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준 편집장의 재즈덩크

‘Easy Come, Easy Go’ 라는 서양의 격언이 말해주듯, 뭐든지 쉽게 얻어지는 것들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나 손에 닿을 것 같지 않던 ‘재즈’라는 음악이 조금씩 귀에 들리고 리듬을 타게 되는 순간, 즐거움과 희열은 여느 팝 음악들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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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존 콜트레인 Part.2

'영혼 부재한 지금 시대를 각성시키는 위대한 음악'

 

1957년 그가 아내와 딸의 영향으로 술과 마약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음악적으로 엄청난 의욕과 새로운 동기가 그의 사운드와 연주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57년부터 1959년까지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테너 색소포니스트가 되어 버립니다. 이때, 콜트레인은 이전까지 없었던 강한 음악적 영감을 받아 새로운 솔로 방식에 많은 시간과 실험을 하게 되죠. 또 뗄로니어스 몽크의 밴드에서 일하면서 음악적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기도 합니다. ‘Giant Steps’이나 ‘Countdown’같은 음악들의 화성적 변화(‘콜트레인 체인지’라고도 하는) 는 실은 몽크의 학구적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 즈음 마일스가 다시 그를 테너 주자로 기용하기 시작합니다. 마일스 자신의 컨셉은 ‘적은 음으로 정적으로 부르기’ 였고, 콜트레인은 ‘많은 음으로 역동적으로 부르기’ 였죠. 서로의 역할이 다른 만큼 팀 사운드에서 상호 음악적 보완이 될 수 있었기에 마일스의 입장에선 반드시 필요한 주자 였을 겁니다. 이때 마일스는 이미 ‘모달재즈’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완전히 틀었고, 이런 음악적 방향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솔로를 해줄 뮤지션이 필요했죠. 재즈사에 길이남을 1959년 희대의 명반 <Kind of Blue>(Columbia)에서 콜트레인의 솔로들은 바로 이런 마일스의 기대와 의도를 120% 적중시킵니다.

 

콜트레인은 이후 애틀랜틱 레이블로 잠시 옮겼다가 다시 임펄스 레이블로 갈아타게 되죠. 이 시기에 바로 ‘더 클래식 쿼텟’이 탄생합니다. 피아노에 맥코이 타이너, 베이스에 지미 개리슨(현재 활동중인 베이시스트 매튜 개리슨의 아버지), 드러머 엘빈 존스가 이 후기 콜트레인 커리어 4년간의 핵심 토대가 됩니다.

 

이미 애틀랜틱 시절 ‘Giant Steps’등을 통해 화성적인 접근을 최대치로 실험해본 그는 더 이상 화성적 구조에 기인한 ‘수직’적 즉흥연주 기법에서 더 찾을게 없다고 느낀 것인지, 모드에 기반한 솔로 연주 선율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인도 및 아프리카 음악과 같은 기존의 재즈 이외의 장르음악들에도 서서히 눈을 뜨게 되죠.

하지만, 이걸 바로 대놓고 새 레이블에서 시도하기엔 아무래도 회사의 반대가 있었죠. 바로 전 레이블에서 큰 상업적 성공을 만들어내었으니, 새 레이블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레퍼토리로 비슷한 걸 기대했을 거고, 또한 콜트레인 역시 자신의 의지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성격도 아니었던 바, 새 레이블 초기에는 좀 접근성이 좋은 대중적인 성향의 레퍼토리들을 적절히 섞어 가며 앨범들을 발매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리톤 재즈 싱어 자니 하트만과의 보컬앨범, 듀크 엘링턴과의 듀오 협연 앨범, 발라드 앨범등을 꼽을 수 있겠죠.

 

 

바로 자니 하트만과의 녹음이 있기 하루 전, 1963년 3월 6일 콜트레인과 클래식 쿼텟 멤버들은 전설의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의 새로운 녹음실을 예약해 새로 만든 곡들을 녹음해 보기로 합니다. 그러니까 마치 녹음전 사전 리허설과도 비슷한 것이었죠. 이 녹음세션의 곡들은 당시 앨범으로 발매되지 않았고, 원본들은 회사가 옮기면서 창고 정리중 다 버려진 걸로 알려졌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후 레코드 레이블에서 생전 두명의 부인 가족에게 마스터테이프들을 일부 넘겨주었고, 그게 조금씩 발견되어 유작들이 발표되게 된 것입니다. 이번 미공개 앨범의 경우는 엔지니어인 루디 반 겔더를 통해 나이마 콜트레인의 가족이 건네받은 테이프의 일부분들을 두번째 부인인 앨리스 콜트레인의 아들이자 색소포니스트이기도 한 라비 콜트레인이 직접 감수하고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JAZZ DUNK #6 이번 미공개 앨범의 음악!

 

이번 미공개 앨범의 음악!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을 살펴보면 한곡의 스탠더드 넘버 ‘Nature Boy’와 헝가리 출신의 오페레타 작곡가 프란츠 레아르의 ‘Vilila’ 를 제외한 모든 트랙들이 다 콜트레인의 오리지널인데, 그중 어떤 경로로든 지금껏 한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곡이 2개 있습니다. 이 곡들은 아예 제목자체가 붙여져 있지 않은데, 녹음당시에 별도의 곡 제목을 만들지 않은 상황에서 넘버링만 붙여 연주하였고 이후에도 제목을 따로 정하지 않아 이번 앨범에서도 그 숫자를 그대로 가져와 표기했습니다. ‘11383’과 ‘11386’ 이렇게 새로운 두개의 작품이 이번 미공개 앨범의 가장 주요한 이슈거리라고 할 수 있겠으며, 그 외 콜트레인의 대표적인 명곡중 하나인 ‘Impressions’의 새로운 버전, 그리고 스튜디오 녹음으로는 처음 소개되는 ‘One Up, One Down’ (2005년도에 처음 공개되었던 동명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Up과 Down의 위치가 바뀌어있습니다. 물론 같은 곡이죠), 프레스티지에서 발매되었던 <Lush Life>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콜트레인의 오리지널 블루스곡 ‘Slow Blues’의 새로운 버전등이 담겨져 있어요.

 

 

이 앨범의 곡들과 연주는 영적 교감의 상징과도 같은, 이듬해인 1964년도 녹음이자 콜트레인의 커리어전체를 대표하는 걸작 <A Love Supreme>의 전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1961년도에 녹음되었던 앨범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61~3년에 거쳐 녹음된 <Impressions> 등으로 그의 ‘영적인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번 새 앨범 <Both Direction at Once> 에서도 그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점 또한 음악을 들으면 분명하게 느낄수 있습니다.

 

한편 비밥에서 하드 밥, 모달과 프리를 거쳐 가는 그의 음악적 과정이 한데 뭉뚱그려져 혼재되어 나타나는 시기 또한 바로 이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1961~4년도 시기의 녹음된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접근방식이 엇비슷한 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미공개 앨범을 들으면서 <Coltrane>, <Impressions>나 <Live at Birdland> 같은 비근한 시기의 작품들을 뇌리에 떠올리는 건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연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미공개앨범의 곡들은 당시 나이마를 떠나 앨리스를 만나게 되는 시점과 겹치기도 합니다. 이 무렵 콜트레인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 걸 감지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술과 마약이 간을 너무 손상시킨 탓이겠죠. 어쩌면, 자신의 첫번째 구원이었던 ‘나이마’와 마지막을 같이해준 ‘앨리스’를 관통하고 교차하는 느낌도 담겨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흑인 교회 음악, 특히 장례식등에 사용되는 흑인 영가들의 많은 멜로디가 ‘펜타토닉’이라는 점에서, 후기 콜트레인의 솔로들의 접근 방식도 분명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도 하지요.

 

이 시절 이후부터 그의 음악에서는 ‘종교’라는 구원, 혹은 강렬한 영적 체험과도 같은 고양된 정신적 에너지 같은 것을 연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게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음악이 적어도 콜트레인 자신에겐 하나의 종교적 매개체가 되는 거죠. 음악으로 신적 존재에게 자신을 헌사하려는 듯한 몰입과 집중력은 듣는 이에게도 정말 놀라울 정도의 경험입니다. ‘재즈에서 즉흥연주가 이보다 더 영적이었던’ 적은 이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없었던 거라고 말해도 결코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후 이듬해인 1964년 12월 녹음한 <A Love Supreme>으로 자신을 완벽하게 귀의 시켰고, 1965년 이후 클래식 쿼텟의 멤버들이 콜트레인의 지나친(?) 전위적 시도로 인해 하나둘씩 탈퇴해나가기 시작한 마지막 2년여간의 가공할 ‘음악적 실험’들은 생의 마지막을 인지한 구도자의 자세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음악을 마치, ‘접신’ 하듯 강렬하게 풀어보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던 당시 흑인인권운동을 접하면서 이를 음악가로서 공감하며 표현하기 위함이기도 하였겠지요.

 

다소 낭만이 과해 신파적인 ‘스토리’ 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그 흔하고 진부한 비밥 프레이즈 한줄 없이 모든 음들에 목숨을 건 치열하고도 더없이 지고한 연주를 다시금 듣고 있자니 종교에 별 관심이 없는 저조차도 경건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1966년 일본 공연을 위해 방문했을 때 콜트레인은 나가사키의 전쟁추모공연을 방문해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죠.

 

"보편적인 인류애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면 빈곤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의 사상을 대변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너무나 적절한 예가 아닐까요?

그는 재즈라는 음악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이면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우고자 했던 구도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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