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앨범 ⚡키스 재럿 Keith Jarrett [New Vienna ; at the Musikverein, 2016] ECM/2025 (Recorded 2016)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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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Jarrett <New Vienna ; at the Musikverein, 2016>
ECM/2025 (Recorded 2016)
Keith Jarrett : Piano
2 Part II
3 Part III
5 Part V
6 Part VI
8 Part VIII
9 Part IX
July 2016, Goldener Saal, Musikverein, Vienna
그의 80세 생일에 맞춰 도착한 기분 좋은 선물
키스 재럿은 2016년 한해 여름동안, 총 여덟 번의 유럽 솔로 피아노 투어를 진행했다. 그 공연들 중 일부는 ECM을 통해 이미 <Munich 2016>(2019), <Budapest Concert>(2020), <Bordeaux Concert>(2022)로 발매가 되었고, 이번 앨범 <New Vienna>(2025)는 그 연장선상에서 가장 최근에 공개된 음반이다. 나머지 네 번의 공연들이 이후 모두 음반으로 발매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리즈가 그의 후기 커리어 전반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주요한 작품 군이자 그의 마지막 시기를 매조 짓는 결과물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1992년도에 발매되었던 앨범 <Vienna Concert>가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의 실황이었다면, <New Vienna>는 비엔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Golden Hall of the Musikverein)에서의 공연을 담고 있다. 이곳은 과거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등 빈 악파의 음악이 울려 퍼졌던 20세기 현대클래식 음악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앨범 초반부 Part I~II (그리고 Part VI에서 다시금)는 전통적인 토널리티에서 과감히 벗어난, 복잡하고 다이내믹한 흐름으로 시작한다. 음의 명확한 중심 없이 흘러가는 다층적인 즉흥 연주는 재럿이 200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솔로 라이브에서 빈번하게 선보이는 연주방식이며 전통과 격돌하면서도 그 흐름은 투박하지 않게, 단단하고 정교하게 이어진다.
한편 Part III 에서는 좌우 손이 독립적으로 얽히는 특유의 리듬 전개가 정교하고도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마치 20세기 유럽 작곡가들에게 보내는 헌정처럼 진지하고 내밀하며 또 지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트랙. 이어지는 Part IV 에서는 그의 오랜 음악적 뿌리인 흑인 영가와 찬송가의 정서가 즉흥 연주로 다시금 되살아난다. 블루스, 가스펠, 발라드의 요소들이 그의 손끝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이 대목은, 다소 주관적인 견해를 넣자면 오래전부터 일종의 구원과 회복을 향한 음악적 기도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그 외 나머지 트랙들 일부에서는 올해 발매 50주년이 되는 재럿의 대표작중 하나인 <Koln Concert>의 느낌도 일부 반영된 듯한 느낌의 선율적 미감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 이자 앙코르 넘버인 Somewhere Over the Rainbow 도 이전 앨범들의 버전들 보다는 좀 더 담백하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이처럼 <New Vienna>는 트랙 구간 별로 전혀 다른 성격의 음악 군들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즉흥 모음곡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간혹 연주 중간에 아주 찰나의 순간 다른 국면으로의 진입 혹은 전환을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조절 되지 않은 아티큘레이션들이랄까)이 엿보이는데, 결과적으로 2017년 봄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재럿은 더 이상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팬들이라면 잘 아시듯 2018년 재럿은 두 차례의 뇌졸중을 겪었고 왼쪽에 마비가 와서 이후 거의 2년간 재활 병원에 머무르며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현재는 오른손만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으며(그 마저도 이전과 같은 컨디션은 아니라고) 현역 연주자로서 공식적인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 해 저명한 음악 유튜버 릭 비에토(Rick Beato)와의 인터뷰(지난 7년간 단 하나뿐인 공식적 대화)에서, 그는 육체적으로는 멀어졌지만 음악을 향한 그의 정신은 여전히 명료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내심 그의 팬들을 위한 일말의 기대감과 반가움도 보여주긴 했었다.
그의 첫 번째 피아노 솔로 앨범 <Facing You>에서부터 70년대 발표했던 다수의 걸작 솔로 독주앨범들은 재즈 피아노 영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클래식, 재즈, 블루스, 포크, 록, 가스펠 등 장르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펼쳐지는 그의 솔로 연주는, 단순한 장르 및 스타일의 혼합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적인 유기적 합을 바탕으로 한 독립된 음악 언어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그의 솔로 라이브는 청자를 소리의 바깥에 두지 않는다. 음 하나하나가 관객들에게 마치 질문처럼 던져지고, 그 안에 침묵과 시간의 결이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New Vienna>는 오래 전부터 시도해왔던 재럿만의 모놀로그이며, 그와 동시에 관객들과 그 현장의 분위기와 교감하는 방식이 다시금 준수하게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금씩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그가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표현해내는 깊고도 고요한 내면의 기록이이며, 또한 화려하게 연소된 불꽃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것 같은 이 음반은, 지금까지 발표된 같은 유럽 투어 시기 라이브 넉장 중 가장 정갈하면서도 진중한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재즈 기타리스트 정수욱