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 깊이 있는 대화, 오래된 관계에서만 가능하죠.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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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재럿 유러피안 쿼텟의 명반 <Belonging>
오마주 앨범 발표한 당대 최고의 색소포니스트/밴드리더
Branford Marsalis
깊이 있는 대화, 오래된 관계에서만 가능하죠.
커리어 첫 블루노트 레이블과의 협업, 거기에다 선배 뮤지션인 키스 재럿의 과거 대표작을 그대로 재해석한 신작까지 발표하며 오랜만에 재즈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거물 색소포니스트 브랜포드 마살리스. 한국에선 여전히 스팅의 백밴드 멤버이자 영화 Mo’Better Blues 의 타이틀 곡의 주인공으로 다수의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으나 이는 극히 단편적인 일부일 뿐, 그의 진정한 진가는 재즈 뮤지션으로서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들에 반영되어 있다. 이전 작품들에서 알수 있듯, 어느 누구와 비교선상에 오르더라도 꿀리지 않을 음악성과 연주력을 지니고 있는 그가 스스럼없이 자신의 우상에 대한 파격적인 헌정작업을 시도했다.
해당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순서로 재해석한, 의외의 작업, 그러나 그는 덤덤하게, 그저 그 뮤지션들의 음악이 너무 좋고 하고 싶어서 했을 뿐이라며 스스럼 없이 이야기한다. 이 정도의 거물급 위치에 올라선 뮤지션임에도 그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었으며 순수한 태도로 음악을 바라보고 있음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역시 창작을 하는 예술가에게 나이는 하등 의미가 없다. 얼마나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구체화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 인터뷰 /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Jack Smith, Eric Ryan Anderson, Blue Note Rec.Derek Clark

이번에 새로이 발매된 <Belonging>은 놀랍게도 앨범 전곡이 이전 키스 재럿의 1974년도 명작 <Belonging>과 완전히 동일한 곡을 담은 작품입니다. 심지어 트랙순서도 똑같죠. 물론 연주의 내용에서 다른 부분은 분명 존재하지만 재즈사에서 이렇게 앨범을 만들어낸 경우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2002년 당신이 발표한 <Footsteps of Our Father>에서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을 재연한 적이 있긴 한데 그 앨범에는 소니 롤린스와 존 루이스, 오넷 콜먼의 곡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죠. 유명한 앨범 전체를 고스란히 리메이크및 재해석하는 게 한편으로는 위험부담이 있을텐데 이런 방식과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들을 이야기해주신다면?
그런데 사실, 위험이나 부담은 전혀 없었습니다. 누군가 군에 입대해 전쟁에 참여하여 총에 맞거나, 고층 빌딩의 유리창을 청소하는 것은 명백히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건 그저 음악일 뿐입니다. 저의 행보와 작품이 하나의 완성된 결과로 보이겠지만 매번 끊임없이 달라지고 새로운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죠. 저는 지금도 끊임없이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 중 한명이고, 그건 제 동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음악적으로 가슴 깊이 존경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진지한 시선을 담아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죠. 또 우리가 갖고 공유하고 있는 음악에 담겨져 있는 깊은 문화적 유대감이 우리 자신처럼 들리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키스 재럿의 <Belonging>에 담긴 곡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에 대해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또한 10대 시절 당신이 재즈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한 가장 큰 매력과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재럿의 연주이상으로 비범한 작곡 능력이 빛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 십대 시절에는 재즈 팬이 아니었습니다. 뭐 몇 가지는 좋아하긴 했지만, 크게 열정적으로 이 음악에 깊게 빠져 있지는 않았죠. 제가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버클리 음대 재학 시절, 동생 윈튼이 거장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와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나서 그때부터 재즈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생전 블레이키의 음반 <Moanin‘>을 가지고 계셨고, 저는 오랫동안 앨범 커버를 봐왔지만, 한 번도 그 음반을 들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 이후부터 재즈를 듣고 이해하려고 조금씩 노력했고 재즈 뮤지션으로 성장해나갔죠. 키스 재럿이 훌륭한 작곡가라는 점에 저도 동의합니다. 다리우스 미요가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 키스 재럿의 모든 곡들은 "너무 중독성, 전염성이 강해서 모든 사람이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가져가고 싶어 합니다." 제가 재럿의 음악을 선택한 주요한 이유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키스 재럿이 유럽 출신의 연주자들을 대동해 만든 첫번때 쿼텟 음반이자 그의 커리어 대표작중 하나가 된 1974년 녹음, 발매작 <Belonging>
오래 전 당신이 시애틀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떠난 좋은 음악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 동부 지역의 뮤지션들 다수는 새롭고 혁신적인 것처럼 보이는 재즈에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중에는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들도 있지만 때론 머리로만 만든것 같은 음악도 분명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번 앨범 <Belonging>은 그들에게 마치 뒤통수를 한대 치는 것 같은 작품이 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요.
아마도 각각의 음악가들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제가 존경하는 음악가들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다른 음악가들은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고 과시합니다. 저는 이 음반이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믿을 만큼 자만심이 강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의 음악적 강점이 수학(화성)이라면, 애초에 당신을 유명하게 만든 것에 계속 집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강점은 음악이고, 이게 청중과 소통 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의 쿼텟 멤버들은 드러머인 저스틴 폴크너를 제외하면 이제 거의 30년 정도 되어갑니다. 일정한 멤버들과 오래 팀워크를 이뤄냈을때 성취할 수 있는 음악적 긴밀함과 상호 시너지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이 있을 거 같아요.
이를테면 이런거죠. 잘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 진지하고 감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드물고 실제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의상 의례히 나누는 대화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할때 필요한 것일 뿐이죠. 우리들 네 명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고 오랫동안 함께 해오면서 음악을 통해 깊은 감정적 수준의 대화를 나눠왔습니다. 평범한 대화와 진솔하고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의 차이를 이해하신다면, 저희 네명이 함께 하는 음악의 본질 또한 거기에서 비롯된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당신의 커리어 처음으로 블루노트 레이블과 당신이 설립한 마살리스 뮤직이 파트너쉽을 맺었습니다. 블루 노트와 함께 하는 것이 당신에게 실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이전 소니에서와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언제나 재즈를 최우선으로 하는 진짜 재즈 레이블에 속해 있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에요. 소니 레이블 또한 저에게 정말 잘해줬지만, 그들의 재원 대부분은 소니에게 가장 큰 재정적 이익을 안겨주는 음악이나 아티스트에게 투자되곤 했죠. 하지만 이건 사업이 우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전혀 기분 상하지 않았어요. 반면 블루노트는 재즈 뮤지션들에게 더욱 더 적극적인 기회를 열어주기에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워요. 제가 어렸을 때 이후로 이렇게 많은 인터뷰에 참여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 모든 준비와 진행을 블루노트가 맡아서 해주었죠. 그 점이 정말 제 기분을 새롭게 만들어줍니다.

일반적으로 재즈 뮤지션들의 경우 다양한 사이드 맨및 세션 경험들이 한 아티스트의 음악적 경험과 성장에 적잖은 도움을 줄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자신의 영역이 만들어진다면 굳이 그걸 계속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는 걸 당신의 커리어를 보며 깨달을 수 있는데, 이에 관한 당신의 기준 혹은 철학이 있을까요?
사실 모든 사이드맨 활동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젊은 시절부터 아트 블레이키, 마일스 데이비스, 월터 비숍, 월터 데이비스 주니어, 허비 행콕, 론 카터, 토니 윌리암스, 라이오넬 햄튼 등과 함께 연주한 경험은 음악가로서 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 부족한 부분을 알아차리고 지적해 주었으며, 개선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또한, 리로이 캘린더, 버디 테이트, 레드 할로웨이, 디지 길레스피, 스탠 게츠 등 다른 음악가들도 제 연주를 듣고 난 뒤 대화를 통해 저의 부족한 점들을 일깨워주고 실질적으로 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정도 선배들과의 협연은, 젊은 재즈 뮤지션이라면 커리어중 반드시 경험할 필요가 있죠.
지금까지 당신은 코어 재즈 뮤지션으로서 그 영역을 늘 유지해오면서 동시에 스팅이나 그레이트풀 데드 팝, 록 뮤지션들과의 교류도 80~90년대에 꾸준히 시도해왔죠. 벅샷 르퐁크(Buckshot LeFonque) 같은 프로젝트 팀을 만든 것도 그 연장선이 아닌가 생각되며, 특히 스팅과의 협연은 10년 정도 꾸준히 지속이 되었습니다. 이런 작업들이 실제 당신의 커리어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음악적으로 새로운 자극이나 영감을 받은 게 있었는지? 재즈 뮤지션으로서 이들과의 협연이 영향을 끼친게 있다면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음악에 관심이 생기고 이끌렸던 건 팝음악을 통해서 이뤄졌죠. 그때 그들과 함께 한 공연들은, 제가 음악이나 가사의 방향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없었기에 실질적인 협업은 아니었지만, 첫사랑으로의 회귀였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저의 재즈 연주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그 영향은 수치화할 수 없습니다. 전 고등학교 때 셰익스피어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에 제가 사용하는 단어 사용이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제 말이 정확히 어떻게, 얼마나 바뀌었는지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랬습니다. 정보가 점진적으로 축적되면서 시각 및 표현들이 바뀌는 거죠. 팝 뮤지션들과의 협연도 그런 것과 비슷합니다.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DJ 프리미어와 함께 의기투합해 만든 재즈-힙합, R&B 프로젝트 벅샷 르퐁크(Buckshot LeFonque). 지금 시대의 재즈 힙합의 시초격이라 할수 있는 팀이다.
당신이 오랫동안 이끌고 있는 이 쿼텟 이외에 앞으로 새로운 편성 시도를 하고 싶은게 있으신지? 혹은 다른 뮤지션과의 협연이 계획된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와 쿼텟 멤버들은 3년 전 헝가리의 포크 뮤지션들 7명과 함께 한 새로운 협연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 녹음은 작년 말 <Branford Maralis & Fridends> 라는 타이틀로 발매가 되었는데, 핀란드 출신의 유명 클래식 지휘자인 에사 페카 살로넨(Esa Pekka Salonen)이 당시 우리의 연주들 듣고 나서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제서야 난 당신들이 일반적인 재즈 밴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들은 마치 실내악 그룹 같군요.
이렇게 훌륭한 음악가분이 이런 말을 전할만큼 우리의 음악은 여전히 다채롭고 인상적인데 왜 굳이 그 경험을 다른 걸로 바꾸고 싶을까요. 롤링 스톤즈나 비틀즈, 아니면 다른 팝 밴드에게서 그런 걸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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