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앨범 ⚡마릴린 크리스펠 Marilyn Crispell, Thommy Andersson & Michala Østergaard-Nielsen [The Cave] ILK Music/2025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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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lyn Crispell, Thommy Andersson & Michala Østergaard-Nielsen
<The Cave> ILK Music/2025
Marilyn Crispell – Piano
Michala Østergaard-Nielsen – Drums
Thommy Andersson - Bass
3. Improv #1
4. T.B.A.
6. Into the Light
7. Improv #2
인위적인 흐름 하나 없이, 자연체로 이어지는 선율, 소리들
마릴린 크리스펠, 미캘래 외스테가드 닐슨, 토미 안델손의 라인업으로 2022년 처음 결성된 피아노 트리오 유닛의 2025년 첫 데뷔앨범. 크레딧에 가장 익숙한 이름은 78세를 지난 재즈 피아노의 여류 거장 마릴린 크리스펠이다. 하지만, 이 앨범 Cave는 덴마크 출신으로 현재도 코펜하겐 인근 티스빌데라는 작은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 드러머 미캘래 외스테가르 닐슨이 모든 곡을 작곡하고 그녀의 모국인 덴마크 레이블 ILK에서 발매된 앨범이다. 베이시스트 토미 안델손은 스웨덴 출신의 베이스, 첼로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음악을 접할 때, 어떤 코드를 사용하고, 구조는 어떻게 세우며, 내가 배운 것을 펼칠 때 이론에 완벽하게 부합하고 뭔가 독특해야 한다는 의지가 우선 드러나는 경우를 마주하게 되고, 그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진행에 종종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데, 이 Cave라는 앨범에서 특히 마릴린 크리스펠은 형식과 파격, 미학과 자유의지가 있고 그 바탕에서 연주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그리고 나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곡 하나에 스토리를 꽉 채워 담아 담아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신의 곡이 아니지만, 특정 주제가 제시되었을 때 완전히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그 속에 숨겨진 테크닉과 기법을 탐닉할 필요도 없이 흐름 자체에 푹 빠지게 되는, 키스 재럿 스탠더드 트리오와 또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감정의 파문이 일어난다.
메인 멜로디를 주도하지 않는다고 베이스와 드럼의 역할이 축소된 것도 아니다. 이들은 즉석의 선율과 리듬 자체에 반응하며 진정한 인터플레이를 주고받는데, 베이스는 톤이 명징하고 특히 솔로 베이스인 improv #1의 연주는 시간과 여백의 미를 확연히 드러내면서 존재감이 뚜렷하다. 드럼이 생성하는 공간감 또한 탁월하다. 그리고 #2의 타악기 솔로는 즉흥 1번과 달리 쇳소리의 떨림과 잔향만으로 트랙의 연결성을 확대한다. 오프닝이자 타이틀인 Cave와 엔딩 A Smile of a Butterfly 는 테마의 아름다움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는데, 타이틀이 명상음악처럼 고요한 정경을 담아낸다면, 엔딩은 바이브라포넷(휴대용 바이브라폰)의 에스닉한 솔로에 이어지는 깊은 서정성을 지닌 트리오 연주로 두 곡이 수미쌍관처럼 만난다. T.B.A., Nine Tone Story 는 감정의 선이 밖으로 이탈하고자 하는데, 익숙한 마릴린 크리스펠의 연주이면서, 3개의 악기가 하나의 둥근 원 안에서 파격적으로 움직이는 정연한 혼란이라는 모순된 느낌이 든다.
프리재즈, 포크, 비밥 등 시대나 환경에 따라 재즈에 적용되는 여러 이름들을 가져올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종래엔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이 작품은 어딘가에 흠뻑 빠진 지극한 아름다움과 갈등과 번민을 숨기지 않는 혼돈, 관조와 성찰 등 살아오면서 부딪힌 기억들이 음으로 자연스럽게 형상화되어 있다. 이 트리오는 삶이 음과 진동으로 전달되는 감동의 연속을 시종일관 연출해내고 있다. 글/재즈 칼럼니스트 김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