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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편집장의 재즈덩크

‘Easy Come, Easy Go’ 라는 서양의 격언이 말해주듯, 뭐든지 쉽게 얻어지는 것들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나 손에 닿을 것 같지 않던 ‘재즈’라는 음악이 조금씩 귀에 들리고 리듬을 타게 되는 순간, 즐거움과 희열은 여느 팝 음악들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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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Larry Grenadier (래리 그레나디어)

당대 최고의 재즈베이시스트가 만들어낸 더블베이스의 진정한 미학!

 
INTRO MM JAZZ 김희준 편집장의 재즈덩크

 

재즈는 결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요소가 무척이나 많은 음악입니다. 게다가 그 안에 수많은 하위 장르들은 또 무엇이며, 왜 거장들이라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이 음반들을 많이 발표했는지...단지 몇십장 정도의 작품, 앨범만으로 얼추 이해가 되고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재즈는 이를 결코 허락하지 않죠. 그래서 대중들과의 거리가 이토록 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Easy Come, Easy Go’ 라는 서양의 격언이 말해주듯, 뭐든지 쉽게 얻어지는 것들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나 손에 닿을 것 같지 않던 ‘재즈’라는 음악이 조금씩 귀에 들리고 리듬을 타게 되는 순간, 즐거움과 희열은 여느 팝 음악들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자! 이제부터 한달에 한번씩 여러분들을 재즈의 신세계로 데려가 볼 참입니다. 우선 기존의 잡지에서 다루어지는 아티스트 소개와 작품이야기를 기본으로 하되, 때론 화제가 되는 이슈거리에 대한 논의와 에세이 형태의 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 칼럼의 형식도 시도해볼 참이며, 또한 공연후기기사까지 소재와 형식의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하게 가져와 한번 풀어 나가볼 참입니다.

비록 이 음악이 어렵고 광범위하다지만 최대한 쉽고도 명쾌하게, 마치 NBA 농구선수들의 시원시원한 덩크슛을 보는 것처럼 한번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럼 출발해볼까요?

 


 

JAZZ DUNK #11 당대 최고의 재즈베이시스트가 만들어낸 더블베이스의 진정한 미학!

 

Larry Grenadier, 지금껏 쌓아온 음악유산
더블베이스 하나에 투영해내다

 

 

현재 재즈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베이시스트 중 한명인 래리 그레나디어가 얼마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일단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 그는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의 오랜 파트너로 명성을 쌓았으며, 그 외에도 마크 터너와의 프로젝트, 팻 메시니와의 트리오, 피터 번스틴, 빌 스튜어트, 조슈아 레드맨등 여러 스타급 재즈뮤지션들의 리더작에서 훌륭한 서포트를 해왔었기에, 언제가 되었건 자신의 리더작을 한번쯤 반드시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게 온전한 독주음반일 줄은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그의 공식 첫 리더작 <The Gleaners>는 놀랍게도 완전한 솔로 베이스로만 연주된 작품입니다. 보통은 뮤지션이 자신의 첫 리더작을 만드는데, 독주앨범을 선택하지는 않죠. 연주력의 고하를 떠나 심지어 피아니스트조차 그러지는 않는 편인데, 래리 그래나디어는 완전히 반대되는, 혹은 의표를 찌르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쌓아온 뮤지션들과의 인연으로 인해 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여러 동료를 초빙해 다양한 편성으로 올스타 세션앨범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이 앨범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전천후 세션맨에서 첫 리더로의 전환

 

재즈 팬들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이 진중하고도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베이시스트는 수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의 가장 중요한 베이스 조력자로 활약해오면서 지난 30여년간 중추적인 세션 뮤지션중 한명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재즈 거장 폴 모션,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 존 스코필드, 재즈 색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먼, 마크 터너같은 이들의 앨범에서 그의 연주는, 일반적인 서포트 역할에서 벗어나 음악전반에 걸쳐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다망한 역할을 줄곧 맡아왔었죠.

물론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훌륭한 더블베이스연주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토마스 모건같은 이들이 그와 선의의 경쟁을 펼쳐 보이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션의 영역에서 그만큼 풍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연주자는 현재 없는 것 같습니다. 그가 여러 연주자들에게서 더 중용되는 이유로 그의 단단하고도 깊이 있는 베이스 사운드, 클래시컬과 재즈를 모두 아우르는 음악적 유연함을 바탕으로, 전형적인 비밥계열의 음악에서도 탁월한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험적이면서 전위적인 뮤지션들과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폭넓은 이해와 소화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새 앨범은 그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사이드맨이 아닌, 솔로 베이스 연주자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음악적 철학과 스토리를 처음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가 성장하면서 어떻게, 언제, 왜 베이스란 악기를 시작했는지, 어떤 음악들이 그의 영감이 되어주었는지, 어떤 사람들과의 교류가 밑바탕이 되었는지 등이 음악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사실 솔로 베이스 연주를 통해 이런 스토리들이 잘 느껴지게 만드는 게 쉬운 건 아닐 겁니다. 일일이 말로서 풀어놓을 수도 없고 오직 연주와 사운드로 이를 전달해야 할테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음악을 들으면 이 뮤지션이 이야기를 직접 우리에게 풀어놓는 듯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그 이야기가 어찌나 구성지고 흥미로운지 42분 정도의 러닝타임이 금새 지나가버릴 정도에요. 하나의 악기로 사운드가 구성될 때 느껴질 법한 단조로움과 지루함이 이 작품에는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본작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네요 (그만큼 공들여 준비하고 다듬어 왔다는 반증이 될 겁니다)

 

 

본 작의 제목은 인상파 미술가 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을 말합니다. 여기에도 의미가 있는데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는 여러 훌륭한 동료 재즈 뮤지션들과 연주하고 그들의 음악을 듣고 함께 교류하면서 전해 받은, 여러 음악적 ‘이삭’들을 줍고 추수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아말감(Amalgam)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배움은 곧, 그의 음악적 여정이라는 식의 태도와 바탕이 기본 토대가 되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은 그렇게 전해받은 감흥과 영감들을 다른 악기의 도움없이 오직 자신의 베이스 하나로만 표현해낸 작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여담을 전해드리자면, 5년 전쯤 이태리 출신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엔리코 피에라눈치와의 트리오 공연을 위해 그가 드럼 제프 발라드와 함께 내한 했을때 사석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이것저것 말을 섞다가 별 생각없이 솔로 앨범을 낼 의향은 없느냐고 한번 물어봤었습니다. 그때 제프 발라드는 지금 준비 중이라고 말했는데, 래리 그레나디어는 의외로 단호하게 ‘별로 없다. 지금 연주활동과 생활에 무척 만족한다’는 식의 대답을 하더군요.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렇게 앨범이 만들어 진 것으로 보니 아마도 그 사이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같네요.

 

이쯤에서 앨범 안에 담겨진 음악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르코 연주로 시작하는 첫 곡 ‘Oceanic’은, 밑으로 깊고 무거운, 어두운 심연의 불안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표출되듯 반복되고 있지만, ‘아메리카나’적인 음악적 뉘앙스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적’ 사운드의 핵심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음악적 속내는 재즈 아르코와 피치카토를 교차하며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레이블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는 클래식과 재즈 베이스를 가장 잘 이해하는 프로듀서 중 한명이기에, 그에게 자신의 솔로 앨범을 맡기는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또, 사이드 맨과 리더의 멘탈리티는 180도 달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혼자서 말해야하는 경우는 래리 그레나디어같은 베테랑이라도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기에 이 점에서도 오랜 기간 다양한 경험을 해온 일류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겠죠.

 

 

‘Pettiford’는 그의 음악적 루트를 잘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재즈 넘버입니다. 트리오 ‘Fly’와도 종종 연주하는 곡의 솔로버전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레나디어의 피치카토 톤이 이렇게 좋았나 싶을 정도로 사운드 퀄리티가 뛰어납니다. 물론 뉴욕의 아바타 스튜디오에서 연주되고 제임스 파버라는 초일류 엔지니어에 만프레드 아이허의 메인 스튜디오에서 믹스된 사운드이니 만큼 어느 정도 가산점이 있겠지만, 그걸 염두에 두더라도 레이 브라운과 찰리 헤이든을 이어갈만한 구석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제목은 비밥시대의 베이스 레전드 오스카 페티포드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음악적 우상들인 지미 블랜튼, 레이 브라운, 찰스 밍거스, 폴 체임버스, 스콧 라파로, 데이브 홀랜드, 미로슬라브 비토우스, 에디 고메즈, 조지 므라즈, 찰리 헤이든, 마크 존슨, 존 클래이튼, 벤 스트리트, 에릭 리브스, 크리스천 맥브라이드같은 동료 및 선배에 대한 헌정으로, 더 크게는 재즈에 대한 자신의 헌정으로 보면 될법한 곡이기도 합니다.

 

타이틀곡 ‘The Gleaners’에서는 마치 미국의 현대 음악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형식으로 베이스 아르코 특유의 기품과 공허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담아온 음악적 이삭들을 뿌려준 다른 음악가들에게 짧은 감사의 표현을 하는듯한 느낌도 녹아 있습니다. 부인이자 보컬리스트 레베카 마틴의 발라드 곡 ‘Gone Like The Season Does’을 아르페지오와 멜로디를 솔로 연주로 풀어보고 있습니다. 포크와 팝 그리고 재즈적 요소의 발라드 멜로디를 해석하는 흐름에서도 별 문제가 없는 그의 폭넓은 미감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기타리스트 울프강 무스피얼과 조지 거쉰의 곡들 역시 래리 그라나디어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편곡과 연주로 앨범의 무게감을 만드는데 훌륭히 일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기 콜트레인의 곡 ‘Compassion’과 폴 모션의 곡 ‘The Owl of Cranston’의 접속 메들리는 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라 말해도 될, 래리 그레나디어의 가장 깊은 내면, 음악가로서의 본질을 들려주는, 정말이지 아주아주 멋진 곡입니다. 두 곡은 사실 전혀 다른 문맥과 배경, 정황을 지녀야하지만 앨범의 가장 긴 곡으로 잘 연결해서 하나의 표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본 작의 핵심중 하나인 ‘Bagatelle 1,2’ 는 래리 그레나디어의 전위적 색채를 잘 느낄 수 있는 지점입니다. ECM레이블을 통해 베이스 독주앨범을 발표한 선배들의 자취를 이어간다고 말할 수 있는 이 곡은 뚜렷한 테마 없이 추상적인 선율이 언뜻 산만하게 이어져나갑니다. 첫 번째 파트에선 보우잉으로 진행되며 두 번째 파트에선 피치카토로만 연주되는데 같은 제목을 띠고 있지만 곡의 정서는 사뭇 다르죠. 두터우면서도 어쿠스틱 베이스 특유의 피치카토가 공간을 꽉 채워내는 것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앨범 전체의 안정적인 사운드와 둥글고 따듯하지만, 명확하고 선명하면서 강한 어택을 지닌 베이스 톤, 아르코와 피치카토의 적절한 음악 형식적 배치(이 부분에서는 확실히 프로듀서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등이 이 앨범의 음악적 만족도와 청취감을 매우 높여주고 있습니다.

 

 

뒤늦게 베이스 솔로 앨범 만든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 래리 그레나디어는 협연자로서 오랫동안 이어온 작업들에 커다란 만족감을 갖고 있었기에 굳이 자신의 리더작을 따로 내려고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과의 연주에서도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아이덴디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네요(이점은 필자가 이전 내한 때 직접 전해들은 바이기도 하고, 이 앨범 라이너노트에서도 그런 뉘앙스의 글이 나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심경의 변화가 생겼던 걸까요? 그에게 베이스 솔로 앨범 제작을 제안한 것은 바로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였다고 합니다. 그 스스로가 과거 콘트라베이스 주자이기도 하고, 재즈 베이스 레전드 폴 체임버스에게도 음악적 영감을 자주 받았었다고 말한 적도 있었죠.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레이블에서는 지금까지 좋은 베이스 솔로 앨범들이 은근히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만프레드 아이허는 이 더블베이스가 가진 사운드 고유의 울림에 대해 무척이나 잘 이해하고 이미 ECM을 통해 다수의 베이스 독주 앨범을 만들어내었던 경험도 갖고 있기에 래리 그레다니어에게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었고, 자신의 리더앨범 발표에 미온적이었던 그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래리 그레나디어에 따르면 만프레드 아이허로 인해 앨범 제작의 마지막 단계인 믹싱과 편집이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점을 두루 고려해봤을 때 아무래도 이 앨범이 이처럼 훌륭히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공은 연주자인 래리 그레나디어만큼이나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에게도 주어져야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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