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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y Come, Easy Go’ 라는 서양의 격언이 말해주듯, 뭐든지 쉽게 얻어지는 것들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나 손에 닿을 것 같지 않던 ‘재즈’라는 음악이 조금씩 귀에 들리고 리듬을 타게 되는 순간, 즐거움과 희열은 여느 팝 음악들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Johnk

#19 Tribute ECM 사운드 확립, 발전시킨 명 엔지니어 - 얀 에릭 콩샤우(Jan Erik Kongsh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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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얀 에릭 콩샤우(Jan Erik Kongshaug)

1944.7.4 ~ 2019.11.5

 

ECM Sounds 확립, 발전시킨 명 엔지니어

 

글/김희준  사진/ECM Rec.Terje Mosnes

 

70~80년대 ECM레이블의 성장에 확고한 토대를 다지는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당시 보석같은 레이블 카탈로그의 걸작 크레딧을 찬찬히 살펴보면 프로듀서의 이름에 못지않게 빈번하게 반복되는 항목이 있습니다. 바로 엔지니어죠. 우리가 이 레이블을 인식할 때 가장 큰 가치, 또는 타 레이블과 차별점을 두곤 하는 게 바로 사운드, 음향의 영역인데 그 당시 기존의 재즈앨범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 때론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게 만드는 게 바로 ECM 레이블의 작품들에 담겨진 소리였습니다.

 

타이트하고 악기소리의 잔향이 거의 없이, 단단히 밀착된 느낌을 전해주는 일반적인 재즈 앨범의 음향과는 정반대로 대치되는, 리버브감 뛰어나고 악기의 잔향이 상대적으로 길게 유지되는 소리를 만들고, 이를 자신들의 고유한 트레이드 마크로 가져가면서 레이블의 독자적인 개성을 확립해 성공을 거둔거죠. 이런 사운드를 처음 구상한 것은 바로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였습니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걸작 <Kind of Blue>와 길 에반스와 함께 만들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몇몇 음반들에 담긴 소리의 공간감에 매력을 느꼈고, 이를 자신의 레이블 작품들에 반영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지하다시피 엔지니어는 아니었죠. 당연히 이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실현시켜줄 엔지니어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이 지점에서 70년대 ECM의 고유한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두 명의 엔지니어가 있었습니다. 카탈로그 전체를 100% 다 확인해보지 못해 단언 할 수는 없지만 독일 출신의 마틴 웨이란드(Martin Weiland), 그리고 노르웨이 출신의 얀 에릭 콩샤우 그 이 두 사람이 그 당시 ECM에 몸담아 녹음에 참여한 앨범은 족히 전체의 3/4가 넘을 겁니다.   (전체적인 수는 얀 에릭 콩샤우가 참여한 작품이 거의 2배 가까이 많습니다)

 

2 1981년 뉴욕의 파워스테이션 스튜디오에서 팻 메시니의 앨범 Offramp를 녹음할때의 모습. 맨 오른 쪽이 얀 에릭 콩샤우이다.jpg               1981년 뉴욕의 파워스테이션 스튜디오에서 팻 메시니의 앨범 Offramp를 녹음할때의 모습. 맨 오른 쪽이 얀 에릭 콩샤우이다.

 

이를테면 키스 재럿의 저 유명한 <Koln Concert>와 <Still Live>, 팻 메시니의 첫 데뷔작인 <Bright Size Life>, 칙 코리아와 게리 버튼의 첫 듀오작 <Crystal Silence>, 랄프 타우너의 <Diary>를 비롯한 주요 앨범들, 그리고 에버하르트 베버 같은 뮤지션들의 70년대 초반 작품들은 바로 마틴 웨이란드, 팻 메시니 그룹의 <Offramp>와 <First Circle>, 키스 자렛의 스탠더드 트리오 첫 녹음들과 유러피안 쿼텟 앨범들 <My Song>, <Belonging>, 빌 프리셀의 첫 레이블 데뷔작 <In Line> 같은 작품들은 바로 얀 에릭 콩샤우가 직접 맡아 소리를 잡아냈죠.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다 얀 에릭 콩샤우가 본격적으로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그의 개인 스튜디오인 레인보우 스튜디오를 1984년도에 노르웨이 오슬로에 설립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때부터 유럽지역에서 녹음된 거의 대부분 레이블 카탈로그는 다 여기에서 이뤄졌죠. (뉴 시리즈는 제외)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얀 에릭 콩샤우는 마치 레이블의 하우스 엔지니어라고 봐도 될만큼 줄기차게 녹음작업을 해냈습니다. 지금까지 ECM에서 그가 녹음한 작품은 전체 카탈로그의 절반 가까이 되는 700장이 훌쩍 넘는데, 당시 이들의 협업방식은 기본적으로 스튜디오에서 이틀간 녹음하고 믹스다운을 하루에 마무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언뜻 이런 짧은 기간에 앨범녹음을 모두 마무리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만으로 거의 충분했으며, 별다른 보정 및 추가 작업을 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얀 에릭 콩샤우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온 파트너 만프레드 아이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녹음할 때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는 사운드를 예상과는 다르게 변화시켰습니다” 이에 관한 사례중 하나입니다.

1971년에 녹음된 키스 자렛의 첫 피아노 솔로 앨범 <Facing You>, 같은 해 녹음된 칙 코리아의 <Piano Improvisations Vol.1 & 2> , 그 이듬해에 녹음된 폴 블레이의 <Open, To Love>는 모두 똑같은 스튜디오에서, 같은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녹음된 것입니다. 하지만 소리는 제각각 모두 다르죠. 각 연주자의 고유한 피아노 터치와 사운드에 이를 잘 표현해낼 법한 엔지니어의 적절한 어프로치가 가세하여 이뤄진 결과로 봐야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그의 주요 스튜디오 장비들입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그 정도의 엔지니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최상급 장비를 사용하리라 생각할 법한데, 의외로 그의 장비는 평범합니다. (물론 비싸긴 합니다) 이 방면에 필자가 문외한이어서 식견은 없습니다만, 그가 애용하는 마이크들은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하며, 앰프와 콘솔도 아주 유니크한 걸 쓰지 않습니다.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그가 홈페이지에 소개한 자신의 장비들을 한번 살펴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하지만 녹음된 결과물은 아주 신선하고 무척이나 유니크합니다. 물론 그의 음악적 감각과 귀가 우선 탁월하다고 봐야하겠지만, 이에 대한 그의 지론은 이러합니다. 그가 2012년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에요

 

3 좌로부터)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 엔지니어 얀 에릭 콩샤우.jpg

 

"중요한 것은 녹음 장비, 마이크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악기가 어떤 상태이며, 연주자가 어떠한 소리를 내는가? 이게 더 핵심이에요. 나의 스튜디오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D사이즈가 있습니다. 무척이나 훌륭한 악기죠. 이 악기가 제대로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서 매 세션마다 다시 튜닝을 합니다. 심지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하루에 두번씩 튜닝을 한 적도 있었죠. 그렇게 했을 때 훌륭한 소리가 만들어집니다. 난 적절한 위치에 마이크를 몇 개 대고 녹음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그가 특별한 노하우없이 쉽게 결과를 낸 것처럼 오인 할 수도 있을 법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하면 안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엔지니어의 귀, 감각이죠. 얀 에릭 콩샤우는 리버브를 사용한 공간감 넘치는 어쿠스틱 사운드를 뽑아내는데 아주 탁월한 강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의 비전과 요청에 부응해 그러한 소리를 만들어 내었지만, 이걸 효과적으로 잘 뽑아내는 것은 그의 감각과 역량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악기가 좋고 공간의 울림이 좋다고 할지라도, 아무나 그런 소리를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얘기죠. 그는 기본적으로 여러 뛰어난 뮤지션들의 개성과 특징을 잘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 소리를 잡으면 좋을지를 매 앨범마다 프로듀서와 의논하고 결과물에 담아내어 왔습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대로 같은 스튜디오 공간, 같은 악기로 녹음했더라도 뮤지션이 다르면 전혀 다른 느낌의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는 각 뮤지션의 고유한 소리를 최대한 잘 반영하고 확장시키는데 집중하면 되었던 겁니다

 

이토록 입체적인 감각과 음악적 판단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의 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ECM 레이블의 기라성 같은 명작들을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꾸준히 녹음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2000년 초반부터는 이전처럼 많은 작품들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으며, 다른 레이블과의 작업도 많이 하였고 또한 본인이 기타리스트였던만큼 뮤지션으로서의 커리어에 더 집중하곤 했지만, 지금까지도 ‘ECM 사운드’라 일컬어지는 그 단어의 고유함을 이야기할 때, 얀 에릭 콩샤우는 만프레드 아이허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이야기되어야만 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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