 꿈 중 하나였던 화가로도 화단에 입문한바 있으며 지금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갖고 있다. 

 

* 프랑크 시나트라에게 ‘My Way’가 있다면 베넷에게는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가 불후의 명곡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곡은 1954년에 다른 가수에 의해 먼저 불려 졌으나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베넷은 1962년 샌프란시스코의 페어몬트 호텔에 출연했을 때 당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감독을 맡고 있던 랄프 샤론의 권유로 이 노래를 부르게 됐고 기대 이상의 반응에 힘입어 아예 음반으로 취입,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 곡의 성공으로 베넷은 카네기홀과 백악관에서 공연하였으며 63년 그래미어워즈에서 ‘Best Solo Vocal Performance, Male’ ‘Record Of The Year' 등을 수상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그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할만 하다. 

 

*토니 베넷은 지금까지 숱한 팝 가수들과 함께 노래해 왔지만 놀랍게도 단 한번도 기존의 동시대 유행 팝 곡들을 부르지 않았다. 그와 함께 한 모든 가수들은 다 예전 스탠더드 넘버를 불렀으며,  그건 전적으로 토니 베넷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자신의 앨범에서 부른 곡들중 스탠더드 넘버가 아닌 곡은 캐럴을 제외하고는 빌리 조엘의 ‘New York State of Mind’가 유일하다. 토니 베넷은 이 곡을 스탠더드 넘버에 버금가는, 지금 시대의 스탠더드 넘버이며 무척이나 훌륭한 곡이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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