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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첫 등단한 이후 40년 이상 시와 소설을 두루 써오고 있는 장정일 작가가 음악 이야기가 담긴 종류의 여러장르 책들을 직접 읽고서 쓴 서평, 리뷰 혹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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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 - 김홍재, 박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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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

김홍재, 박성미 공저 | 김영사 | 20001031| 227 P

 

 

2000318일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홀에서는 일본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155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의 지휘자는 조선인이었다. 일본 클래식 악단에서 정기연주회에 외부 지휘자를 데려오는 경우는 서양인에 국한되어 있다. 그런데 동양인, 그것도 해외에서 지휘를 배우거나 해외에서 이름을 떨친 유명인도 아닌 조선인 지휘자에게 일본 필의 정기 연주회를 맡긴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김홍재.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한다. 그의 지휘를 본 적도 없다. 간간이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린 적은 있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할 만큼은 아니다. 아사히 신문이나 마이니치 신문에는 거의 매달 그의 연주회 소식이 실리고 인터뷰 기사가 실린다. 방송에서도 그의 연주회 소식을 듣거나 공연 장면, 인터뷰를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인은 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에 대해 거의 열광할 만큼 관심이 높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서울에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가 조선적(朝鮮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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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미의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김영사,2000)는 조선인 최초로 일본의 여러 유명 교향악단의 포디움에 선 지휘자 김홍재에 대한 평전이다. 1954년 일본 효고현 고베에서 출생한 그는 민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도호가꾸엔대학(도호대학) 음대에 입학했다. 지휘를 전공으로 선택한 그는 2학년 때부터 같은 대학을 나온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에게 지휘법을 교습을 받았다. 김홍재가 지휘자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된 것은 그가 고등학교 때 세이지의 지휘를 보고서였으니, 오자와는 김홍재에게 큰 영향을 준 첫 번째 음악 스승이다.

 

중국에서 개업한 치과의사였던 세이지의 아버지는 일본이 패망하자 재산을 모두 잃었고, 귀국한 다음에는 미군정으로부터 취직이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소년기를 맞이한 세이지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의 많은 예술인들처럼 세이지도 평탄하게 지휘자가 된 사람은 아니다. 원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으나 축구를 하다가 손가락 두 개가 부러지면서 포기해야 했던 오자와는 수업료가 없어서 일본의 제1세대 지휘자이면서 도호음대를 창립한 사이토 히데오의 집에서 도제로 지휘를 배웠다. 세이지는 자신의 힘든 학창 시절과 성취욕 높은 기질을 제자인 김홍재에게서 발견하고, 그를 특별히 아꼈다. 세이지는 일본의 음악가들이 감각과 기술에만 의지한다면서, 제자에게 지휘는 외형이 아니라 내면이라면서 늘 이제 테크닉은 되었으니 마음으로 지휘하라고 가르쳤다.

 

음대를 졸업한 김홍재는 대학 안의 도호 오케스트라 연구생으로 있으면서, 일본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인 도쿄시티 필의 부지휘자로 오케스트라 전체를 연습시키는 직책을 맡았다. 그러던 19783월 도쿄시티 필의 특별 연주회를 지휘하면서 지휘자로 정식 데뷔를 했다. 재일동포 중에 피아니스트나 성악가는 간혹 있기도 했으나, 일본 클래식 음악계에 조선인 지휘자는 처음이었다. 이때 김홍재는 최성환의 <아리랑>, 김영규의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윤충남의 피아노 협주곡 <조선은 하나다>, 김영규김윤봉의 교향곡 <피바다>와 같은 조선의 관현악곡만으로 연주곡을 채웠다. “지휘자에게도 데뷔 무대였지만 연주된 조선 관현악곡도 일본 사회에서는 처음이었다. 모두 초연인 셈이다. 한 연주회에서 모든 곡이 전부 초연인 연주회는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데뷔 무대를 가진 김홍재는 19799, 3년마다 열리는 도쿄 국제 지휘콩쿠르 본선에서 2등을 차지하면서 일본 클래식계의 화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시상 전례가 없었던 특별상을 함께 수상했기 때문이다. 1등을 할 실력인데 2등밖에 주지 못해 아쉬워서 주기에는 너무 권위가 큰 상이었다. 1위를 한 사람에는 부상으로 해외 유학 경비가 주어지는데. 일본으로 귀화를 하지 않은 그에게는 해외 유학이 쉽지 않았다. 그러니 그 돈을 썩히느니 해외 유학을 갈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게 더 좋지 않은가? 선의로 해석하면 그렇다.

 

조선적을 북한 국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조선적은 국적이 아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일본 내에 거주하는 모든 조선인에게 조선적이라는 분류명을 주었는데, 이것은 국적란에 써 있는 조선 사람이라는 표시이지 국적이 아니다. 일본 내 재일동포 사회에 한국적(韓國籍)이 생겨난 것은 1965년 한일협정 이후이다. 양국의 국교가 수립되면서 재일동포들에게 모두 대한민국 국적으로 전환하라는 권고가 내려졌는데, 남한과 북한이 다 같은 조국이라고 믿었던 재일동포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조국의 분단은 고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쪽을 선택하면, 한쪽을 버리는 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들을 조총련계나 북한 국적자로 오해하지만, 이들은 하나의 조국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국적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일본 안에서 무국적 난민 취급을 받는 것이다. 비자가 없기에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입국을 거부하며, 행여 출국이 가능했을 경우, 그들이 재입국하려고 할 때 일본이 입국을 거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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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인 윤이상과 함께 한 젊은 시절의 김홍재

 

도쿄 국제 지휘콩쿠르 특별상 수상 이후 김홍재의 경력은 순탄했다. 1981년 도쿄시티 필의 전임지휘자가 된 김홍재는 1986년 초가을, 도쿄 산토리홀 개관기념 연주회에 온 윤이상을 만나면서 세이지에 이은 두 번째 음악 스승을 맞게 된다. 교향곡 제 4<암흑 속에서 노래하다>를 들은 김홍재는 충격을 받았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거든요. 그래도 지휘자 하면서 10년 가까이 몇백 번이나 연주를 하고, 연주회도 수백 번 갔는데, 그때까지 그런 소리를 처음 들었다니까요. 다른 작곡가의 우주에 관한 곡들도 꽤 들은 편이었는데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 감격과 충격을 잊지 못한 그는, 전임지휘자로 있던 도쿄시티 필과 교토시 교향악단에 사표를 냈다. 윤이상 선생에게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그때까지 체념하고 있었던 유학을 결심한 것이다.

 

19899, 김홍재는 독일 대공로훈장 수훈자인 윤이상의 추천서와 재일 독일영사관 직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독일 유학을 성사시켰다. 일본에서 잘나가던 지휘자였던 김홍재는 윤이상의 집이 있는 베를린 클라도우 근처에 집을 구했다. 하지만 김홍재는 윤이상 선생의 집 근처를 벗어날 수 없었다. 윤이상의 작품은 유럽 국가 곳곳에서 연주되는데, 그는 선생과 같이 갈 수조차 없었다. 윤이상은 그의 처지가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서 당장 독일 국적으로 바꾸라고 호통을 쳤다. “다른 음악가들처럼 전 세계를 내 집 드나들 듯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김홍재에게 세계적인 음악가라는 표현은 아직 어색할 수 있다. 국제 대회에서 수상을 했거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는 경력 한 줄 없이 그는 일본 최고의 지휘자에서 멈춰 있다.  

 

클래식 음악은 역시 발상국인 유럽에서 배워 그곳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니까 그는 상식 밖의 사람인 셈이다.” 김홍재는 51세가 된 2005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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