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구드릭(Mick Goodrick) 추모칼럼 - 현대재즈기타의 초석 다진 이론가, 교육자이자 연주자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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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믹 구드릭 (Mick Goodrick) 1945.6. ~ 2022.11
현대재즈기타의 초석 다진
이론가, 교육자이자 연주자
누군가를 지도하고 가르치는 일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 외에 별도의 능력이 더 필요합니다. 바로 가르치는 대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당사자가 무엇이 부족한지, 어느 부분을 더 보완하며 확실한 업그레이드가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죠. 거기에 가르치는 과정에서의 인내와 소통하는 능력도 필요불가결인데, 바로 그 지점에서 훌륭한 스타급 운동선수들이 은퇴이후 코치를 하면서 쓴잔을 들이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이 점은 음악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역사에 남을 레전드 뮤지션들, 탁월한 기량의 솔리스트들이 후학을 양성하는 데 그다지 효과를 못내는 경우가 많은 것도 모름지기 이럴거라 여겨지는데, 반면 그 두 가지를 모두 전천후로 잘해내는 분들도 드물지만 있어왔죠. 지난 11월 16일 코로나 19감염에 의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기타리스트 믹 구드릭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훌륭한 예가 아닌가 싶어요. 개별 연주자로서의 능력치도 최고수준인데 그 이상으로 교육자로서의 성과도 높았던 그는 비록 왕성한 리더작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간간히 발표했던 앨범에서 비범한 음악적 통찰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국내에도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고 음악을 배운 연주자분들이 꽤 있으신데, 그중 기타리스트 김정식과 정수욱, 두 분께 믹 구드릭에게서 유학 당시 배운 가르침을 포함, 레슨을 받는 동안 느꼈던 점들과 기억하는 일들을 바탕으로 글을 적어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추모칼럼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데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뮤지션이자 교육자로서 믹 구드릭의 남다른 일면들을 파악하기엔 훨씬 더 요긴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더불어 두 제자의 기억에 어떤 부분이 유사하게 자리하고 있는지도 살펴보면서 읽으시면 좀 더 긴밀하게 와닿을 것 같습니다. 서문/편집부
Tribute & Memory Ⅰ
재즈기타의 화성적 체계 정립한
기타 마스터 글/재즈기타리스트 김정식
1990년대 중반 필자는 믹 구드릭의 기타연주에 매료되었다. 특히 1994년에 발표한 앨범 <Sunscreams> 은 개인적으로 연주의 방향과 지향점을 새롭게 정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피아노를 대신하여 화음을 담당하는 리드미컬하고 영롱한 그의 기타 사운드는 너무 인상적이었으며, 비밥재즈의 영향권 밖에 있는 듯한 서정적이고 현대적인 솔로라인은 마치 목소리로 노래를 읊조리듯 끝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더욱이 베이스를 배제하고 화려하고 리드미컬하게 연주한 스탠더드 ‘I Hear A Rhapsody’의 모던한 연주와 ‘In Your Own Sweet Way’와 ‘Give It Up’ 등에서 연주하는 오른손 핑거피킹의 깊은 스윙감은 고전과 현대를 혼합한 전례 없는 음악으로 인식되었다. 이렇게 그의 음악에서 느끼는 황홀함은 30대 중반 필자가 미국행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이후 버클리 음대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황홀감을 선사했다. 미국에 도착한지 6개월 쯤 후에 그의 연구실 앞에서 첫 레슨을 기다리던 긴장감과 기쁨이 어우러진 그 떨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당시 필자에게 늘 생소했던 재즈 스탠더드를 즉석에서 듀오로 연주하게 했다. 낯선 코드체인지 위에서 한정된 솔로를 연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면, 거꾸로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해야한다는 그의 지론에서였다. 그는 특히 자신이 연주하는 솔로를 받쳐주는 상대의 반주에 상당히 민감해 했는데, 가슴조리며 워킹베이스를 연주하는 필자의 귀에 들려오는 대가의 간결하고 서정적인 즉흥연주는 대가와 연주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맛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도 갈망했던 그의 코드 사운드, 즉 화성적인 연주나 학습방법 등은 일절 설명해주질 않았다. 질문을 해도 그의 저서 ‘Advancing Guitarist’나 ‘Almanac of Guitar Voice-Leading’를 참고하면 된다는 성의 없는 답을 주곤 했다. 그 당시엔 실망감이 컸지만, 기타 화성의 대가에게 체계적인 코드학습을 하고 싶었던 필자의 욕망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단순한 것이었는지 느끼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모방하며 배우는 ‘트랜스크립션’을 결코 권장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버클리 음대 기타과의 교과과정을 정립했으며 위에서 언급한 그의 저서들은 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바이블처럼 인식되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론을 모든 학생에게 주입시키듯 강의하지는 않았었다. 처음에는 그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비밥재즈의 궤도 밖에서 자신만의 연주를 해내는 짐 홀의 70년대 트리오 앨범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다른 사람의 연주를 훔치지 말라”는 다소 괴팍한 제안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후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그저 학습으로 재즈연주를 대하는 필자의 연주관을 크게 바꿔 놓았다.
하루는 리듬체인지를 연주하는 도중에 결정적인 부분에서 코드에서 벗어난 음을 연주했을 때 순간 “Wrong Note!”라고 외쳤다. 그렇게도 모던한 연주를 하는 분이 어떻게 ‘틀린 음’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 당시 필자는 무척 의아하게 생각했다. “세상에 틀린 음이란 것은 없다” 정도의 조금 있어 보이는 충고를 기대했기 때문일까? 적잖이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그가 녹음해 준 카세트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며 그의 연주를 채보해 봤다. 마치 작곡된 것처럼 정교한 라인이었다. 그리고 화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소위 ‘인사이드’라고 할 만한 연주였다. 정확한 인사이드, 즉 화성 진행에 충실한 코드 톤 연주를 이끌어낼 수 없다면 그 외의 표현을 시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필자는 비밥재즈기타리스트 조 패스의 연주는 종종 모방해서 연주했지만 짐 홀의 연주는 굳이 흉내 내거나 채보하여 연습하지 않았다. 그저 듣고 느끼는 정도로 짐 홀의 연주는 필자에게 충분한 것을 선물해 줬으니까.
한편 당시 영어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가끔 짜증 섞인 퉁명함으로 필자를 대하곤 했다. 그리고 단정치 못한 것에서도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번은 오전에 급히 기타 줄을 교체하고 그 여분의 끄트머리 남은 줄을 미처 자르지 않은 채 그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줄감개 위에서 덜렁거리는 기타 줄을 보고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기타줄 절단기를 던지듯 필자에게 건넸다. 그런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면 필자는 그가 연주했던 앨범들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바꾸곤 했다. 특히 자신의 연주를 모방해서 연주하면 입가에 웃음을 가득 담았었다. 버클리시절 필자는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의 앨범에 믹 구드릭이 참여한 두 장의 앨범 <Deconstructed>와 <Always Pack Your Uniform on Top>을 닳도록 반복해 듣고 있었는데, 그중 ‘Bugs In a Rug’ 같은 리드미컬한 곡들을 솔로를 카피하여 연주해 보였다. ‘트랜스크립션은 도둑질’이라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던 분이 “나도 그때 그걸 어떻게 연주했는지 모르겠다”며 겸연쩍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필자 눈에 선하다.
생전 믹 구드릭이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스티브 스왈로우의 1997년도 리더작 [Deconstructed]. 아기자기한 모던 비밥라인이 일품인 작품. 젊은 시절 크리스 포터 테너 연주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필자가 졸업할 무렵, 마치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일정한 시간에 펜웨이 파크 앞에서 산책을 하는 그와 마주쳤다. 어느 때는 눈인사를 하고 지나치고 어느 때는 간단한 근황을 서로 묻기도 했다. 아주 한국적인 학습 마인드로 그에게 다가갔던 초기의 버클리 생활을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사실 그 당시 필자가 그에게 기대했던 것들은 그를 직접 만나지 않았어도 가질 수 있었던 것들일 것이다. 가령 연주의 방법론, 이론 등이 그런 것일 터인데, 정작 그가 필자에게 건넨 것들은 짐 홀 같은 대가들의 연주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자신만의 음악을 찾아가라’는 너무도 심플하고도 소중한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믹 구드릭이 생전 필자에게 선물한 소중한 몇 권의 기타 화성에 관한 저서와 앨범들, 그리고 그의 동료이자 라이벌처럼 인식되는 존 애버크롬비를 비롯한 줄리안 라지, 울프강 무스필 등 뛰어난 그의 동료와 제자들의 음악들과 함께,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한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하며 지금도 필자가 음악을 하는데 매번 곱씹어보게 만드는 화두이기도 하다. 끝으로 말년에 고관절 손상, 파킨슨 병 진단 등 힘겨운 상황에서 불행에 불행이 겹치듯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된 그의 명복을 깊은 마음을 담아 빌어마지 않는다. Rest In Peace!
Tribute & Memory Ⅱ
통찰 가득한 가르침으로
후학 일깨워주셨던 기타 구도자
글/재즈 기타리스트 정수욱
1997년 늦여름 즈음, 필자는 믹 구드릭에게 운 좋게 첫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그가 교수로 재적해 가르치던 학교는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컨서바토리(NEC)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계셨다. 이듬해 잠시 휴식을 가질 생각을 하신 듯 했고, 나 역시 이듬해 군복무를 이유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70년대부터 버클리 음대에서 기타와 음악을 오랫동안 가르쳐오셨던 터라,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한 가르치는 일보다는 연구 중심의 학교였던 바로 옆 NEC로 자리를 옮겨 레슨 학생 수를 줄이고 수업보다는 자신의 이론과 책들을 연구 정리하는데 시간을 더 보내셨는데, 동시에 당시 좋아하시던 당구 실력도 더 늘리셔야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무렵 그의 베스트셀러 교재인 <Advancing Guitarist>도 출간 되었고, 2000년대 이 후, ‘Almanac’시리즈로 알려진 보이싱과 화성학 교재등도 이때 그 내용들을 정리하셨다고 한다. 레슨은 주로 그의 서재가 있는 작은 ‘원룸’ 아파트에서 이루어졌다. 야구장으로 유명한 보스턴 펜웨이 파크 인근으로 학교에서 가깝지는 않았지만 산책을 겸한 도보로 충분히 갈수 있는 거리였고, 필자가 살던 민박집과도 그리 멀지 않았다. 거리 건너편에는 그가 자주 들르던 당구장이 있는 바가 있었고 그의 아파트는 화단을 지나 1층에 있었다. 바로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그가 문을 열어 들어가면 믹 선생님은 차를 내릴 물을 끓이고 난 소파 옆 ‘레슨생용’ 의자에 앉아 기타를 꺼내 튜닝을 시작했다. 혼자 사시는 것 같았지만, 혹시 방에서 다른 사람이 나와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적당한 물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앉은 소파와 책상에는 늘 책과 노트들(그림이나 기하학적 드로잉들로 채워진)이 놓여 있었고, 아주 정리가 잘 된 방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저분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마치 음악가와 화가가 동시에 사용하는 스튜디오 같기도 했다. 한번은 필자가 뉴욕에 공연 보러간다 했더니, 커트 로젠윙클, 웨인 크랜츠, 울프강 무스필, 벤 몬더 같은 연주자들의 공연을 볼 수 있으면 반드시 찾아서 보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나중에야 이 현대재즈 기타의 ‘괴물’들이 이 방에서 그에게 레슨을 받은 적이 있었단 걸 후에 웨인 크랜츠에게 들은 적이 있었고, 믹 구드릭 선생님은 그들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의 애제자중 한명인 기타리스트 울프강 무스필과 함께 2008년 재즈 스탠더드 클럽 라이브 당시 모습
1945년생 이신 재즈 기타리스트 믹 구드릭은 회계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60년대 말 버클리 음대에서 빌 레빗과 허브 퍼머로이등 밑에서 공부했다. 2017년 타계하신 재즈 기타리스트 존 애버크롬비와 당시 룸메이트인 적이 있으셨는데, 둘은 늘 같이 연주하고 짐 홀이나 웨스 몽고메리 같은 레전드들의 공연을 같이 보러 다시셨다고 했다. 또, 지금은 베이스 세션의 레전드가 되신 아브라함 라보리엘(Abraham Laboriel)은 당시 클래식 기타 전공자로 믹 선생님과 같이 버클리에서 재즈 기타를 수학했는데 후에 믹 선생님이 피크를 버리고 손가락만으로 연주 스타일을 바꾼 것도 바로 아브라함 덕택이란 얘기도 들려주셨다. 졸업 후, 1974년 당시 매우 모던한 재즈를 연주하던 바이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하셨는데, 이 무렵 당시 20살이던 팻 메시니와 버클리 음대에서 기타 레슨을 하며 함께 보스턴에서 기타 듀오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이 후,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며 1979년 <In Passing>(ECM)등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헸고, 보스턴 지역의 색소폰 레전드 제리 버곤지, 드러머 밥 모세스, 잭 디조넷, 찰리 헤이든의 리버레이션 오케스트라에 몸담으며 잠시 프로 연주자로 활동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버클리 음대로 돌아와 교육자로 평생을 살아오셨다. 그 부분은 여러 추측이 난무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아마 자신의 타고난 ‘은둔자적인 성격’과 건강 같은 요소들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그의 모던하고 독창적인 연주와 레슨은 그 사이 입소문으로 퍼져나가 당시 그의 레슨을 받으려고 일부러 보스턴까지 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NEC로 옮기셨을 때는 이미 넘쳐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 레슨 숫자를 줄이시기 시작했고, 우리는 오디션을 통과해야만 그의 레슨을 받는 게 가능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 사이 믹 구드릭의 레슨은 재즈 기타리스트들에게는 순례의 마지막 메카로 입소문이 났고, 보스턴에서는 그의 레슨을 위해 몇 달씩 대기 명단이 생기기도 했었다. 존 스코필드, 빌 프리셀, 마이크 스턴, 레니 스턴, 앤디 티먼스, 데이빗 퓨진스키, 리오넬 루에케, 라게 룬드, 팀 밀러, 니어 펠더, 줄리언 라지 등도 그의 학생들이었고 지금까지 아마 수 천명은 족히 넘을 숫자의, 우리나라 출신 재즈 기타리스트들을 포함, 기타리스트들과 그들의 음악적 여정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주신 분이시기도 하다.
기타리스트 팀 밀러와 함께 한 믹 구드릭의 모습 2012년도 버클리 음대 클리닉에서
돌이켜보면 그의 레슨들은 대부분 각 학생에 따른 ‘개별맞춤형’이었다. 물론 진도도 달랐다. 어떤 학생들과는 주로 연주만 하셨고, 어떤 학생들과는 인생 상담만 하셨다. 드물게는 그림을 그려오라고 하시기도 하고, 어떤 건강식품의 알 수 없는 효능을 칭찬하며 일장 연설을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레슨은 늘 따듯한 둥지로 들어선 학생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항상 근황을 묻는것에 인색하지 않으셨다. 필자가 기억하는 레슨 중에는 그 유명한 “싱글 스트링 연습법”(기타를 일반적인 6줄이 아닌 1줄 악기로 인식하고 수평선형적 멜로딕 아이디어를 연습시키는 방식), 도브-테일링(Dove Tailing), 트라이어딕 보이스 리딩(Triadic Voice Leading)등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좀 혁신적인 수업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기타와 음악(어쩌면 인생까지도)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멀리 넓게 생각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들에 관해 학생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능력들을 갖게 해주려고 고민하셨던 것 같다. 그의 가르침은 보스턴의 다른 재즈 구루(Guru)들, 찰리 바나코스, 제리 버곤지 같은 분들의 레슨처럼,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음악의 복잡한 본질적 구조들을 가장 심플한 레벨의 단위까지 분해 한 다음, 한 입에 소화 가능하게 심플한 연습으로 바꿔내는 놀라운 지혜와 통찰을 담고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필자가 기교적인 빠른 연주를 익히는 데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다음 레슨에 올 때는 평소 보다 조금 천천히 걸어오라”라고 조금 엉뚱한 처방을 주셨다. 실제로 그 다음 주에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찾아간 레슨에서 나에게 ‘혹시 들어올 때 1층 화분의 색깔을 보았는지’를 물어 보시기에, 노란색이라고 답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아! 라는 탄식을 내뱉은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렇구나. 느리게 속도를 줄이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구나. 1년 내내 레슨을 오면서 허겁지겁 바쁘게만 걸어 왔으니 화분 같은 것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나에게 일종의 유레카 모멘트였다. 빠르게 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느려도 너의 길, 너의 센스와 미감을 담아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히 훌륭할 수 있다는 가르침! 결국 내가 모르는 걸 얘기 하시는 게 아니라 내가 어렴풋이 다 알고 있는데 관심을 안두거나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결코 간과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시던 그 분. 늘 과묵한 듯한 표정으로 딱딱하고 경직된 인간인 듯 보이지만, 가끔 알아듣던 그의 샤프하고 독특한 유머 감각 역시 늘 그랬다. 정곡을 찌르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따듯한 인간미로 내가 깨우쳐야할 것들을 은연중에 알려주려고 하셨던 것이다.
오랜 레슨 생활로 ‘말을 많이’한 듯 하다며, 그래서 레슨 때 가급적 말수를 줄이기 위해서 책을 쓰고 계시다고, 레슨을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고 반농담처럼 말하셨지만 2020년 공식적으로 버클리에서 은퇴하시기 전까지, NEC를 그만두시고 버클리로 다시 옮기셔서 거의 20여년을 더 가르치셨다. (이 정도면 교육이 그 분의 천직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올 여름 고관절 수술 중 코로나 19에 걸리시고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얼마 전 78세 생일을 앞두고 돌아가셨다. 이제 직접 더 많은 기타리스트들과 뮤지션을 직접 도와주실 수는 없지만,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음악적 임팩트를 수많은 제자들에게 이미 남기셨고 또 기타 지망생들을 위한 훌륭한 교재까지 펴내주셨으니 앞으로 재즈기타를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도 그의 가르침을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 분이 남긴 유산은 시대를 초월해 계속 후배들에게 의미를 남겨줄 것이며, 음악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동시대 여러 거물급 연주자들에게 큰 영감이 되어 주신 것만으로도 여느 스타급 뮤지션들 이상으로 충분히 갚진 삶을 사신 것은 틀림없다.
팻 메시니와 듀오 라이브를 함께 하는 믹 구드릭 2005년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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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생전 믹 구드릭이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스티브 스왈로우의 1997년도 리더작. 아기자기한 모던 비밥라인이 일품인 작품. 젊은 시절 크리스 포터 테너 연주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jpg (File Size: 336.0KB/Download: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