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음악 정체성에 대한 과감하고도 냉철한 통찰 [Three Quartets] - 칙 코리아 (Chick Corea)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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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k Corea <Three Quartets> Stretch/1981
Quartet No. 2
3 Part 1 (Dedicated To Duke Ellington)
4 Part 2 (Dedicated To John Coltrane)
Previously Unreleased 1992 Reissue
Bass – Eddie Gomez
Tenor Saxophone – Michael Brecker
Piano, Drums(8 Track), Composer, Arranger, Producer – Chick Corea
Recorded By – Bernie Kirsh
Recorded By [Assistant] – Duncan Aldrich (tracks: 1 to 4), Paul Dieter (tracks: 5 to 8)
Remastered By – Stephen Marcussen
Engineer [Mastering Engineer] – Bernie Grundman
Recorded At – Mad Hatter Studios
Mixed At – Mad Hatter Studios
Mixed At – Groove Masters
Recorded and mixed in January and February 1981
자신의 음악 정체성에 대한 과감하고도 냉철한 통찰
글/재즈 기타리스트 정수욱
재즈 록 퓨전, 록 퓨전, 재즈 퓨전 혹은 단순히 퓨전이라고도 불리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의 이 하위 장르는 처음부터 족보 없는 짬뽕 음악처럼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단 한 명의 전지전능한 창시자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법이지만, 재즈 록 퓨전의 출발 및 확산은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의 <In a Silent Way>와 <Bitches Brew>가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점에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이 음악은 단순히 악기를 일렉트릭으로 바꾼 것에 그치지 않고, 비밥을 비롯한 모던 재즈의 어법—쿨, 하드 밥, 프리 재즈까지—을 바탕으로 록과 월드뮤직의 스타일을 참조하며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즉, 퓨전은 사실 악기가 달라지긴 했으나 태생부터 ‘정통’ 재즈의 토대 위에 세워졌던 셈입니다.
그러나 곧 시장의 거대한 포식자들, 즉 주류 음반사들과 미국 라디오 방송의 상업적 논리를 피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미 당시 메인스트림 팝/록 시장에서 멀어져 작은 클럽에서 안빈낙도하던 재즈계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퓨전’이라는 이름 아래 검증되지 않은 연주 음악들까지 무분별하게 포함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장르의 정체성은 점차 희석되며, 소비자에게 무작위적으로 공급되었습니다. 이 ‘퓨전’의 모호함은 곧 하나의 음악 마케팅 용어로 소비되었고, ‘스무드’하게 포장된 채 가볍고 휘발성 강한 콘텐츠 소비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오늘날 SNS를 통해 유통되는 수많은 음악들의 소비 양태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그 결과, 점점 ‘진짜 재즈 퓨전’을 찾기도 힘든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방향을 잃은 흐름 속에서도 적잖은 재즈 뮤지션들은 스스로의 본질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복원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퓨전’이라는 이름 아래 섞여버린 자기 음악의 뿌리를 다시 찾고자 했고, 그 결과 재즈의 본류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점차 늘어나게 됩니다.
앨범에 참여한 쿼텟 라인업(시계방향으로) 마이클 브레커, 에디 고메즈, 스티브 갯, 칙 코리아
1970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문제작이자 전환점인 앨범 <Bitches Brew> 세션에 참여한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는 이후 자신의 퓨전 그룹 리턴투포에버(ReturntoForever)를 이끌며 1970년대 퓨전 재즈의 최전선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 무분별한 ‘퓨전’이라는 음악의 공모자였던 걸까, 아니면 피해자였던 걸까?”
그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칙 코리아는 마일스의 일렉트릭 설파를 잠시 내려두고 자신이 처음 재즈를 시작할 때의 음악적 본령인 어쿠스틱 재즈로 귀환합니다. 그리고 1981년,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가 되는 앨범 <Three Quartets>를 발표하게 되죠. 언뜻 보기에 단순한 스트레이트 어헤드 포스트 밥 형식의 어쿠스틱 앨범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그의 음악적 핵심과 개성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편성과 사운드, 작곡적 태도 전반에 걸쳐 이 앨범은 칙 코리아 자신의 음악 세계를 ‘언플러그드’ 버전으로 완벽히 정리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의 예술적 정체성의 핵심(Core)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으로, 1968년의 트리오 명반 <Now He Sings, Now He Sobs>에 이어 두 번째 음악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명작이죠.
칙 코리아는 과거 이 앨범을 통해 ‘재즈 사중주’ 라는 구성으로 클래식 음악의 ‘사중주 형식’ 을 재즈 악기들로 구현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드럼, 베이스, 피아노, 색소폰이라는 재즈의 표준 편성을 활용하되, 전통적인 멜로디-솔로-멜로디 형식보다는 훨씬 더 ‘작곡된’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특히 푸가적 인상, 다양한 화성적 텍스처, 섹션 단위의 서사적 전개 등이 담겨져 있어 이 앨범이 단순한 포스트 밥을 넘어선 여러 가지 음악적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도는 1950년대 군터 쉴러(Gunther Schuller)나 조지 러셀(George Russell)이 주창한 제3의 흐름(Third Stream)의 실내악적 편성을 통한 현대적 확장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넘나들며 양자의 언어를 통합한, ‘확장된 원작 재즈 작곡’(Extended Original Jazz Composition)의 계보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30대 초반 젊은 시절의 마이클 브레커
일반적으로 재즈의 형식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크게 분류해볼 수 있습니다.
스탠더드(Standard) : 원래는 20세기 초기 팝 히트곡이나 브로드웨이 뮤지컬 넘버였지만,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 자주 연주되며 재즈 어법으로 재해석된 곡들입니다. 작곡자가 반드시 재즈 뮤지션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 Autumn Leaves, Stella by Starlight, It Could Happen to You 등.
재즈 스탠더드(Jazz Standard) : 찰리 파커, 텔로니어스 멍크, 마일스 데이비스, 베니 골슨, 태드 대머론, 찰스 밍거스등 재즈 뮤지션들이 직접 작곡한 곡들로, 연주곡이 대부분인 블로잉을 위한 기반이 되며 재즈 어법 안에서 널리 연주되는 레퍼토리입니다. 예: Confirmation , Blue Bossa, So What, Goodbye Pork Pie Hat 등.
재즈 컴포지션 (Jazz Composition): 즉흥 연주를 위한 단순한 ‘헤드’(head)를 넘어선 보다 치밀하고 구조화된 형태의 작품들입니다. 듀크 엘링턴의 대편성 작품들, 칼라 블레이의 관현악적 구성, 웨더 리포트나 칙 코리아 일렉트릭 밴드의 서사적 퓨전 곡들, 그리고 Three Quartets 와 같은 앨범의 수록곡들이 이에 속합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재즈는 훌륭한 작곡보다 즉흥연주에 그 중심을 두고 있으며, 이 '작곡된' 요소와 '즉흥' 사이에 얼마나 균형이 잘 잡혀 있느냐에 따라 곡의 형식적 특수성도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비밥 이후 재즈는 솔로 주자의 즉흥성을 중심축으로 음악성을 유지해왔으며, 여기에 가장 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때문에 곡의 테마 멜로디(헤드)는 수려한 포장지에 불과하고, 진짜 내용물은 솔로 즉흥에서 완성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칙 코리아는 이미 마일스 퓨전 밴드 세션 이후부터 이러한 구조적 제약을 뛰어넘는 다양한 대편성 작품들과 리턴투포에버를 위시한 퓨전 그룹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꾸준히 실험해왔습니다. 이 <Three Quartets> 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걸출한 수작인 셈이죠.
수록곡에 관하여
앨범의 첫 곡 Quartet No. 1 은 10분이 넘는 곡으로, 6/4 계열 리듬 위에 짜인 밀도 높은 보이싱과 멜로딕한 베이스 섹션 라인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내 등장하는 테너 색소폰 솔로는 재즈의 정체성을 뚜렷이 지키며 전개됩니다. 이 곡에서 마이클 브레커는 단순한 ‘퓨전’ 연주자가 아니라, 테크닉을 넘어선 재즈사의 진정한 테너 계보 후계자로 등극하는 기막힌 솔로 연주를 들려줍니다. 확실히 존 콜트레인의 언어를 물려받았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시간 감각과 공간 인식으로 번역할 줄 아는 연주자였음을 이 곡의 솔로에서 다시금 느끼게 해줍니다.
이 앨범에서 마이클 브레커의 색소폰은 단순한 솔로 연주가 아니라 서사 구조의 중요한 일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기된 주제를 반복하거나 장식하는 것 보다, 모티브를 전개하는 식의 솔로 접근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 번째 트랙 Quartet No. 2 의 두 번째 파트에서 그는 콜트레인의 명상적 에너지를 환기시키되, 이를 압축된 톤과 정제된 어휘로 멋지게 재구성합니다.
한편 원래 LP 수록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Quartet No. 1 과 Quartet No. 3 은 A면에, Quartet No. 2 의 Part 1과 Part 2는 각각 B면에 나뉘어 실렸습니다. 특히 Quartet No. 2에서는 악기 간의 상호작용이 훨씬 밀도 있게 얽혀 있으며, 멜로디와 리듬의 분해와 재구성이 반복적으로 전개됩니다. Quartet No. 3 에서는 칙 코리아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가 압도적인 솔로를 선보입니다. 그는 1966년부터 약 11년간 빌 에번스 트리오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내면적이고 서정적인, 그러면서 역동적인 솔로와 베이스 컴핑으로 재즈 베이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입니다. 에디 고메즈의 연주는 늘 선을 그리듯 유려하고, 특정 리듬 패턴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고도로 역동적인 흐름을 유지합니다.
또한 Quartet No. 2 는 헌정의 성격을 가진 곡입니다. 첫 번째 파트는 듀크 엘링턴에게, 두 번째 파트는 존 콜트레인에게 바쳐졌습니다. 그러나 이 두 곡은 오마주에만 그치지 않고, 각 인물이 음악에서 구현해낸 미학과 철학을 칙 코리아가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해낸, 일종의 '재해석된 헌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섬세한 하모니와 미묘한 타이밍의 듀크 엘링턴의 파트와 콜트레인에게 바쳐진 두 번째 파트에서는 Impressions 같은 콜트레인의 간판 트랙을 환기시키는 밀도 높은 색소폰의 진행이 중심을 이룹니다. 여기에 드러머 스티브 갯은 여간한 팝/록 팬들도 잘 알만큼 수천 곡의 세션 연주자로 참여한 ‘세기의 리듬’이라 불릴 만한 인물로, 폴 사이먼, 에릭 클랩튼, 제임스 테일러 등 팝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재즈 연주로는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앨범에서 그는 전통적인 재즈 드러밍을 넘어서, 고도의 인터플레이를 통해 전체 음악 서사 구성에 기여합니다.
스티브 갯과 칙 코리아
이 앨범은 1992년, 원래 수록되지 않았던 보너스 트랙들을 포함해 CD로 재발매 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트랙이자 유일하게 다른 뮤지션의 곡을 담아낸 Confirmation 에서는 보기 드물게 칙 코리아가 직접 드럼을 연주하며, 마이클 브레커의 강렬한 솔로에 소위 ‘맞짱’을 뜨는 듯한 기세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1986년 선보인 칙 코리아 일렉트릭 밴드(셀프 타이틀로 시작하는)의 첫 번째 음악들은 바로 이 <Three Quartets> 의 작곡적 구조와 사운드 정체성을 그 당시의 일렉트릭 퓨전으로 스타일화한 형태로 만들어낸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이 팀의 유기적이고 타이트하며 유니즌 형태로 짜여진 섹션 구성은 상대적으로 솔로 파트의 비중을 줄여 놓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동시대 라이트한 퓨전 음악들에 비해 재즈의 본질을 잘 지켜나갔습니다. 이후 칙 코리아 일렉트릭 밴드는 1991년 발매작 <Beneath the Mask>를 마지막으로 잠시 휴지기를 가진 뒤 다시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정체성의 출발 및 기본 핵심에는 언제나 이 앨범 <Three Quartets> 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봐도 결코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리턴투포에버와 일렉트릭 밴드의 음악적 전환의 과정에 놓여있는 작품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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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앨범에 참여한 쿼텟 라인업(시계방향으로) 마이클 브레커, 에디 고메즈, 스티브 갯, 칙 코리아.jpg (File Size: 450.2KB/Download: 0)
- 5 좌로부터) 칙 코리아, 스티브 갯, 저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색소포니스트가 마이클 브레커.jpg (File Size: 43.2KB/Download: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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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젊은 시절 머리가 풍성하던 30대 초반의 마이클 브레커 모습.jpg (File Size: 137.4KB/Downloa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