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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메시니] - 리처드 나일즈

 

팻 메시니 - 팻 메시니, 리처드 나일즈 대담

리처드 나일즈 지음 | 성재호 옮김 | 온다프레스 | 2018년 04월 06일 출간 | 200P

 

 

팻 메시니는 지난 50년간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현저히 돋보이는 최고의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음악팬들을 대상으로 한 무수한 여론조사에서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라는 명성을 얻었고, 서른 개가 넘는 음반으로 세 번의 골든디스크상을 받았다. 또 그는 열일곱 차례나 그래미상을 받았는데, 그가 수상한 분야는 최고의 록 연주곡ㆍ최고의 현재 재즈 음반ㆍ최고의 재즈 독주ㆍ최고의 연주음악 작곡 등으로 아주 다양하다.

 

『팻 메시니』(온다,2018)는 2007년 작곡가이자 음반제작자인 리처드 나일즈가 BBC 제2 라디오를 위해 제작했던 팻 메시니와의 대담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1951년생인 지은이는 버클리 음대 3학년이던 1974년 기타 부문 선생이었던 메시니를 처음 만났고, 1974년에는 메시니와 같은 집에 살았다. 이때 지은이가 옆에서 본 메시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최소한의 끼니로만 겨우 때우면서 연습만 하거나, 자정을 넘겨 1시까지 공연을 하고 돌아와서는 “방에 틀어박혀 또 한 두 시간 더 연습하다가, 쪽잠만 자고 또 일어나 똑같은 절차를 매일 반복” 하던 ‘연습벌레’였다. 재미있게도 지은이의 선생이었던 메시니는 그보다 더 나이가 어린 1954년생이다.

 

메시니가 태어난 미주리주 캔자스시티는 재즈 음악에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한 도시다. 1990년 초중반에 나온 국내 필자들의 재즈입문서 가운데 단연 월등한 수준을 과시했으나 현재는 절판된 장병욱의『재즈 재즈』(황금가지,1996)는 이렇게 말한다.

 

“한때 재즈가 뉴욕과 시카고의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대립상은 캔자스시티에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이 탄생함에 따라 종식되었다. 향후 재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태도상의 전환 또한 바로 그 시기에 이루어졌다. 즉, 그 악단의 등장으로 테너 섹소폰의 레스터 영과 트롬본의 디키 웰스라는 뛰어난 두 뮤지션이 빛을 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재즈 음악을 앞 시대에서처럼 외향적이고 명랑한 성격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음악 종사자들의 허다한 전기는 많은 음악가와 연주자들이 음악과 밀접한 가계에서 태어났다고 말해준다. 메시니의 아버지는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였고, 외할아버지는 평생 트럼펫 연주를 직업으로 삼았다. 메시니는 지금도 어릴 때 아버지와 아버지의 장인인 외할아버지가 펼쳤던 트럼펫 2중주를 기억한다. 이후에 메시니보다 다섯 살 많은 형이 합류하여 트럼펫 3중주단을 이루었는데, 십대 초반에 이미 수준급 트럼페터였던 형은 훗날 클래식 음악계에서 성공한 연주자가 된다. 메시니는 여덟살 때 형을 선생님 삼아 트럼펫을 배웠다.

 

“저희 가족은 트럼펫에 열광했는데 재즈를 포함하여 종류를 가리지 않았어요.” 이런 가계이다 보니, 메시니가 기타리스트가 된 것은 돌연변이처럼 보인다.

 

“1963년인가 64년쯤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존재가 나타났죠. 바로 비틀즈예요. 그리고 갑자기 기타가 어느 어린애의 관심영역에 의미심장하고 문화적이면서 상징적인 어떤 것으로서 등장했죠. 저는 비틀즈와 그쪽의 음악 세계에 대한 그런 지대한 관심은 바로 기타가 창조해낸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해요.”

 

비틀즈 음악을 듣고 기타라는 악기를 발견한 메시니는 그 순간을 “흑백의 세상이 문자 그대로 컬러 TV와 컬러 사진의 세계로 옮겨”간 것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이 기타로 갈아 탄 것에 “세계문화의 조류”를 잡아탄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큰 반대는 없었지만, 트럼페터로 가득한 집안 식구들은 ‘기타’라는 악기 자체를 우습게 여겼다.

 

“사실 부모와 형, 누구를 막론하고 제가 기타를 치는 것을 바랄 사람은 결코 없었을 거예요. 이유야 어떻든 그분들에게 기타란 탐탁지 않은 모든 것을 의미했죠. 합주에 쓰이는 악기도 아니고 관악기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에도 쓰이지 않잖아요.”

 

그러나 메시니는 대중음악의 주류가 재즈에서 로큰롤로 급변하게 만든 주역이 기타였다고 말하면서

 

“하나의 커다란 우주적 균열에 제가 매료되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로큰롤에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메시니가 로큰롤에 빠지지 않은 것은 어릴 때부터 들어온 재즈가 “항상 머릿속”에 있었던 데다가, 비틀즈가 로큰롤에 가져왔던 것과 같은 “지각변동이 재즈에도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계기는 형이 사들고 온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1966년 앨범《Four & More》(컬럼비아)였다.

 

“전축 바늘이 레코드 판에 닿은 지 5초 만에 저의 인생은 다른 방향을 향했던 겁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이전에 메시니에게 최초로 충격을 준 재즈 연주자는 열두 살 때 듣고 또 들으며 그 스타일을 익혔다는 웨스 몽고메리가 있다. 이후 이 두 사람과 같은 반열에 나란히 놓을 사람으로 메시니는 자코 패스토리어스를 꼽는다. 이들 말고도 그가 음악세계를 형성할 열여덟, 열아홉살 즈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 개리 버튼ㆍ스티브 스왈로ㆍ믹 구드릭이 있다. 특히 개리 버튼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메시니가 마이애미대학교 음악과에서 기타를 가르치기 시작한 1974년,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음대의 선생으로 불러주었다. 게다가 메시니가 그의 첫 앨범을 ECM에서 낼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었다.

 

류진현의 『ECM Travels: 새로운 음악을 만나다』(홍시,2015)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ECM 아티스트라고 하면 키스 재럿과 함께 빠지지 않는 이름이 바로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이다.” 메시니가 ECM 레이블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는 것은 그의 재즈관(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재즈 연주자는 그들의 시대와 장소를 현장감 있게 전달할 수단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죠. 그런 맥락에서, 어찌 보면 초현실주의 또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재즈는 과거의 향수에 빠져들게 되면 현실의 대용품밖에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재즈의 지난 시대를 상상으로 재현해낼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재즈는 적극적으로 그 반대를 지향하는 음악입니다. 재즈는 기분전환과는 거리가 있고 클래식 음악이 추구하는 특성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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